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8 월요일 맑음
호주 오픈 나달 경기를 보려고 기다리다 눈이 빠진 줄 알았네. 밤 9시 반 경 경기 시작한다고 해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여자 단식경기가 늦춰져 자꾸 경기 시각이 연기되고 그러다 밤 11시가 지나서 시작했던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작년에도 유에스 오픈 경기장에서 스페인 테니스 선수 나달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우리 가족이 최고로 사랑하는 스포츠 축제인데 잠들어 버려 너무나 안타까웠지. 유에스 오픈 테니스 예선전 경기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던가. 경기장은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에서 한 정거장 되는 거리에 있으니 기쁨이 넘쳤다. 플러싱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장이 가깝다는 점. 멀리서 비행기 타고 뉴욕에 와서 보기도 하니 항공료와 숙박비 비싸다고 하는데 집에서 가까워 천국이라고 했다.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무더운 여름날 경기를 하니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도 온몸에 비 오듯 땀을 줄줄 흐르며 경기하니 얼마나 힘들지 가까이서 피부로 느꼈다.
대학 시절에 테니스 레슨 받다 아이 아빠 따라 전방에서 살 때도 잠시 테니스 레슨을 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연 유산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다. 새벽에 테니스 레슨 받으러 다녀 무리라고 하는 바람에 중지했지만 내 의도는 아니었다. 친정아버지가 해외여행 가실 때 사다주신 윌슨 테니스 라켓은 전방으로 이사할 때 챙겼다.
고향 집에 대부분의 짐을 그대로 두고 떠나 전방에서 최소 살림으로 지낼 무렵 어느 날 서울에서 살던 친구가 내 집에 찾아와 깜짝 놀라 충격을 받은 눈치. 그때 라조기 요리를 대접하니 친구가 놀랐다. 요리 기구도 없는데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는 갸륵한 마음이라서 그랬을까. 독일 유학 가서 힘들다고 2년 정도 머물다 다시 한국에 귀국했던 친구도 보고 싶다. 대학 시절 함께 클래식 기타 동아리반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행복했는데 세월이 말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으로 떠난다고 말했을 때 날 꼭 껴안으며 잘 지내라고 말했던 친구.
운명이 데리고 왔는지 나의 꿈과 고통이 데리고 왔는지 꿈과 고통과 운명이 날 뉴욕에 데리고 왔는지 모르지만 40대 중반 낯선 땅에 도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뉴욕에서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마나 환호했던가. 처음에는 하늘 꼭대기 같은 티켓을 구입한다고 하니 경기가 잘 안 보일 거라 말했지만 모른 척하고 그냥 구입해 경기장에 갔는데 의외로 경기를 보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형편에 맞게 살자'가 나의 원칙. 남들이 비싸다고 하니 포기했다면 결국 경기장에 가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이니 잘 모르니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 보러 갔다. 그렇게 해야 조금씩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머무는 곳으로 변한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장. 함께 테니스 경기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좋다. 취미가 비슷하면 낯선 사람과도 금방 친하게 된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음악을 사랑하는 지인들이 그렇다. 처음 만나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페인 테니스 선수 나달은 정열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멋지게 보인다. 아주 오래전 호주에 여행 갔던 추억도 떠오른다. 호주 뉴질랜드 코스 여행이었다. 동유럽 여행에서 만난 가족을 다시 만나 웃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호주에 갔을 때 하필 블루마운틴 산이 화재가 났다고 보도되었다. 그때 한국에서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시던 무렵.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가서 멋진 건축물 보고 놀랐을 때 여행사 가이드가 오렌지 껍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말해 웃었다. 유람선을 타고 맛있는 뷔페를 먹은 기억도 나고 요트가 있는 멋진 주택도 방문해 오래도록 기억나고 수족관에도 방문했고 코알라가 종일 잔다는 이야기도 듣는 등... 많은 추억이 머문 지역인데 영어 악센트가 강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만약 다시 여행 가면 오페라도 보고 호주 오픈 테니스도 보고 싶다. 언제 기회가 올까.
목련꽃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
나달 경기가 일찍 끝나지 않으니 초반전 경기를 보다 그냥 잠들었다. 조코비치 경기도 뉴욕 시간으로 새벽 4시 반에 한다고 하니 포기했다. 딸이 2021년 알파인 세계 선수권 경기가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리는데 스마트 티브이로 시청할 수 있다고. 참 좋은 세상으로 변했다. 집안에 앉아서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물론 직접 경기장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경기장에서 관중들 함성 들으며 관람하면 더 좋다. 그래서 매년 찾아갔는데 코로나로 작년 관중 없이 경기가 진행되었다.
월요일 아침 아파트 지하에 세탁을 하러 갔다. 문이 열리지 않은 건조기도 있었고 세탁물이 잘 마르지도 않았지만 무사히 마쳐서 감사했다. 뉴욕에 와서 '감사의 의미'를 깨우쳤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당연한 일에도 감사 감사 감사하다. 샤워 도중 온수가 나오지 않고 차가운 물이 쏟아지고 가끔은 욕조가 막히고 세면대가 막히고 욕실에는 곰팡이가 생기는 등 슬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 거리에서 잠드는 홈리스와 비교하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세탁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처음 이사 왔을 때 건조기 열이 강해서 세탁물이 잘 말랐는데 요즘은 마르지를 않는다. 그래도 감사하다. 차도 없으니 무거운 세탁물 들고 빨래방에 걸어갈 수도 없다. 그런다고 비싼 택시 타고 어찌 가겠어.
집안은 냉동고처럼 추워 눈뜨면 따뜻한 유자차 끓여 마시고 세탁하고 글쓰기 하고 식사 준비하며 오전이 지나갔다. 감자와 무와 당근과 양파와 파와 마늘을 넣어 푹푹 끓인 갈비찜 요리를 먹고 혼자 산책하러 밖에 나갔다. 집도 춥고 밖도 추운 한겨울.
겨울 철새는 잠시 하늘을 날다 멀리 떠났다.
호수에 도착하니 몇몇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지만 겨울 철새 몇 마리만 보여 고요하다 겨울 철새 구세주님이 나타나 먹이를 주니 금세 멀리서 겨울 철새가 날아와 먹더니 다시 멀리 날아가버렸다. 겨울나무 가지 위 하얀 눈송이는 목련꽃송이처럼 보여 예뻤다. 눈부신 파란 하늘 보고 파랑새와 숨바꼭질도 하고 하얀 눈밭에 핀 겨울 장미와 동백꽃 보며 내 마음도 환해졌다. 산책을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 날씨가 추워 온몸이 꽁꽁 얼어가는데도 산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