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하얀 눈이 내렸지
2022. 1. 20 목요일
변기통이 막혀 난감했다. 다른 거 몰라도 변기통이 막히면 어떻게 사나. 특별한 재주가 없는 평범한 난 기본적인 일에도 서투르다. 뭐든 잘하면 좋을 텐데 아니니 답답할 때가 많다. 아파트 슈퍼를 자주 부른 것도 부담이 된다. 그도 매일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을 테니 꼭 필요한 경우만 부르려고 한다.
변기통이 막히니 두 자녀 얼굴도 흑빛이고 날씨는 춥고. 막힌 변기통에 붓는 세제를 사러 마트에 가려다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 했더니 백 프로 만족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사용할 만한 상태로 변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답답했던 만큼 반대로 행복했다. 그러니까 행복 불행이 그네를 타고 출렁거렸다. 세제를 사면 통닭 한 마리 값이 들었을 텐데... 다음에 맛있는 통닭을 사 먹어야겠다.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막심 벤게로프 바이올린 공연이 열렸다. 상당히 추운 날이라서 보러 갈지 망설이다 티켓을 구입했다. 벤게로프 팬들도 많다고 하는데 난 그의 열정적인 팬은 아니었는데 전에 카네기 홀에서 봤던 공연이 좋아서 특히 바이올린 음색이 좋아서 다음에 기회가 오면 보러 가야지 마음먹었다.
카네기 홀에서 대가들의 공연이 열리지만 항상 열리는 것은 아니기에 특별한 공연이 열리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는 편이다.
하늘 높은 꼭대기 발코니 석은 티켓 값이 저렴하지만 좌석은 무척이나 좁아 다리가 불편하고 몸이 피곤하다. 형편이 넉넉하다면 좀 비싼 티켓 구해서 보면 좋을 텐데 늘 지출에 꼼꼼히 신경을 쓴다.
첫 번째 곡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곡은 아주 오래전 아들 바이올린 선생님이 녹음해 주셔 자주 들었고 줄리아드 학교에서도 자주 들었다. 오래전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서부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을 뵈온 지가 꽤 오래되어 가는데 안부도 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벤게로프의 모차르트와 프로코피에프 연주는 그다지 감명을 주지 않았지만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와 라벨 곡 연주는 뛰어났다. 라이브 무대가 참 어렵다. 음악가 컨디션도 많은 영향을 줄 테고 조금만 연습이 부족하면 무대에 올라서면 팬들은 금방 눈치를 챈다. 세계적인 대가라서 나의 기대치가 높았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벤게로프는 어깨 부상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뻔한 위기를 맞았지만 극복하고 다시 세계적인 무대에서 서서 바이올린 활을 잡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팬들을 행복하게 만드니 대단한 음악가다.
January 20, 2022 —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Carnegie Hall Presents
MOZART Violin Sonata in E Minor, K. 304
PROKOFIEV Violin Sonata No. 1
FRANCK Violin Sonata
RAVEL Tzigane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자주 듣곤 했다. 요즘은 코로나로 공연이 연기되어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뉴욕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가 아닌가. 공짜로 가만히 앉아서 천재들의 음악을 들으니 얼마나 좋은가.
목요일 아침 하얀 눈 내리는 맨해튼 거리에서 거닐었다. 하얀 눈 내리는 날은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항상 하얀 눈이 오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하지만 무척 추웠다. 하얀 눈 오는 아침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빨간 새를 보니 왠지 행운이 찾아올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복잡한 일도 무척이나 많고 삶은 막다른 골목이지만 책을 펴서 읽고 막심 벤게로프 공연도 보고 막힌 변기통을 그럭저럭 사용할 만한 상태로 만들었던 날. 어느새 1월도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