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베카 갤러리와 북카페
2022. 1. 15 토요일
오늘도 해가 저문다.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어느새 1월도 절반이 흘러가고 말았다. 내가 시간을 붙잡지 않으면 시간이 저 멀리 날아간다. 매일 바쁘긴 했다. 기록조차 할 시간도 없었으니까.
뉴욕 추위가 무섭다. 뉴욕에 올 때 추위가 뭔지 가난이 뭔지도 모르고 왔는데 세상의 한 복판 뉴욕에 와서 추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가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 뉴욕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의 삶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뉴욕에 홈리스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추운 날 지하철에는 홈리스들이 득실득실하다.
이민이 뭔지도 모르고 40대 중반 겁도 없이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왔다. 다시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눈물과 고통을 먹으며 하루하루 숨 쉬며 세월을 보내야 한다.
토요일 아침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 정말 살을 에일 듯 추웠다. 수 십 년 전 두 자녀 아빠가 전방에서 군 복무할 때는 기온이 영하 20도. 그리 추운데 적응하고 살았는데 그때보다 몸과 마음이 약해졌나. 그때는 젊어서 덜 추웠을까. 무지막지한 고생을 했던 전방 시절...
맨해튼 첼시에 아들이 일 보러 가야 하는데 하필 엄청 추웠다. 새벽에 깨어나 샤워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달려갔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내려 1호선에 환승에 목적지에 내렸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근처 카페에서 책이라도 읽으려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메시지 적기도 힘들 정도로 추워 그냥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1호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으로 가서 유니온 스퀘어 역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했다. 난 무제한 교통 카드를 구입해 사용한다. 그러니까 지하철 요금에 신경을 안 써도 된다. 무제한 교통 카드가 아닌 경우 1회 사용료가 2.75불이니 부담이 된다.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북카페에서 핫 커피 마시며 음악 들으며 책을 읽자고 생각하니 몸이 따뜻해졌다. 아들에게는 북카페로 갈 테니 일 보고 연락하자고 말하고 난 북카페 문을 여는 시간 도착하니 첫 손님이었다. 맨해튼이 아닌 플러싱에 사는데 첫 손님이라니.
한동안 북카페에 자주 방문하지 않았다. 그사이 내가 아는 바리스타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새로운 젊은이들이 일하는데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커피를 건네주었다. 그래도 감사함으로 마시며 몸을 녹였다.
아들이 일을 보고 연락을 해서 북카페로 오라고 말하니 지하철을 안 타고 걸어서 왔다. 1회 사용비가 2.75불. 결코 저렴하지 않은 뉴욕 물가. 아들은 평소 돈을 아낀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지하철을 타도 될 텐데.
함께 북카페 근처에서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니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집에 돌아가 식사한다고 먼저 떠났다. 그렇다. 뉴욕 식사비가 비싼 편이다. 한국 식사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뉴욕은 팁과 세금을 합하니 더 부담이 된다.
북카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도 보고 데이트하는 노인들도 보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는 북카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커피 한 잔 마시면 잡지와 논픽션과 소설 등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저렴한가. 연인 무릎에 앉아 키스를 하는 젊은이들은 내 눈치를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사랑을 어떻게 속일 수 있나.
북카페서 꽤 오랜 시간 책을 읽다 피곤하니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너무 추워 약간 고민하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살마군디 클럽과 트라이베카 갤러리에 방문했다. 뉴욕시에 약 1500여 개의 갤러리들이 밀집되었단 글을 읽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매일 새로운 전시회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도시라서 좋다. 낯선 작가의 작품을 보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이라서 구겐하임 미술관에 방문하고 싶은데 혹한에 적응이 안 된 몸이라서 포기했다. 브루클린 뮤지엄 특별전도 보고 싶은데 자꾸만 미루고 있다.
매일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뉴욕. 여기저기서 우편물이 온다. 뉴욕 필하모닉, 뉴욕 시립 발레. 카네기 홀, 심포니 스페이스 등. 뉴욕 맨해튼에는 매일 공연을 보러 다닌 팬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