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식물원
2021. 5. 26 화요일 맑음
이른 아침 장미꽃 향기 맡으며 산책하고 돌아와 딸과 카페에 다녀오고 그 후 전기밥솥 버튼을 누르고 아들과 운동하러 다녀왔는데 밥이 되지 않아 당황했다. 전기밥솥을 사용하면서 말없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 더 놀랐다.
정착 초기 한인 마트에서 아주 저렴한 전기밥솥을 구입하고 롱아일랜드 힉스 빌 IKEA (이케아)에서 조립 가구와 기본 접시 등을 구입했는데 나중 딸이 엄마를 위해 일본 조지루시 코리끼 전기밥솥과 한국에서 사용하던 영국 본차이나 로얄 알버트 접시와 컵을 구입했다.
두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왔고 애초에 오래오래 머물 계획은 없어서 기본적인 살림용품을 구입했는데 딸은 한국과 너무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안 되었던 거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딱 한 개의 뚝배기 그릇도 오래전 롱아일랜드 제리코 아파트 이웃에 살던 한인 목사님이 캐나다 토론토로 떠나며 내게 주던 물품이다. 한인 목사님은 미국 서부에서 신학 과정을 마치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민권 있는 한인 여자 만나 결혼해 영주권을 해결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어린 아들 교육을 위해 뉴욕에 왔지만 토론토와 뉴욕이 너무나 다르고 렌트비와 물가가 너무 비싸단 이유로 1년도 채 안되어 토론토로 돌아가셨다. 목사님 부인이 약사였는데 토론토에서는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캐나다 약사 자격증으로 뉴욕에서 돈을 벌 수 없는 입장. 목사님 친구 소개로 뉴욕에 왔지만 결국 포기하고 캐나다로 돌아가셨다. 그때 내게 준 뚝배기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살던 때와 극으로 달라진 뉴욕 환경이 사춘기 자녀에게는 충격을 줬던 거 같다. 삶이 너무너무 복잡하니 여행 떠날 여유조차 없는데 미국 동부 여행 경비는 거의 대부분 딸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주는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고, 많이 벌어 많이 소비하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우리 집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산다. 상황이 복잡하고 삶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한국에서 살던 때와 극으로 다른 환경이다. 한국을 떠나 뉴욕에 올 때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을 거라 미처 생각을 못했다.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무엇하리.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미래는 미래.
전기밥솥 사건은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라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딸이 보스턴 캐임브리지 연구소에서 일하다 서부로 옮길 때 대부분의 짐을 정리했는데 일본 코끼리 밥솥은 아니지만 그때 작은 밥솥을 내가 가져왔다. 그래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수요일 오후 스케줄은 퀸즈 식물원에 가는 것. 한바탕 소동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아침 6시부터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서 빈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낯선 중년 여자의 얼굴 표정은 내가 혹시나 앉으면 어떡하나라고 적혀 앉지 않았다.
식물원에 가려면 다른 버스에 환승해야 하는데 몇 정거장 가서야 알아차리고 내렸다. 남의 눈치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하는데 무시하지 못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온몸에 받으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계획대로 퀸즈 식물원 앞에 도착했다. 수요일 오후 3-6시 사이 무료입장. 나 보다 더 일찍 도착해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입장료에 상관하지 않고 3시 5분 전 입장료를 지불하고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는 방문객도 있었다.
나의 목표는 장미 요정을 만나는 것. 또다시 예상하지 못한 봉변을 당했다. 다름 아닌 물벼락. 내가 방문하는 시각에 장미꽃에게 물을 주고 있어서 피할 수 없었다. 어쩜 딱 그 시각이었는지. 장미꽃을 보러 갔는데 물을 피하지 못하니 물벼락을 맞으며 장미꽃 향기를 맡았다.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가난의 의미를 깨달았다. 가난이란 두 글자는 추상적이라서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텐데 신의 선물이었나. 이민 1세로서 싱글맘으로 살다 보니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떠나올 때 대학 동창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뉴욕에 가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고 친구들이 걱정할 때 "학생처럼 살 거야. 청바지 하나면 충분해"라고 말했고 그 마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다. 소유하는 삶이 아닌 존재하는 삶을 실천한다.
마음 어지러운 일들이 무척이나 많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무한도전이다. 더구나 싱글맘 가족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 마음 헤아리기 어렵고,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 마음 헤아리기 어렵고, 과부 사정은 과부가 잘 알 듯이 싱글맘의 특별한 상황도 경험해야 알 수 있다. 날개 하나 잃어버렸지만 꿈과 희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산다.
퀸즈 식물원에서 찍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