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우연히 비극적인 단편 소설을 읽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하면 아들이 10대 교통사고로 하늘로 가 버린 내용이다. 엄마는 학교 교사였고 아들은 말썽꾸러기라서 모진 엄마 역할을 했다고 아들은 학교 출석일 수도 모자라서 퇴학을 당했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이 집에 찾아와 아들이 밤에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간 이야기를 건네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고. 엄마는 교사로 지내면서 말썽 많은 학생들을 자주 상담했지만 아들은 엄마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터지고 가슴이 아팠다고. 아들은 통행금지 시각이 밤 10시라 해놓고 연락도 하지 않고 늦은 경우가 많았고 학교 공부에 지루해했다고. 그러나 미처 아들이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날 줄을 몰랐다고. 소설이지만 소설은 분명 현실에서 가져온 일이라 짐작이 되었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부모와 자녀는 약 30년의 차이가 나고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 자란다. 그러니 당연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 부모와 자식은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비슷한 면도 있을 것이다.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 단지 행복에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누군 성공한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게 행복의 목표가 될 것이고 누군 변호사가 되어서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할 거고 누군 성공하는 연예인이 되어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사회적 지위와 부를 동시 갖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이렇듯 각각 원하는 꿈이 다르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직업도 다를 테고 자식이 원하는 직업도 다를 수도 있다.
부모는 자식이 최고로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자식 역시 부모가 최고로 멋진 부모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의 기대는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부모가 성공한 상류층 부모보다 더 많을 테고 평범한 자녀가 소수의 특별한 학생 숫자 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기대는 높고 서로 엇갈리며 동시 부모의 기대치가 높을 경우 부모 자식 사이 많은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스스로 부모니 자식의 삶을 모두 통제하려는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람도 있다. 자식이 성년이 지나 마흔이 지나도 넌 내 자식이야 하면서.
그렇듯 부모의 권위만 내세운 사람도 있고 또한 자식이 사회적으로 인정할 만큼 꽤 많은 업적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하지 않은 경우도 가까이서 봤다. 미국에서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원에서 공부하는데도 엄마의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들은 엄마 곁에 가는 게 싫다고 한다. 차라리 기숙사에서 지낸 게 더 좋다고. 엄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엄마를 만나면 서로 부딪히니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그럴 거라 짐작한다.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식이라도 청년기 과정은 늘 고민을 하고 방황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트로피가 아니다. 남이 인정할 만한 것을 이루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세상의 변화는 빠르고 갈수록 경쟁 사회로 변하고 있다. 부모도 자식도 서로서로 존중하고 살아야 한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차지 않는다고 실망의 눈빛으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피해야 한다. 거꾸로 자식이 부모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 누구도 싫어할 테니.
자녀가 젊을 적 방황하는 것도 내버려 두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사랑일지 모른다. 누구나 젊을 적 방황을 한다. 스스로 방황을 하다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게 네 인생의 정답이야"라고 부모가 모범 답안지를 쓸 수는 없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 내가 보는 부모와 자녀 사이 갈등과 마찰은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일어난 경우가 많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다만 자식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잔소리를 하니 그게 악인 줄 모른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싶은데 거꾸로 가고 있는 부모가 많다. 잔소리는 금물이다.
한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식은 서로 많은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텐데 자녀로 인해 쓰라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도 꽤 많은 것으로 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말도 하지 않고 가출을 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가까이서 듣고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뉴욕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방문해 대학 친구에게 전화를 거니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나중 알고 보니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자식이 그럴 거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집 일이었는데 그런 일을 당하니 너무 가슴 아프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부모가 자녀에게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 눈만 뜨면 쉼 없이 잔소리를 하는 모진 엄마 아빠도 있을 테고 자식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자식을 위한 방법이 무언지 모른 부모가 많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니 가치관도 다를 것이고 사고가 다르니 서로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고 함께 문화생활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을 것이다. 단 이런 환경이 한국에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조건 좋은 성적을 위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고액과외를 시키니 자녀 얼굴 보기도 힘들고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대화를 나눌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런 한국 교육 환경에 찬성하지 않고 한국에서 지낼 적에도 학원에 보내서 밤늦게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따라 하지 않았다.
행복은 반드시 학교 성적 순이 아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스스로 독립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부모가 도움을 줘야 한다. 세상 기준대로 자식이 해주길 바라면 안 된다. 자녀가 비록 어릴지라도 자녀도 독립된 인격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부모와 자식 모두 서로서로 존중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자녀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날 줄 알았다면 모진 엄마 역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가출도 마찬가지다. 가출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런 가정 문제는 그냥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 살아가면 그런 마찰이 줄어들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존중하고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존중하고 살아가야 한다. 상당수 젊은 층이 부모가 상류층이 아니라서 힘들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는 금수저, 은 수저, 동수 저, 흙 수저 등 수저 계급론을 언급하며 모든 게 다 부모 탓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속담처럼 부모의 인생도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삶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의 삶도 어디서 시작했고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흙 수저 인생이라면 곧 자신도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하루아침에 좋은 가문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살다 보면 10년이 지나면 분명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과 삶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내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자면 난 그렇게 판단한다.
나 역시 완전한 인간이 아니고 부족한 면도 많다. 그럼에도 두 자녀와 엄마 사이는 꽤 좋은 편에 속한다. 다른 집과 다른 환경도 있다. 두 자녀 어릴 적 특별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고 매일매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년 이상을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습을 도와줬다. 음악으로 연결된 특별한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음악을 아주 사랑한다. 특별 레슨을 위해서 엄마는 악마 역할을 했고 어릴 적 모든 생활을 통제받으니 무척 힘들고 엄마를 싫어했을지도. 그런데 딸도 훗날 하버드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앙상블 연주를 하게 되면서 그제야 어릴 적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게 잘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웠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니 고마울 수밖에. 난 두 자녀를 엄마 트로피를 위해서 특별 레슨을 시킨 게 아니고 학교에 보내니 재능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자녀 진로를 엄마가 결정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에게 맡겼다.
부모와 자식은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서로서로 존중하는 게 정답이다. 난 함께 많은 공연을 보고 가고 함께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갈 때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엄마가 대학 시절 자주 들은 노래를 부른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기도 하고 아들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엄마를 따라가서 함께 공연을 보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르네, 하면서 유튜브에서 찾아 노래를 듣기도 하고 나 역시 잘 모른 노래를 두 자녀가 알려줘서 듣는 경우도 있고 함께 배우고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고 살아간다. 아들과는 함께 집에서 왕복 7마일 되는 황금 연못에 자주 산책을 가기도 했다. 왕복 2시간 정도 달리며 그냥 걷고 달리는 게 아니다. 우린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두 자녀가 성장하니 엄마도 자녀에게 많이 배운다. 엄마는 완전한 인격체도 아니고 두 자녀와 함께 성장을 해간다. 두 자녀는 징징거리는 엄마를 아주 싫어한다. 한마디도 반복해서 듣는 것을 싫어한다. 나도 모르게 가끔 반복하면 엄마 그 말했잖아요, 한다. 잔소리는 절대 금물이다. 두 자녀와 함께 끝없는 배움을 추구하며 산다. 배우지 않고 현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40대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지내니 이민 나이가 두 자녀와 같고 당연 뉴욕 기준에 맞추면 엄마는 간난 아이니 두 자녀 기대치에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하니 엄마에게 불평불만도 많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나의 최선을 다해도. 어느 날 다른 나라에 가서 언어와 환경이 다름에도 자녀가 최소 바라는 기준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난 평범한 인간이고 많은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하루는 선물이고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지낸다.
2018. 1. 6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