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따라 걸으며 추억에 잠기다

by 김지수

2021. 4. 12 월요일 봄비


GqMPaF6o4KfkJzlgRKoFe52Fums 뉴욕에 흐드러지게 핀 자목련꽃들


봄비가 흩뿌린 날 아침 일찍 꽃길 따라 걸으며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꽃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4월.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 아래서 편지를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편지를 보낸지도 받은지도 꽤 오래되어간다. 하긴 전자메일을 사용한 후로 손글씨로 편지를 보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플러싱에 튤립 꽃, 히아신스 꽃, 수선화 꽃, 벚꽃, 목련꽃, 아이리스 꽃, 제비꽃, 무스카리 꽃과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화사하다. 3월 20일경부터 피기 시작한 수선화 꽃은 작별 준비를 하고 있다. 꽃이 피면 지니 시기를 놓치면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아들에게 봄비 내려 센트럴 파크 벚꽃이 지면 어떡해?라고 물으니 "내년에 봐야지."라고 말했다. 내년에 다시 벚꽃을 볼 수 있을까. 뉴욕에서 얼마나 더 오래 머물지 모르겠다. 삶은 우리 가족을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매일 기도를 하면서 신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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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뉴욕의 봄에 많이 피는 화사한 빛의 수양 벚꽃



거리에 우수수 떨어진 꽃잎들을 보고 슬픈 추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두 자녀와 함께 가출을 할 때 거실 탁자 위에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시로 시작하는 글을 두고 떠났다. 운명의 갈림길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 안개 걷히자 멀리 떠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폭풍이 불지만 않았다면 눈물 흐르는 삶을 살지 않을 텐데...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날 찾아와 고통의 바다에서 숨 쉬고 산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를 어떻게 말하나. 아름다운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차마 꺼낼 수도 없다.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는 침묵을 깨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삶은 알 수 없는 것.


봄비 내린 날 아침 일찍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말썽을 부리지 않아 빨래가 말라 더 좋았다. 동전만 먹고 건조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얼마나 불편한가. 비 오는 날이라 빨래가 마르지 않으면 곤란한데 다행이었다. 정착 초기는 한 푼이라도 아낀다고 손세탁을 해서 집에서 말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들이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 불평하니 그만두었다. 부잣집 자녀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개인 튜터를 받고 다니는데 옷에서 냄새가 나면 어떡하냐고 말하니 미안했다. 그 후로 손세탁을 하지 않고 빨래방을 이용했다. 삶은 눈물이더라.


세탁 후 닭죽을 끓여 먹고 저녁에는 수육을 만들어 갓김치와 함께 먹었다. 며칠 전 딸이 갑자기 갓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한인 마트 옆 가게에서 사 왔는데 딸 보다 내가 더 맛있게 먹고 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을 먹으니 마치 한국에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외국에 살더라도 형편이 되면 자주 한국에 방문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마음과 달리 고국 방문이 어렵다.


꽃이 피면 지니까 흐리고 봄비 오는 날에도 산책을 했다. 꽃피는 4월은 꽃들이 날 불러 세우니 무척이나 바쁘다. 꽃 향기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렌즈에 예쁜 꽃들을 담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본 노랑꽃은 유채꽃을 연상하게 했다.


제주도에서 봤던 유채꽃밭을 어찌 잊으리. 진달래꽃과 유채꽃은 한국적 정서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다인종이 사는 뉴욕은 애완견 종류도 무척 많고 꽃들도 다양한데 진달래꽃과 유채꽃은 상당히 귀한 편이다. 그래서 더 그립다. 두 자녀 어릴 적 묵었던 신라 호텔도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어린 아들은 신라 호텔 앞에서 그물 침대를 탄 기억을 잊지 못한다. 행복한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가 보다. 극과 극으로 다른 뉴욕 환경이라서 두 자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IMG_1413.jpg?type=w966 맨해튼 센트럴 파크에 벚꽃 구경하러 간 사이 분홍색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월 동백꽃이 여기저기 피니 한국에서 들은 조용필 노래가 떠올랐다. 꽃 피는 동백섬에 가지도 않았지만 노래를 통해서 알게 된 동백섬의 봄은 어떤지 궁금도 하다. 동백꽃 피는 아름다운 섬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QiBB1DMwYnML4XbOPJe1IhXCWdE 유채꽃밭은 떠오르게 한 노랑꽃들



요즘 한국 가요를 가끔 들으니 딸이 엄마가 늙어가나 보다고 말하니 웃었다. 폭풍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친구들과 정다운 시간을 보낼 텐데... 뉴욕으로 떠나올 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노래를 자주 들었다. 숙명은 뭐고 운명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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