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 온라인 음악 축제, 발레 공연 & 산책
2021. 5. 21 금요일
며칠 무리한 일정을 보내서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이른 아침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아들과 운동하러 가고 그 후 혼자서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쌀과 배추김치와 깍두기와 간장과 두부와 딸기와 블루베리 약간을 구입해 택시를 불러 타고 집에 돌아왔다. 깜박 잊고 상추를 구입하지 않았단 것을 택시를 부르고 나서 알았지만 무거운 수레를 끌고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그대로 택시를 기다렸다.
올봄 처음으로 딸기를 먹었다. 봄이 딸기 먹는 계절인데 5월 중순이 지나 처음 먹는다고 하니 옆에서 아들이 그런가요?라고 말하니 미안했다. 어쩌다 삶이 이리 복잡하게 변해 두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지. 아무도 없는 세상 한 복판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와서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가. 어렵고 힘들 때 우리 가족을 도와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뉴욕은 사하라 사막이지. 장님처럼 살다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해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민자의 삶은 하루아침에 안정되지 않는다. 물론 특별한 분도 있다.
오후 잠시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온라인 음악 축제를 보았다. 카라얀 지휘로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들으며 운명을 맞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탤런트처럼 예쁘고 고운 멋쟁이 음악 선생님 남편이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고등학교 시절 만난 연하의 남자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는데 슬픈 운명을 맞이했다. 음악 선생님 자취방에서 믿어지지 않는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 마치 내 이야기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때는 내 슬픈 운명도 몰랐다. 아이 아빠가 전방에서 군 복무할 때 학교에 휴직계 제출하고 아무도 없는 휴전선 근처에서 1년 동안 살았다. 새벽에 테니스 레슨 받고 집에서 피아노 연습하고 초등학생들 피아노 레슨 해주고 책 읽고 나도 피아노 레슨 받던 무렵. 전방 시절에도 무지막지한 고생을 했다. 그때 음악 선생님이 휴직계 내고 남편 따라간 경우는 대개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내게 그러면 안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가끔씩 떠오르는 L 의사. 군 복무 3년 차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뇌종양 말기였다.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라고 말했지만 그 후로도 오래 살았다. 참 믿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였다.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집어 주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집 두 명의 자녀와 우리 집 두 자녀와 같은 나이다. 연락이 끊긴 지 너무 오래되어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 연락을 하지 않은 채 고독하게 지내고 있다. 친구들 만나면 울어버릴 거 같다... 아, 지독한 아픔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모처럼 발레 공연도 잠시 보았다. American Ballet Theatre School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도 환상적이다. 메트 오페라 공연이 막이 내리면 발레 공연이 시작된다. 갈수록 삶이 복잡해지니 발레 공연 본 지가 꽤 되어간다. 뉴욕은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공연 천국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뉴욕에 살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뉴욕이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였다. 슬픈 운명이 날 데리고 온 뉴욕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독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누가 내게 삶이 뭘까 라고 묻는다면
눈물의 향연
고통의 향연
아픔의 향연
고독의 향연
이라고
말할 거다.
꽃이 1년 365일 가운데 불과 열흘 정도 피듯이 우리네 삶도 기쁜 순간은 아주 잠시. 고통이 없는 삶이 어디에 있으리.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삶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옥일 것이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해도 지옥일 테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많아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살아가. 가슴에 사랑 가득 품고 살아야지.
신은 왜 내게 고독한 운명을 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