2021. 2. 7 일요일 눈폭풍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이 창가로 비쳐 그림처럼 아름다운 일요일 아침.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지난주 월요일과 화요일 괴물 눈폭풍이 찾아와 뉴욕을 흔들더니 또다시 눈폭풍이 찾아왔다. 2월은 하얀 눈만 보고 살려나. 뉴욕 겨울이 춥지만 이토록 자주 눈폭풍이 오는 것은 아닌데 2월 일기 예보를 보면 이번 주도 자주 내릴 예정이라고. 하얀 눈과 함께 2월을 보내면 따뜻한 봄이 오려나.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 집안은 냉동고처럼 추우니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고 거동이 불편하다. 난방만 따뜻하게 잘 되면 좋을 텐데 누구 책임일까. 중앙난방이니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전기난로를 켜는데도 거실 바닥은 두터운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리고 공기도 차갑고 폭풍 전기세를 걱정하게 된다.
그래도 하얀 눈이 펑펑 내리니 밖으로 나갔다. 눈이 항상 오지는 않으니까 귀한 풍경이니까 마음에 꼭 담아두고 싶어 눈보라 속을 거닐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괴물 눈폭풍처럼 앞이 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눈사람으로 변할 정도로 춥긴 추웠다. 한겨울 눈 속에 핀 예쁜 겨울 장미와 붉은 열매 나무 바라보다 엉덩 방아도 찧고 눈밭에서 뒹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나.
꽤 오래전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는 양로원에 발런티어 하러 갈 때 얼어붙은 도로 위를 아주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혹시 지각할까 걱정이 되어 가속 페달을 밟다 내 작은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빙글빙글 세 바퀴를 돌았는데 정말 그 순간 지나가는 차량이 있었으면 충돌 사고가 일어났을 텐데 다행히 지나가는 차량이 없어서 나 혼자 쇼를 하면서 끝냈지만 죽을 줄 알다 겨우 살았다. 직장도 아니고 발런티어 하러 가는데 폭설이 쏟아진 날 조금 늦으면 뭐가 대수라고 그 소동을 피우고 달려갔는지, 안 가도 되는 발런티어인데. 정말 위험했던 사건이라 결코 잊히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호수에 도착하니 눈사람을 만든 젊은 커플도 있고 썰매를 타는 가족도 있었다. 하지만 겨울 철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 많은 겨울 철새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번 아기 파랑새를 만났던 주택가에도 찾아갔다. 봄이면 예쁜 작약꽃이 피는 곳. 두 자녀 자동차 운전 연수를 시키기도 한 곳이다. 연수비가 무척 비싸 운전학원차처럼 특별 장치가 없는 보통 차로 연수를 시키려니 심장이 조마조마했던 곳. 짧은 시간 연수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했다. 두 자녀 특별 레슨처럼 힘들었던 자동차 연수. 만약 조금만 형편이 넉넉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이 주는 슬픈 추억이 참 많다.
하얀 눈밭 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풍경 보며 기분은 하늘을 날듯 좋지만 몸은 꽁꽁 얼어가니 아들이 메시지로 연락해 춥지 않냐고 물었다.
아침에 눈 뜨자 딸이 스무디를 만들어 줘 감사함으로 먹고 점심도 딸이 주문한 인도 음식이었다. 쉽게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직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인도 요리. 향신료가 한국과 다르다.
인도하니 생각나는 대학원 시절 만난 두 명의 인도 학생. 단 한 명의 한인 학생만 있어도 그토록 고독하지 않았을 텐데 대부분 20대 후반의 학생들. 그 가운데 딱 2명의 아시아인이 있었는데 인도 출신이었다. 악센트 강하니 알아듣기 힘든 영어. 어느 날 내 앞에서 지갑을 꺼내 열면서 돈 자랑을 하던 인도 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총을 모른 사람 앞에 총을 내밀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도 한 때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란 말을 들었는데 내 앞에서 돈 자랑하니 웃었다.
링컨 센터에서 만난 인도 출신 여행객도 기억난다. 인도도 빈부차가 하늘과 땅 보다 더 크다고 하니 놀랐다. 인도 여행도 가야지 하다 그냥 세월은 흘러가고 아직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지구촌에 빈부차 없는 곳이 드문 듯 느껴진다. 한국도 미국도 특히 뉴욕도 빈부차가 크다. 이민자들은 눈물을 먹고사는데 귀족들 아파트 한 채가 400억-500억 하는데 어떻게 가난한 서민이 그런 아파트에서 살겠는가.
2월 7일 일요일은 특별한 저녁이었다. 매년 2월 첫 번째 일요일 저녁에 슈퍼볼 축제가 열린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미식축구 경기. 코로나 전쟁 중이라서 관중 없이 열리는 줄 알다 깜짝 놀랐다. 그 비싼 티켓을 어떻게 구해서 경기장에 보러 갔을까. 참 알 수 없는 코로나 전쟁.
