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뉴욕 첫눈. 공연. 센트럴 파크. 하누카

by 김지수

2021. 11. 28 일요일


IMG_5207.jpg?type=w966 맨해튼 5번가 플라자 호텔 앞에 유대인 명절 하누카 촛대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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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고 찬란한 빛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 첫눈이 내렸다. 첫눈 내리는 날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가슴만 설레고 그냥 좋다.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이면 좋을 텐데 내리자마자 사르르 녹았지만 내 마음은 플라자 호텔 옆 센트럴 파크로 달려갔다. 호수에 첫눈이 펑펑 내린다는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은 가을날 아침.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쌓으면 좋을 텐데 한국에서 함께 청춘을 보낸 정답던 친구들과 소식도 뚝 끊긴 지 오래. 연말이 되니 그리움만 짙어가는데 선뜻 연락하기 어렵다.








그래서 첫눈이 오는 날 무얼 했냐고?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챔버 뮤직 공연을 보았다.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로 다시 세상이 시끄러워 모든 문화 행사가 중단될까 걱정이 되는 나날 천재 학생들의 무료 공연이 얼마나 좋은가. 만사를 제치고 지하철을 타고 달려갔다. 집이 학교 옆이라면 하루 종일 공연을 볼 텐데... 편도 3-4회 환승하고 달려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맨해튼 나들이가 가볍지는 않다. 그래도 오랜만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비롯 모차르트, 드뷔시 음악 등을 들어서 좋았다. 내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와 비올라 소리. 아르페지오 소나타는 늘 첼로 연주로 들었는데 생에 처음으로 비올라 연주로 들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흐린 가을 하늘에서 하얀 첫눈이 내린 날 난방이 잘 된 공간에서 천재들의 공연을 듣는 순간은 천국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3중주를 연주했던 세 명의 남학생들은 얼마나 오래 호흡을 맞췄는지 연주가 꽤 좋았다. 연주를 들으며 함께 연습 많이 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대가들의 챔버 뮤직 공연을 볼 때도 있지만 항상 좋은 게 아니다. 연주를 보면 함께 호흡을 충분히 맞추지 않았구나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엠마누엘 엑스 피아니스트 제자 피아노 연주도 무척이나 좋았다.


밤늦은 시각까지 챔버 뮤직 공연이 열리지만(일부 공연은 예약도 필요 없음, 백신 접종과 아이디 필요) 오후 1시 공연만 보고 밖으로 나와 노란 은행잎들이 떨어진 링컨 스퀘어를 거닐며 단테 상도 바라보고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아지트에 들려 핫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을 했다. 요즘 커피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 않았지만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참 좋다.




뉴욕에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센트럴 파크에 달려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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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sQbR4TLS4_Q9IY_ja-_F2K-Wnk
wEp2REh_8MX6zGAuBC_djTFn9PA 세계 귀족들이 사는 센트럴 파크 주변 빌딩들은 하늘에 닿을 거 같다.



에너지 충전하고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 플라자 호텔 입구에 내렸다. 춥지만 않다면 분명 걸었을 텐데 날씨가 추워 지하철을 이용했다. 해가 진 후라서 빌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수놓는 아름다운 공원에서 산책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산책은 언제나 즐겁다. 만약 내가 플라자 호텔에서 산다면 매일 공원에서 산책할 텐데... 아침 낮 저녁으로 하루 세 번 이상 산책하면 더 많은 뉴욕 사진이 남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플라자 호텔 앞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촛대가 세워져 있다. 유대인의 명절 하누카가 시작되었다. 뉴욕에 유대인 인구가 많기도 하다. 오래전 대학원에서 만난 운명을 피하지 못한 영화배우 같은 미모의 폴란드계 유대인 강사가 떠오른다. 유대인 의사 남편과 4명의 자녀를 출산했는데 어느 날 의사 남편이 식물인간으로 변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으로 변해 삶이 하루하루 고통이다고 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한데 그 후로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누구나 어렵지만 특별한 운명을 맞는 사람의 삶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숨 쉰다.



UXJbQ-nBG9aT23SgmmZFOaJzdyU 뉴욕 퀸즈 플러싱의 늦가을 풍경


일요일 아침에는 아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저녁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을 했다. 무사히 세탁을 마쳐 얼마나 감사하던지. 가끔 세탁기와 건조기가 말썽을 부리니 언제나 마음 무거운 세탁. 내 복잡한 마음도 세탁기에 넣어 돌려 하얗게 되면 좋겠다. 무거운 마음을 세탁할 마법 같은 기기가 언제 나올까. 내가 한 번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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