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음악 축제 니즈마(NYSSMA)와 우리 가족 추억

by 김지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난 맨해튼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창밖으로 하얀 눈 내린 정경을 바라보고 있다. 실내 공간이 따뜻하다면 아주 낭만적인 분위기 감도는 하얀 겨울일 텐데. 핫 커피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핫 커피를 마시며 랩톱을 켜고 글을 쓰는 새해 초. 뉴욕 공립 교육에 대한 글쓰기를 하다 보니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니즈마 음악 축제.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이 아주 많다.

한국에서 두 자녀 특별 레슨을 받게 되었지만 딸은 엄마가 경제적으로 힘들 거라고 레슨을 중지했고 아들은 뉴욕에 오기 전 한국 예종에서 강의하시는 분 등 여러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지만 뉴욕에 와서 만큼은 엄마가 연습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내버려 두니 혼자 연습을 하지 않아서 한동안 레슨을 중지했다.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니 맨해튼까지 왕복 기차비도 작지 않고 레슨비도 준비해야 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레슨이 뭐가 필요 있겠어하면서. 함께 사는 주인 여자분이 가끔 아들이 바이올린을 꺼내 연습하는 것을 보고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랬다. 보통 학생 실력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특별 레슨을 오랫동안 받았으니. 아들이 어릴 적 누나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거 보고 배우고 싶다고 성화를 부려 시작했고 두 자녀 레슨으로 엄마는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물론 두 자녀도 말할 것도 없이 악마 같은 엄마의 감시 아래 지내야 했으니 고통이 주는 선물이 위대했을 거다.

뉴욕에 와서 한동안 레슨을 받지 않다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니즈마에 참가해 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니즈마 신청서를 접수했다.


니즈마 음악 축제는 뉴욕에서 열리는 매년 5월에 열리는 음악 축제고 많은 학생들이 참가한다. 단계별로 나뉘고 1- 6단계가 있고 학생 수준에 맞는 시험을 치른다.

그때 우리 가족은 롱아일랜드 서퍽 카운티 딕스 힐에 거주했고 다음 해 낫소 카운티 제리코로 이사를 했다. 니즈마는 매년 5월에 열리고 그해 3월에 이사를 했고 니즈마가 열리는 학교에 처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딪혔다. 바이올린을 들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아들이 니즈마 시험을 볼 수 없다고 하셔 깜짝 놀라 무슨 말이냐?라고 물었다. 참가비를 내고 미리 원서 접수를 했는데 왜 볼 수 없냐고. 그랬더니 니즈마 원서 접수를 서퍽 카운티에서 했고 제리코는 낫소 카운티라 다르니 카운티가 달라 니즈마 원서 접수가 안된 것이라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우린 잘 몰랐다. 그렇게 주절주절했다. 한국에서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잘 몰라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고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물론 엄마 혼자 열심히 사정을 설명했다. 니즈마 시험을 보러 가서 볼 수 없는 게 말이 되냐는 나의 입장. 암튼 오래 기다렸는데 우리가 원하던 답을 주셨다. 특별한 경우라 기회를 준다고.

