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센터는 내 친구

줄리어드 학교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

by 김지수


청명한 가을날 금요일 아침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려. 현재 기온이 13도. 하얀 겨울이 곧 찾아올까 걱정도 되고. 어느 해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큰 삽으로 차 옆에 쌓인 눈 치우느라 몇 시간 동안 작업한 걸 생각하면 하얀 겨울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건 아냐. 오래 작업하고 나면 허리가 많이 아파. 그래서 하얀 겨울이 무섭기도 하지. 이제 더 이상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10년이 지난 골동품 차를 팔아버렸으니. 겨울 하면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 관광객과 뉴요커 모두 사랑하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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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 펠러 센터 하얀 빙상에서는 스케이트를 타고 센트럴파크 하얀 빙상에서도 스케이트를 타.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스케이트를 탄 장면은 바로 센트럴파크 울먼 링크에서 촬영되었다. 그리고 해마다 겨울이 올 무렵 링컨 스퀘어에서 Winter's Eve 축제가 열리고 단테 파크에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하고 공연이 열리고 거리에서 음식 축제도 연다. 뉴욕 맛 집이 참가하는 거리 음식 축제는 팁과 세금이 없어 더 저렴하고 좋아. 샘플링 음식을 2-5불 정도면 사 먹을 수 있어 좋아. 1불짜리도 있나.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빌딩에 있는 부송 베이커리 정말 맛이 좋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겨울 이야기를 하니 정말 곧 겨울이 올 거 같아.

어제 고등어조림으로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가 열릴 예정.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서 7호선 로컬을 타고 달리는 동안 그제야 줄리아드 학교 공연 티켓을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은 게 생각이 나. 거꾸로 집에 돌아가 티켓을 가져오려면 최소 1시간 이상이 들 거 같고 잠시 고민하다 지하철 안에 머물렀다. 뭐가 최선이지 고민하다 플라자 호텔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사랑하는 센트럴파크를 지나고. 가을이라 연인들이 공원에서 꼭 껴안고 있어. 가을 하면 센트럴파크에서 촬영한 영화 < 뉴욕의 가을>도 생각나고. 바람둥이 남자와 불치병의 청순한 아가씨와의 사랑.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는 센트럴파크 정말 아름다워. 11월 초가 지나야 진한 노란색 단풍을 볼 수 있고. 머릿속에는 줄리아드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티켓으로 복잡하고 나의 생각은 학교 박스 오피스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 짓고 공원을 지나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했다.

공원에서 줄리아드 학교에 가는 중 YMCA 도 지나고 문득 오래전 카네기 홀에서 만난 독일에서 온 박사 과정 학생도 생각나고. 오래오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음악 콘서바토리 학교에 합격했으나 음악의 길이 순탄치 않으니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YMCA 숙소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해 묵고 있는데 시설이 별로 안 좋다고 약간 불평을 했어. 링컨 센터와 센트럴파크와 카네기 홀에 가까우니 예약했는데 다음에 뉴욕에 오면 다시 가지 않을 거라고 해.

드디어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 박스 오피스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의 이름을 말하니 내게 티켓을 줬다. 어제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공연 티켓은 정말 구하기 어려운 것에 속하고 일부 공연은 왜 그리 티켓 구하기 어려운지 잘 몰라. 자주 만나는 70대 할머니도 그 공연 티켓 구하지 못했다고 불평을 했지. 서둘러 나오느라 그만 공연 표를 집에 두고 와서 작은 소동을 피웠지만 무사히 해결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반에 열리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갔다. 마침 저녁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고 무대에 오른 젊은 여가수의 목소리는 메르세데스 소사가 생각나게 해.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위대한 가수는 2009년 10월 저세상으로 가 버렸어.

잠시 후 무대에 다른 분이 올라 미국은 위대한 나라이지만 문제가 많아요. 비단 미국만 그런 거는 아녜요, 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을 때 코너에 있던 홈리스가 크게 "예, 그래요"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노인 여자 홈리스는 항상 그곳에 가면 보게 되고 뉴욕 타임지를 읽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짐이 가득한 수레를 옆에 두고 책을 읽고 있는 뉴요커 할머니 홈리스. 어제 나를 웃게 만들어. 어제 특별 행사( Voices of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가 열렸고 리허설 하는 동안 커다란 스크린에 밥 딜런, 빌리 할러데이,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말콤 X 등의 이름이 보였다. 잠시 휴식하다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 보러 가야 하나 저녁 7시 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고 싶으나 혹시 줄리아드 학교 공연 보고 돌아오면 어쩌면 빈자리가 없을지 몰라 낯선 할아버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 자리를 부탁하니 그런다고 해. 처음 만난 백인 할아버지가 아주 친절해.

