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뉴욕 겨울 폭풍/ 메트 뮤지엄과 식물원

일요일엔 퀸즈 식물원

by 김지수

2022. 1. 1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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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가 겨울 폭풍 영향권에 들면서 눈과 비가 내릴 거란 예보. 일요일 아침 기온은 영하 12도 체감 온도는 영하 18도. 지상이 꽁꽁 얼어가는 추위에 몸과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거실 바닥은 냉동 얼음처럼 차갑고 실내 공간 기온도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작업하긴 무리였다.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추위가 공포란 것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 첫 정착지 롱아일랜드 Dix Hills에서 Jericho로 이사한 것도 바로 추위였다. 집주인이 난방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몇 차례 주인에게 말했지만 시큰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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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사를 했다. 힘든 이사. 부자라면 포장 이사하면 될 텐데 뉴욕은 이사 비용이 너무 비싸 뭐든 직접 한다. 이민 가방 몇 개에 필요한 최소 짐만 담아 뉴욕에 왔지만 이사를 하려는데 혼자 힘으로 짐 정리가 얼마나 힘들던지. 두 자녀는 아직 어린 학생이라서 무척이나 바빴다. 나 역시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라 전공책과 전쟁을 했지만 나 아니면 짐 정리를 할 수 없으니 결국 나 혼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렵게 빈 박스 구하고 혼자 정리하던 슬픈 추억들. 무엇보다 집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뉴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사를 했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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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춥고 춥지만 가만히 집에서 지내긴 아까운 시간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는 마음이다. 맨해튼에 가려고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서 환승하려고 기다리는데 바로 지하철이 오지 않아 얼마나 춥던지. 그럼에도 기다려야 하는 순간. 따뜻한 난방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왜 지하철에 난방도 되지 않은지.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탑승해 미드타운에 도착 나의 이지트로 발걸음을 돌려 핫 커피 마시려는데 미지근하니 기분이 안 좋았지만 직원에게 말하지 않고 테이블로 갔다.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순간이 좋다. 매일 읽으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옆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 톤이 내 귀에 거슬렸다. 빨간색 털모자를 쓴 백인 할머니 목소리가 카랑카랑해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작은 목소리였다면 책에 집중할 거 같은데 도저히 불가능해서 결국 책을 덮고 밖으로 나왔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내 몸을 마비시킬 정도라서 걷기도 힘든 순간 지하철을 타고 플라자 호텔 역에 내려 메디슨 애비뉴로 향해 걸었다. 시내버스 타고 메트 뮤지엄에 가 보려고. 날씨가 좋으면 센트럴 파크에서 걷다 뮤지엄으로 갈 수도 있는데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화려한 명품숍들이 즐비한 곳이라서 눈이 즐거운 거리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후 버스에 탑승했는데 아가씨 손에 종로 핫도그라 적힌 종이 상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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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근처 메디슨 애비뉴 시내버스 정류장에 내려 뮤지엄 마일을 향해 걷는데 뮤지엄 근처에 도착하니 줄이 만리장성처럼 길어 깜짝 놀랐다. 요즘 뮤지엄 방문객들이 많지 않은데 코로나 전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처럼 줄이 길었다.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그런다고 바로 집에 돌아가기는 아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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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216.jpg?type=w966 메트 뮤지엄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집이 메트 뮤지엄 근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속으로 상상하며 마음속에 예쁜 집을 지었다. 내 마음은 매일 예쁜 추억을 모아 행복한 집을 짓고 있다.


내 뒤에서 기다리는 두 명의 청년들은 뮤지엄 방문이 무척 기대되는지 목소리가 활기찼다. 학생이냐고 물으니 콜럼비아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쩌면 학생증으로 무료입장이 아닌가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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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로 지상이 꽁꽁 얼어가는 날 뮤지엄 밖에서 오래오래 줄을 서서 기다릴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음이야 아지트에서 책을 읽을 만큼 충분히 읽다 피곤하면 잠시 뮤지엄에서 전시회 보고 집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틀어지고 말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백신 접종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방문객들이 많으면 표를 구입하는 줄 역시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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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차례. 얼른 신분증과 기부금 약간을 주고 티켓을 받으려는데 직원은 아주 불친절했다. 내가 내민 신분증을 보고 얼마 낼 거냐고 물었다. 이미 테이블 위에 돈을 두었는데. 잠시 후 그녀가 지폐를 들더니 찢어졌다고 인상을 썼다. 지폐가 찢어진 것도 몰랐다. 지갑에 든 종이 지폐에 관심을 둘 에너지가 없어서. 이미 찢어진 것을 어떡해. 돈도 없는데... 인상파 얼굴은 점점 더 찌그러져갔고... 마침내 그녀는 내게 티켓을 내밀었다.



IMG_0245.jpg?type=w966 메트 뮤지엄 초현실주의 전시회



티켓 한 장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 유럽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고 시간을 보내다 무척이나 난해한 전 세계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도착했다. 작은 글씨로 적힌 설명서를 천천히 읽고 그림을 보면 좋겠는데 나의 에너지는 대서양 바다로 가라앉아 슬쩍 보고 나왔다. 분명 친절한 도슨트가 필요한데...


피카소, 마네, 모네, 고갱 등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도 돌아보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뮤지엄 근처에서 시내버스에 탑승하는데 아무도 없어 충격을 받았다. 텅텅 빈 시내버스에 탑승한 것으로 뉴욕에 살면서 처음이라서. 플라자 호텔 근처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 도착. 다시 플러싱에 가는 7호선에 환승했다. 거기 까진 참을만했다.


그런데 플러싱에 도착해 집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탑승해야 하는데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내가 도착할 즈음에도 미리 떠나 버린 기사님. 그다음 버스도 오지 않고 그다음 버스도 제시간에 오지 않고. 사람이 추위에 죽어가는데 오지 않은 기사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가련한 눈빛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추운 겨울 제시간에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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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강추위에도 퀸즈 식물원에 다녀왔다. 일요일이 되면 식물원이 그립다. 추운 날에도 음악을 켜고 운동하는 중국인들도 보였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거 같은 중국인들. 장미 정원에 도착하니 귀여운 청설모가 날 기다리고 있어 반가웠다. 붉은 동백꽃과 영춘화와 황설리화와 장미꽃을 보고 시내버스 타고 집에 돌아왔다. 퀸즈 식물원 앞에서 버스 기다리는데 바로 오지 않아 퀸즈 도서관까지 달렸다. 하루 종일 시내버스로 힘든 하루였다.


왜 메트 뮤지엄에 방문객들이 그리 많았을까?

다음날이 마틴 루터 킹 데이라서.


어릴 적 먹은 호떡과 찹쌀떡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빠가 사 주신 호떡과 찹쌀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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