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 토요일
싱그러운 오월의 첫날 아침 추운 겨울처럼 추워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 화사한 빛의 겹벚꽃과 작약꽃은 어느새 작별 준비를 하고 있어 아쉬움 가득했다. 청아한 딱따구리 새와 빨간 새와 파랑새의 노래를 들으며 싱그러운 초록 제전을 보며 햇살 아래 거닐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백만 년 만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생신이었다. 자주 전화를 하고 싶지만 엄마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셔 나 역시 불편한 마음이다. 내 형편이 좋다면 듣기 싫은 말도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 아주 작은 일도 우주처럼 크게 들리는 보통 사람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엄마 곁에서 산다면 자주 찾아뵙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텐데 수천 마일 떨어진 뉴욕에서 사니 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뉴욕은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도시라서 그냥 누리는 혜택이 무진장 많지만 뉴욕의 삶은 한국과 극과 극으로 반대라서 지하 인간으로 살면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이 기적이다. 산산조각으로 파탄이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왜 운명이 찾아와 우리 가족을 이리 힘들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K와 통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그녀가 던진 한마디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숨 쉬고 사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하늘로 먼 여행 떠난 친정아버지도 친정 엄마도 이혼을 반대하셨다. 대학 시절에 만나 인연이 된 두 자녀 아빠와 헤어진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더 좋은 날이 열리면 환영할 텐데 작별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이 그냥 쉬운 길이 아니라서 분명 반대하셨을 거다.
내가 뉴욕으로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과 지인들과 친척들 모두 깜짝 놀랐다. 기어코 오고 말았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장애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우리 가족을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게 할 줄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나아지겠지 희망을 가져보지만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이 멎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니 친구들과 지인들과도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다. 친정 동생들 역시 이민 생활과 싱글맘 형편을 잘 모를 것이다. 작은 일도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 사람에게 이래요 저래요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침묵을 지키고 산다. 세월이 흘러가면 언제 침묵을 깨뜨릴 날이 올지 아직은 모르겠다.
한국 가족의 이민 생활을 담은 영화 <미나리>를 보고 싶은데 아직 볼 기회가 없었다.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을 받아 새로운 한국 영화사를 썼으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참 대단한 윤여정 배우. 80년대 이혼하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는 그녀. 당시에는 이혼한 배우가 활동하기 무척 힘들었다고 하는데 해내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을지 상상으로 부족하겠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아픔이다.
사월의 마지막 날 유령이 찾아와 놀랐다. 왜 가끔씩 유령이 찾아오는지 모른다. 어제저녁 아들이 햄버거를 만들 때 난 세탁을 했다. 3대의 건조기에 세탁물을 넣고 집으로 돌아와 1시간 후 건조기에 담긴 세탁물을 찾으러 갔는데 한 대의 건조기 뚜껑이 열려 있고 세탁물은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분명 내가 동전을 넣고 뚜껑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유령인가? 아니면 누가 일부러 그런 건가? 덕분에 다시 동전을 넣고 건조기를 돌렸다. 그렇게 1년의 1/3이 지나갔다. 세월 참 빠르다. 너무너무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새해 계획도 무산되고 산책하며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빨리 폭풍이 지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