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1 일요일
일요일 새벽 빨간 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몇 차례 잠에서 깨다 다시 잠들었는데 대학 시절 친구가 꿈에 나타났다. 함께 클래식 기타반에서 활동하던 친구는 영어 교사로 몇 년 근무하다 독일로 유학 갔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알 수 없는 운명이 찾아와 어느 날 산산조각으로 파손되어버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친구들과 삶이 극과 극으로 달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어가는데 왜 꿈에 나타났을까. 대학 시절 우린 아무것도 몰랐지. 세월이 갈수록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함께 카페에 가서 이야기 나누며 얼마나 행복했는가. 매년 봄과 가을에는 정기 연주회 준비하느라 자정까지 합주 연습을 했다. 아르바이트하고 기타 레슨 받고 연습하고 학과 공부하느라 무척이나 바빴던 대학 시절. 영롱한 클래식 기타 소리에 행복했는데 그때가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무거운 검은색 기타 케이스 들고 교정을 거닐며 동아리반에 갈 때도 무척 행복했지. 아침 일찍 학교에 가면 합창부 남학생이 피아노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합창반과 함께 동아리반을 사용해서 가끔 만났던 남학생은 어디서 무얼 할까.
일요일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뉴욕. 안갯속을 거닐며 산책을 했다. 얼마 전 날 행복하게 했던 매화꽃은 시들어 가고 있었다. 빛바랜 사랑 노래가 떠올랐다. 새벽 기도 하러 성당에 가는 길 흰 동백꽃, 무스카리, 분홍색 벚꽃, 수선화 꽃, 튤립 꽃, 히아신스 꽃, 자목련꽃을 보았다. 사월이 정말 아름답다.
기도를 하고 한인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신선한 조개와 새우와 상치 두 포기와 소파와 순두부와 수육용 돼지고기 약간 등을 구입하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신선한 상치를 구입하면 기분이 좋다. 가격은 엄청 비싼데 시들어 가는 상치를 팔 때가 더 많다. 새우와 조개를 넣어 끓인 순두부찌개 맛이 좋았다.
변덕스러운 날씨. 며칠 전 여름처럼 덥다 다시 겨울처럼 춥다. 추운 날은 역시 따뜻한 음식이 좋다. 일기예보대로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백만 개의 빗방울을 보고 새들의 합창도 들었다.
날씨 좋은 날에도 지하철을 타면 승객들 옷차림은 다르다. 겨울옷을 입은 사람도 여름옷을 입은 사람도 봄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마음의 온도가 다른 걸까. 외부로 보인 것과 내면은 얼마나 다른가. 마음이 추우면 몸도 춥다. 나이 들어가니 따뜻함이 더 좋다.
늦은 오후 아들과 운동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여전히 비가 내려 운동 대신 꽃향기 맡으며 산책을 했다. 봄이라서 화사한 빛으로 물들어 가는 동네. 뉴욕시 집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 거의 1년 동안 찾아 헤매다 어렵게 구한 집 위치는 꽤 좋다. 1940년대 완공된 낡은 오래된 아파트라서 불편한 점도 무척이나 많지만 공원과 한인 마트가 가까워 좋은 편이다. 한국에서 누리던 거 다 포기하고 뉴욕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지낸다. 아무것도 없이 자연처럼 사는 뉴욕의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삶의 종착역은 묘지란 것은 알지만 여전히 안개 가득한 삶.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하염없이 내린 봄비에 센트럴 파크 벚꽃은 떨어졌을까. 집에 돌아오니 우산에 벚꽃 잎들이 수를 놓아 웃었다. 참 예쁜 계절.
사진은 플러싱 주택가 뜰에서 찍었다.
뉴욕의 봄날은 눈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