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심히 산 이유

by 김지수


나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도 있다. 물론 나의 삶 전부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블로그에 올린 내용만 보고도 왜 그리 열심히 사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가만히 앉아도 누가 날 위해 해준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아니면 남편이 해주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보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으나 당시 한국 환경에서 극소수만 악기 레슨을 받았고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아버지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다고 나의 꿈이 시들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발령이 나서도 지속되었고 첫 급여를 받자 악기 점으로 달려가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할 정도로 나의 열망은 컸고 결국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었다. 이게 먼 훗날 두 자녀 악기 교육에 도움이 될지 그때 미처 몰랐다. 엄마가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레슨을 받으니 두 자녀 교육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또한 내가 어릴 적 지금처럼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영화를 봤고 직접 간접으로 영화가 주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저 하늘에 태양이' 영화를 보면서 슬픈 사연에 눈물이 흘렀지만 나도 언젠가는 스키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했다. 내 어릴 적 스키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놀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셨다. 먼 훗날 세상은 변하고 스키는 대중화되니 어릴 적 하고 싶다는 열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무슨 영화였는지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그때 영화 속에서 골프 치는 것을 보며 난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역시 먼 훗날 세월이 흘러 가능한 일이었다. 뉴욕에 올 때 골프채를 동생에게 줘버려 지금은 머나먼 당신이 되었지만.

세계 여행 마찬가지다. 어릴 적 세계여행을 꿈꾸었다. 한국에서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것은 아마도 88 올림픽 이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 어릴 적 해외여행을 꿈꾸었으니 엄마가 보는 딸은 항상 철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해외여행 가능한 일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런던이 우리 가족의 첫 여행지였고 파리, 베를린, 프라하, 로마, 베니스, 빈, 동경 등 수많은 도시를 여행했다.

외국어 공부 마찬가지다. 불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했다. 대학 시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까 혼자 늘 생각에 잠겼지만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지내며 외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졌다. 내가 원하는 대로 평생 내 삶을 만들어 가고 누가 나 대신해준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채우기 위해 난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부자 부모 만나서 부자 남편 만나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해결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지도 모르지만 단 하나도 내겐 그저 얻어지는 게 없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지내니 우린 무에서 시작했으니 말로 할 수 없이 많은 고생을 할 수밖에. 세월이 오래오래 흐르니 어느 날 꿈꾸던 집이 완성되었으나 그 후 다시 멀리 떠나오니 무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자는 꿈도 꾸지 말라고 누가 그럴 수 있어.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조금 가능하다.


나의 결혼 조건도 많이 달랐다. 세 가지 조건: 아무것도 갖지 않은 남자, 나랑 같은 또래의 남자, 미래 장래성이 있는 남자. 난 아주 이상적인 사람이고 그런 나의 이상에 맞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무에서 시작한 삶이 주는 위대한 고통의 대가를 달게 받고 세상이 뭔지 조금씩 깨달았다.


뉴욕에 온 것도 어릴 적 나의 꿈과 연관도 있다. 어릴 적 항상 외국에 가서 사는 꿈을 꿨다. 그게 가능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위기를 맞았을 때. 고통과 상처로 난 흔들흔들 거렸고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 난 뉴욕에 갈 거라고 결정을 내리고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해냈다. 40대 중반 유학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내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그리 말을 할 정도로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해냈다.


내 몸은 비록 늙어가나 내 마음은 영원히 늙지 않을지 몰라. 난 정말 이상적인 사람이고 평생 나의 꿈과 이상을 추구하면서 천천히 내 삶을 만들어 왔다. 세상이 바라는 기준대로 한 번도 살지 않고 언제나 내 기준대로 천천히 가고 있다. 아다지오보다 더 느리게. 갑자기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듣고 싶다.



2018. 1. 5 자정이 되어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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