두 자녀와 함께 저녁 경기를 지켜보았다. 딸은 축구 선수 이름도 아는데 난 미국 문화를 잘 모르는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딱 한 번 보스턴 여행 가서 하버드 대학에서 미식축구 경기를 봤지만 여전히 낯선 경기. 슈퍼볼 경기하다 중간중간 광고도 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난 장님처럼 아는 게 없다. 그만큼 미국 문화가 낯설다는 말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플러싱 아파트도 아주 오래전 미식축구가 열리던 날 밤늦은 시간에 계약을 했다. 그날 딸은 친구들과 함께 슈퍼볼 경기 보러 간다고 픽업을 해 달라고 해서 롱아일랜드 제리코에서 동쪽으로 향해 달려 데려다주고 다시 플러싱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한인 부동산 공인 중개사를 만나러 도착했는데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하니 깜박 잊었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난 플러싱에 살지도 않고 롱아일랜드에서 달려왔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니 할 수 없이 기다렸다. 2월이라서 몹시도 추운 겨울날.
늦게 나타나 내게 몇몇 장소를 보여줬는데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러싱으로 이사하기 전 거의 1년 동안 뉴욕시 아파트 빈집을 보러 다녀 나의 눈높이가 상당히 낮아졌지만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보자고 해서 데리고 간 곳이 있었는데 그나마 조금 깨끗하니 집 구하기 힘들어 그냥 계약할까 하는데 집주인이 나의 1년 수입이 얼마냐고 물어 거짓 없이 말하니 계약을 안 한단다. 공인 중개사는 날 보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 거짓말을 하지 않냐고. 거짓말하면 뭐가 어때서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계약을 하면 소개비(한 달 렌트비라서 비싸다)를 받는데 눈 앞에서 돈이 날아가니 몹시 서운했을까. 그녀도 중년도 나도 중년. 중년인데 왜 거짓말도 못하냐는 눈치였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니다. 젊은 시절 돈 많이 벌어서 저택도 있었는데 망해버려 빚만 많다고 했던 그녀가 그때 다섯 가지 직업이 있다고 했던 거 같다.
뉴욕시 아파트 구하기가 참 힘들었다. 조건도 무척 까다롭고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암튼 그날 내 일정은 몹시도 분주했는데 허탕치고 롱아일랜드 제리코로 돌아갈 수밖에. 집에 도착해 다시 집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찾다 올려진 사진이 깨끗하니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는데 당장 만나자고 했다. 조금 전 플러싱에서 롱아일랜드로 돌아왔는데 다시 플러싱에 오라고. 그런데 어떡해. 내가 아쉬운 입장이니 고속도로 운전하기 무척 싫어하는 난 495 고속도로를 달려 플러싱에 도착해 늦은 저녁 시각에 부동산 공인 중개사를 만났다.
그는 아파트 슈퍼를 만나야 한다고 하면서 내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도로변에 주차하고 기다리니 열쇠를 가져와 아파트 문을 열었다. 그동안 본 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어 계약하고 싶다고 하니 당장 그 순간 해야 한다고. 참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뉴욕시는 아파트 구하기 힘드니 내 마음에 들면 다른 사람 맘에도 들 수도 있고 그럼 내가 계약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말. 지갑에 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문제는 이사 날짜.
제리코 아파트는 3월 1일까지 살 수 있는데 플러싱은 당장 이사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미리 선불로 준 제리코 아파트 렌트비는 하늘로 붕붕 날아가고 플러싱 아파트 날짜에 맞춰 이사를 했다. 비싼 뉴욕 렌트비. 이사하면 부동산 소개비도 한 달 렌트비. 포장 이사 아닌 이삿짐센터 이사 비용도 비싸고. 그래서 이사가 무섭다. 엄청난 돈이 들기에. 거기에 끝없는 고생. 집 구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짐 싸고 풀고.
당시 두 곳의 직장에서 일하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오던 무렵이라 이삿짐 쌀 시간도 없어서 포장을 하다 말았고 이삿짐센터 인부가 빈 포대에 담아 이사를 해서 팁을 두둑이 줬다. 이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짐도 풀어야 하고 커튼도 달아야 하는데 그 커튼이 문제였다.
정말 혼자가 아니라 부부라면 서로 협조하면 삶이 덜 무거울 텐데 혼자 힘으로 다 하려니 폭풍 같은 눈물을 쏟을 때가 많았다. 커튼도 우리 힘으로 걸기 힘들어 결국 아파트 슈퍼에게 팁을 주고 부탁했다. 처음에 우리 힘으로 해 보려고 하다 난 자정 무렵 집에 돌아오고 재주도 없어서 딸이 친구에게 부탁했지만 불가능했다. 낡고 오래된 집이라 못질도 어렵다고. 몇 주 동안 커튼도 없는 집에서 살았다. 삶이 얼마나 무겁더냐! 아... 침묵 속에서 잠든 슬픈 이야기가 얼마나 많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