그곳에서 나와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 갔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 특별 전시회가 곧 막이 내린다고 해. 그래서 본 포스터 전시회. 낯선 아티스트의 포스터 전시회를 보고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에 노출되는 나.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어.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게 되고.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Hilary Knight 특별 전시회. 지난 4월에 오픈 내일 막은 내리는데 난 얼마나 자주 도서관에 가지 않은지 확인하게 한 전시회. 공연 예술 도서관은 메트 오페라 옆에 위치하고 공연과 전시회 등 많은 이벤트가 열리고 지난번 100세 생일 맞은 드라마 북숍에서 본 젊은 극작가 한 명이 링컨 센터 도서관에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하던데.

6시 공연 10분 전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 입구에서 수위에게 검문을 맡고 폴 홀에 들어갔다. 프로그램을 받고 객석에 앉았는데 바로 앞에는 자주 보는 할아버지가 계셔. 그분도 줄리아드 학교 공연을 아주 사랑하는 분. 어제 마스터 클래스 강의는 Murray Perahia 분이 하셨다. 뉴욕에서 태어나 40년 이상 피아노를 연주하신 분. 4세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메네스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하셨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공연도 했고 내가 사랑하는 피아노 거장 블라디므르 호로비츠와 가까운 친구였다고. 수차례 그래미상을 수상 그리고 도이치 그라모폰을 여러 차례 수상하신 분. 그야말로 단 몇 줄로 경력을 적기 힘든 명성 높은 피아니스트.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해 받은 나의 첫 번째 급여로 성음사에서 나온 노란색 그라모폰 테이프 수 십 개를 구입했다. 처음으로 받은 돈이니 어디에 쓸지 고민하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으려고 그걸 샀는데 집에서 난리가 났다. 기억에 아마 6만 원 정도 받은 거 같고 한 개 테이프가 2500원 정도. 6만 원 전부 다 지출했는데 세상에 그 돈을 전부 음악 테이프를 샀다고 하시며 놀라셨던 친정 엄마. 난 내가 번 돈이니 내가 듣고 싶은 음악 테이프 샀는데 그게 왜 이상해,라고. 엄마와 난 서로 달라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 그때 엄마 선물도 사고 남은 돈으로 성음 클래식 음악 테이프를 사는 게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암튼 나의 음악 사랑은 위대해.

마스터 클래스 첫 번째 연주 학생은 전에 같은 홀에서 아들과 봤던 바로 그 남학생. 수상 경력이 화려해 아들 보고 그런다 하니 엄마는 연주 보기 전 미리 편견을 가지면 안 돼요,라고 하고 나중 피아노 연주 보고 우리 모두 그날 공연이 아주 좋았다고. 어제 바흐 파르티타를 연주 두 번째 학생은 슈만의 곡을 세 번째 학생은 베토벤의 곡을 연주했는데 난 7시 반 열리는 특별 공연을 보기 위해 베토벤 공연을 안 보고 미리 떠났는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도착하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잠시 기다리다 포기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 젊은 남자가 왜 이리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이상해. 그 남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 콜럼버스 서클에서 1호선에 탑승하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지난번 중세 축제가 열리던 날 이스트 빌리지 쿠퍼 유니언 대학에서 특별 공연을 보던 날 내 옆에 앉은 젊은 학생.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상당수 노인들. 그날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라커 펠러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인 걸 알았다. 인도계로 보인 학생인데 나처럼 공연과 이벤트를 아주 좋아해.

결국 베토벤 연주도 못 보고 저녁 7시 반 특별 이벤트도 못 보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도착. 그런데 버스는 왜 안 오니. 정말 오래오래 기다렸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난 줄리아드 학교에서 마지막 학생 공연을 다 봤어야 했지만 욕심부리다 다 놓치고 말았지. 늘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는 경우가 많아. 삶이 늘 그래. 백인 할아버지는 날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주 미안하게 되어 버렸어. 고의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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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3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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