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7 토요일
새벽에 눈 뜨면 바다를 보러 간다. 아침 바다가 예쁜 줄도 몰랐다.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찾아가면 알 텐데... 꽤 오래전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때 가끔 코네티컷 주로 레슨을 받으러 갔다. 운전을 하기 무척 싫어하는 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낯선 도로를 달렸다. 바다 풍경이 무척이나 예쁜데 고속도로에서 멈출 수도 없고 위치가 어디쯤 인지도 몰랐다.
정착 초기 뉴욕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갈 때도 지나쳤던 바다. 그때 내 옆에 탔던 강사가 '바다 예쁘지요?'라고 말했다. 폭우 속에 30분 이내에 시험장에 도착해야 하는 순간에!
뉴욕 운전 면허증을 받으려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는지. 한국에서 20대 중반부터 운전하기 시작했으니 오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뉴욕 운전면허시험에 실패할까 봐 플러싱 한인 자동차 학원에 등록해 운전 연수도 받고(사실 필요 없었는지도 몰라, 오래오래 전 1시간당 40불, 엄청 비쌈) 브롱스에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갔는데 주행 시험도 못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슬픈 추억이 있다.
뉴욕에서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갈 때 차를 가져간다. 차가 없으니 학원에서 대여한 차로 주행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상업용 보험에 들지 않은 게 들켜서 시험도 못 보고 롱아일랜드로 돌아올 때 서러움을 어찌 말로 하리. 롱아일랜드는 차 없이 지내기 힘든 곳이라 당장 필요한데...
원래 퀸즈에서 주행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학원에서 이미 정원이 차서 브롱스로 가서 봐야 한다고 주장해 약간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지만 아무 말 안 하고 더 비싼 등록비와 대여비를 주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운전면허 시험을 봐야 하는데 다시 연수를 받으란다. 참 바보 같은 나. 연수도 필요 없었는데 다시 연수를 받았다. 비싼 수강비 내고. 두 번째 시험 날짜에 미리 주행 연습하기 위해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강사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은 휴대폰 없이 지냈다.
그래서 그림자도 안 보이는 강사에게 연락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렸다. 학교 경비원에게 전화 한 통 사용하자고 하니 한 마디로 거절했다. 하필 강사를 기다리는 동안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주행 시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첫 번째도 날 골탕 먹이더니 두 번째 시험 날짜에도 날 골탕 먹였다.
폭우 속에 몇 시간 기다렸는데 운전면허 시간 약 30분 전에 나타나 내게 다짜고짜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큰 소리를 질렀다. 집 전화만 있고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어찌 전화를 받는다는 말인지! 그러고 나서 강사는 내게 운전을 하고 시험장까지 달리란다. 그것도 폭우 속에. 운전 시야가 흐려서 운전하기 무척 힘들었다. 그때 운전면허 시험장에 갈 때 지나쳤던 바다가 바로 이곳.
롱아일랜드에서 살다 뉴욕시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아들과 함께 조깅하러 백조가 사는 연못에 갔다. 바로 수련꽃이 피는 곳이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바다 전망을 볼 수 있으니 가끔씩 찾아갔다. 요즘은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간다. 처음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갈 수 있는지 몰랐다. 아들과 조깅하러 다니다 보니 낯선 지역이 익숙한 곳으로 변하고 그 후 시내버스로 찾아갈 수 있단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몰랐다. 롱아일랜드 제리코가 어디에 있어요?라고 딸 외국인 학교 선생님에게 물으니 답변이 기가 막히다.
"제리코가 롱아일랜드에 있단 것만 알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프린스턴 대학 출신이고 아버지가 맨해튼에서 닥터 오피스를 경영하셨다. 뉴욕에서 꽤 오래 살았는데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하나하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어마나 많은 열정을 쏟았는가.
새벽에 깨어나 아침 바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상당히 피곤하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피곤하다. 그래서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갈지 말지 망설였다. 플러싱 집에서 상당히 멀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바다와 연못 사진 정리도 끝내고 사진을 버린 후 가야 해서 더 피곤하다. 내 휴대폰 저장 공간은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 정리를 끝내자마자 마음이 변했다. 식사를 하고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찾아갔다. 날씨가 좋으면 환성적인데 하필 비가 내려 피곤했다. 커피 한 잔이 내겐 마약인데 조 커피값이 저렴하지 않아서 사 먹지 않았다. 특별전 보고 들판에서 산책하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져 흠뻑 젖었다. 플러싱까지 꽤 오래 걸리고 또 주말 시내버스는 자주 운행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에도 섬에도 다녀오고 아침 바다와 수련꽃 보러 다녀왔다. 멀다고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핑계를 대면 끝이 없다. 나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힘들지만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