그런데 다시 문제가 생겼다. 니즈마 시험은 미리 스케줄이 나오고 그 시간에 맞춰 시험을 보는데 심사위원과 한바탕 소동을 피우다 겨우 허락받았는데 다시 문제가 생겼다. 우린 처음이라 잘 몰라 발생한 일이었다. 니즈마 시험을 보려면 원본 악보를 가져와야 한다고. 참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않은 일이라. 악보도 외우면 필요 없고 복사본이면 왜 안 되는 것인지. 니즈마 측에서는 복사본 악보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난감했다. 갑자기 어디서 원본 악보를 구해야 하는지. 뉴욕 지리도 잘 모르고 낯선 도로를 운전하기 아주 싫어하는 내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암튼 니즈마를 봐야만 해서 그럼 어디서 악보를 구할 수 있니?라고 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내게 아주 놀란 눈치였다. 그분은 악보를 파는 주소를 내게 주셨다. 주소를 받고 감사하지만 당장 운전하고 찾아가서 악보를 구해야만 그날 늦은 시각에 시험을 치를 수 있고 당시 지리도 몰라, 누구 아는 사람도 없어. 결국 혼자서 낯선 도로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GPS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내차는 없고 그분에게 대충 어디로 가냐고 물어서 찾아가 니즈마를 치른 학교로 돌아와 시험을 치렀다. 여기서 한국과 다른 점은 뉴욕은 한국처럼 가까운 곳에 악보를 파는 숍이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멀리 있다. 낯선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야 한다. 그것도 그날 바로 악보를 구해서 니즈마 보는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아들이 7학년 때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니즈마 6단계에 접수하고 시험을 치른 아들 성적은 만점이 나왔다. 잊히지 않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니즈마 추억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년 5월에 니즈마 신청을 하고 오디션을 치렀는데 다음 해인가 니즈마 치르는 장소가 변경되어 미리 답사하려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가 났다. 뒤차가 내 차를 박아버렸고 그날 내 차는 하늘로 붕붕 날아버렸다. 순간 눈을 감았다. 두 자녀 모두 차에 타고 있었고 그때는 딸도 니즈마 신청을 해서 가족 모두 사요셋 고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답사하려다 봉변을 당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통사고였다. 다행히 차만 찌그러져지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5월 대학 레벨 AP 시험도 많고 뉴욕 학생들에게 5월은 정말 바쁜 달이고 두 자녀 모두 줄리아드 예비 음악학교에서 오디션을 보려고 접수했는데 그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운전하기 정말 싫어하는 내게는 공포의 사건이다. 차는 병원으로 가고... 그 후 니즈마 오디션도 치렀다. 그해도 만점이 나왔다.

니즈마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Long Island String Festival, All-County, All- State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고 월 카운티와 월 스테이트는 더 소수 학생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줄리어드 음악 예비학교에 재학 중인 경우라도 참가 못할 수도 있다. 니즈마에 참가한 뉴욕 고등학교 학생들 스케줄이 그래서 정말 복잡해.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연주를 하려면 학교 수업과 겹치고 학교 수업을 못하고 연습해야 하고 연주를 해야 하니 많이 힘든 면도 있다. 중요한 수업을 며칠 빠지면 타격도 크고 그래도 학생들은 해낸다. 아들은 어려운 월 스테이트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고 뉴욕 업스테이트 이스트만 홀에 가서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학교 대표로 연주를 하니 정치인들을 비롯 낯선 사람들에게 축하한다고 레터를 받기도 하고. 이스트만 홀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 부모가 동행을 한다고. 차로 운전을 하고 자녀와 함께 찾아간 경우도 있고 운전을 퍽이나 싫어한 내가 운전하고 그곳까지 찾아갈 리 만무하고 난 경비도 부담이 되고 학교 수업도 부담스러워 아들 혼자 가라고 했다. 이스트만 홀은 어찌 생겼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호기심은 뒤로 두고.


처음에 잘 모르고 아들 혼자 이스트만 홀에 갔는데 다음 해도 월 스테이트에 참석할 수 있었고 그때 우리는 제리코 고등학교에서 호텔 비용과 비행기 표 비용을 도와 주니 부모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월스테이트는 11학년과 12학년에 주어지는 기회고 아들은 두 차례 모두 참석했고 한 번은 혼자 이스트만 홀에 갔다. 그때 혼자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돌아오는데 비행기 안에서 밖에 내리는 눈을 보니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평생 그리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 봤다고.

아들이 12학년 때 딸과 난 함께 이스트만 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런데 공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딸 짐이 든 트렁크를 공항 직원이 부숴버렸다. 트렁크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여려고 하자 트렁크가 안 열리니 부숴버렸다고. 참 어이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끔 다녔지만 트렁크가 부서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이런저런 니즈마에 얽힌 지난 추억을 생각해 본다. 이제 다 지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추억은 돌아보면 아름다워.


2018년 1월 4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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