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7 월요일
대학 시절 박인희의 청아한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녀가 부른 '모닥불' 노래도 얼마나 좋은지. 추운 겨울날 모닥불 피워놓고 친구랑 이야기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모르던 대학 시절이 가장 행복했나. 그때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 미처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에 간다고 하니 대학 친구들과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파스타와 스파게티 요리 먹으며 "뉴욕에 가면 어떻게 살래?"라고 말했을 때 "학생처럼 살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산다. 학생처럼 의미는 청바지 하나에 만족하고 책을 읽고 산다는 의미였다.
매일 마음에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맨해튼에 간다. 강추위에 마음과 몸이 오그라들지만 마음에 모닥불 피우면 얼마나 따뜻해. 아쉽게도 그 모닥불 유통 기한은 단 하루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 내 모닥불 유통 기한도 하루. 하루가 행복하면 1주일이 행복하고 그렇게 행복이 쌓인다.
플러싱에서 맨해튼에 가는 7호선에 탑승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서 내려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추운 날 지하철 환승은 바로 연결되지 않으면 힘들다.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견딘다. 가끔은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니 더 불편하다.
언제나 가방에 책 한 권 담는다. 맨해튼에 가면 아지트에서 핫 커피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고 아니면 북카페에 가서 신간을 읽어도 좋다. 아마존 등 인터넷에서 주문한 책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매일 읽어도 끝이 없다.
드디어 아지트에 도착. 전날과 달리 커피는 식지 않아서 좋았다. 근사한 카페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 대학 시절 좋아하던 노래도 가끔 흘러서 좋고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니 더욱 좋다. 차가운 형광등 대신 노란색 백열구가 빛난다. 꽤 오래전 남미에서 온 조각가랑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폴란드 저널리스트랑 이야기를 나눈 곳이기도 하고, 일본 출신 모자 디자이너 등과 소소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센트럴 파크 베데스다 테라스 사진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조각상 사진이 벽에 붙여 있다.
북 카페 커피는 가장 저렴한 게 2. 71불, 여긴 1.51불(단 셀프서비스). 그러니까 상당히 저렴하다. 요즘 뉴욕 거리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커피값도 1.5불. 아마도 곧 인상되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방에 든 책을 읽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형편이 넉넉하면 근사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텐데 평생 의무 의무 의무를 다했지만 여전히 삶은 복잡하다. 그래도 감사함으로 마신다. 마음에 감사함이 있으면 행복하다.
평소 음악을 들으며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데 딴짓을 했다. 우연히 브런치 북을 읽게 되었는데 내용이 좋아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갔다. 캐나다 양로원에 사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가 내 가슴을 울렸다.
나도 오래전 롱아일랜드에 살 때 양로원에서 발런티어를 했다. 그때 자세히 기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대학원 과정 공부하기도 무척 벅찼다. 오래전 만났던 노인들은 아마도 지금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텐데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읽었다.
잠시 후 테이블에서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에 가서 산책을 했다. 하늘 높은 빌딩이 우뚝 솟은 센트럴 파크 남쪽을 바라보면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수 백억 하는 미친 집값이 아무렇지 않은 부류도 존재하고 반대로 죽을 때까지 일해도 쳐다볼 수도 없는 자본의 파워 아래 보통 사람은 고개를 숙이는 자본주의의 도시 뉴욕 뉴욕. 문화와 자연은 아름다운 천국이지만 다른 면은 지옥의 왕이라고 말해도 불편하지 않을 거 같다. 낯선 땅에 이민 와서 슬픔과 고통을 먹고사는 이민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원히 이방인으로 사는 뉴요커들도 많을 것이다.
사르르 언 호수에서 노는 청둥오리들 보고 새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산책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북카페로 갔다. 마틴 루터 킹 데이 휴일에도 오픈하는 북카페 얼마나 좋은가. 서점은 손님들로 무척 붐볐다. 손님이 많으면 내 기분이 좋다. 혹시 망하면 어쩌다 늘 걱정이 앞선다. 다른 거 몰라도 서점이 망하면 안 되기에.
3층 북카페에서는 책을 읽었다.
1월 세 번째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데이(휴일)이다. 휴일이라서 지하철이 복잡할 거라 미처 생각을 못했다. 집에 돌아오려고 유니온 스퀘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서 환승하지 않았는데 퀸즈보로 플라자에서 환승하려니 만원이라서 빈자리가 없었다. 젊은 청년이 눈을 감고 모른 체하다 몇 정거장 가서 자리를 비켜주니 백발 할머니가 앉으셨다. 휴일 모두 맨해튼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플러싱에 도착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내 자리에 당첨되면 300만 불 받는 로또가 보였다. 또 누구 마음을 설레게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