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북카페와 노을

by 김지수

2022. 1. 22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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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산방산 인근에 핀 노란 유채꽃 사진을 보았다. 제주도는 벌써 봄이 왔나 보다. 노란 유채꽃 보면 제주도에 여행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신라 호텔에서 머물던 행복했던 추억을 두 자녀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연분홍 드레스를 입은 딸과 회색 줄무늬 멜빵바지와 검정 재킷을 입고 베레모를 쓴 아들은 그물 침대에 누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호텔 인테리어도 얼마나 예쁜 곳인가. 벌써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때는 제주도가 그리 아름답다는 것도 몰랐다. 트렁크 들고 공항에서 공항으로 꽤 많은 나라를 돌고 난 뒤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어느 날 거실 바닥에서 내가 사랑하는 첼로가 산산조각이 났고 내 인생도 산산조각이 났다.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레슨을 받으며 행복했던 시절 첼로는 하늘나라로 영영 먼길을 떠나버렸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바흐 곡을 늦게 레슨 받으리라 누가 알았을까. 좋아하는 음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니 늦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늦게라도 대학원에 진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내 꿈도 부서지고 내 몸이 마비되어 혼이 나갔던 슬픈 시절. 서서히 안개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자 수천 마일 떨어진 뉴욕에 오고 말았다.


내 인생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거 다 버리고 낯선 땅에 와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삶은 얼마나 공포인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인생을 낯선 땅에서 새로이 시작하니 얼마나 힘든가. 부부 함께 손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힘든데 40대 중반 나 혼자 힘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 왔다.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는데 길은 가끔 사라지고 만다. 삶은 늘 막다른 골목이지만 가슴에 희망의 꽃을 피우며 위로를 하고 버티고 산다. 마음에 모닥불 피우기 위해 매일 사랑의 조각을 찾는다. 조각을 모아 불에 태우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힘으로 버티고 산다. 가진 거 하나도 없는데.


기억 속의 제주도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고 지금 봄인데 뉴욕은 반대로 시베리아 벌판처럼 춥다. 아침 체감 온도는 영하 17도. 그럼에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달려갔다. 퀸즈보로 플라자 환승역에서 맨해튼 미드타운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1분이 하루 같은데 바로 오지 않았다.


맨해튼과 꽤 가까운 아스토리아 지역에서 오는 지하철을 기다린다. 젊은이들이 많이 살고 그리스 이민자들도 밀집되어 사는 곳이다. 아스토리아에서 온 지하철에 탑승하면 푸른 바다에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하얀 갈매기를 볼 수 있는 코니 아일랜드와 브라이튼 비치로 달려가는데 마음은 매일 가고 싶은데 플러싱에서 편도 2시간 거리라서 간 지 꽤 오래되었다.


추운 바람맞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며 꽁꽁 언 몸으로 지하철에 탑승하고 맨해튼 미드타운 아지트에 찾아갔다. 며칠 전 만난 크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추워 아지트에 오지 않았을까. 그녀는 거의 매일 방문하는데. 왜냐면 내가 그곳에 갈 때마다 보곤 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커피도 금방 식어버려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맨해튼 거리를 걷기는 상당히 추운 날씨라서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은데 마음과 달라 책을 덮고 밖으로 나왔다.


나의 목적지는 트라이베카에 있는 갤러리.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달렸는데 유니온 스퀘어 역에 내리고 말았다. 너무 추워 내 마음이 변했을까. 토요일 유니온 스퀘어 그린 마켓은 손님들로 붐볐다. 맨해튼 유명한 셰프들도 장 보는 곳이라 알려졌지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다. 그래서 어쩌다 바케트 하나 사 먹곤 했다. 바게트 가격도 인상되었다. 3불에서 4불로. 물가가 계속 오르면 서민들은 어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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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반스 앤 노블 서점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하면 북카페. 그런데 3층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아 터벅터벅 걸었다. 내가 요즘 운동 안 하는 것 어찌 알았지. 너무 추워 운동을 하지 않으니 몸이 무거워진다. 고로 하얀 서랍장에서 잠든 하얀 바지는 머나먼 님이 되어버렸다.


3층 북카페는 언제나 손님이 많다. 맨해튼에서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얼마나 될까. 커피 한잔이면 차가운 마음을 뜨겁게 데울 수 있는 곳. 책의 향기에 얼마나 행복한가. 매일 출근해 뉴욕 타임스와 잡지와 책을 읽는 낯익은 분들도 계신다. 책과 노는 즐거움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추운 날 토요일 오후 북카페에 빈자리는 드물었다. 누가 떠나야만 할 거 같은데 떠나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운 좋으면 쉽게 빈자리를 발견해 앉기도 한다.


빈자리가 없어 3층 서점을 돌아다니며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다 전에 읽고 싶은 책이 세일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기쁘던지. 갑자기 꽁꽁 언 마음이 태양처럼 뜨거워졌다. 인터넷 중고책 가격보다 더 저렴했다. 서점에서 구입하면 바로 읽을 수 있으니 더 좋고 헌책도 아닌 새책이었다.


전날은 메트 뮤지엄에도 방문했지만 특별한 소득 없이 집에 돌아올 뻔하다 마음에 든 책 한 권 구입하고 행복했던 토요일 오후. 집에 읽어야 할 책이 무진장 많은데...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


가려고 마음먹은 갤러리는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시내버스를 기다려 탑승하고 중간 내려 한인 마트에 들려 한국산 배와 삼겹살 약간과 이스라엘 단감을 사 왔다. 그리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꼭 올 거라 생각했는데 님은 오지 않아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손이 시려 떨어져 나갈 거 같은 추위. 마침 하늘은 석양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옷을 입고 하늘에 나타나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준 노을.


토요일 오후 구겐하임 미술관 방문은 또 미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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