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눈 오는 밤: 슬픔과 기쁨

카네기 홀 르네 플레밍과 에머슨 스트링 쿼텟 공연

by 김지수

2022. 1. 23 일요일


하얀 눈 내리는 창 밖 풍경은 그림처럼 예쁘다. 지붕 위에도, 도로 위에도, 겨울나무 가지 위에도, 내 마음에도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가로등 켜진 눈길을 걸으며 파리바케트에 빵을 사러 갔는데 아직 문 닫을 시간이 아닌데 직원이 문을 닫고 내일 오란다. 빵집 선반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한인 마트에 갔다. 비싼 물가라서 사고 싶은 마음과 달리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곤 한다.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김치가 떨어져 1순위였다. 김치와 세일 중인 배와 연어를 골라 시내버스 정류장에 갔지만 버스가 오지 않아 터벅터벅 눈길을 걸었다. 하얀 눈 위에 반사된 겨울나무 그림자도 예뻤다. 겨울 장미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색이 바래 작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꼈다.


테이블 위에는 영수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꼭 필요한 식품만 구입하는데 한 달이 지나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 곧 렌트비도 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별빛 같은 마음이나 뉴욕의 현실은 지옥이라서 흑빛이다. 별빛과 흑빛의 발란스를 잃어버리면 하늘나라로 떠날 테지. 마음의 무게를 달면 얼마나 될까. 삶의 무게겠지. 사람마다 다르겠지.


일요일 저녁 세탁을 하러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빈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고 세제를 넣고 동전을 넣고 집에 돌아와 약 30분 후 물세탁이 마칠 즈음 다시 지하에 내려가 건조기에 옮겨두고 집에 돌아올 때 지난번 만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젊은 커플을 보았다.


내가 세탁기 사용할 때는 여섯 대 모두 텅텅 비어 두 대를 사용했는데 건조기에 옮길 즈음 네 대의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세탁은 30분 정도. 건조기는 60분. 그런데 네 대의 세탁기도 곧 끝날 거 같았다. 그럼 건조기에 옮길 텐데...


아파트 지하에 6개의 세탁기와 6대의 건조기가 있는데 낡고 오래된 빌딩이라서 그런지 한꺼번에 건조기 6대를 돌리면 멈춰버린다. 롱아일랜드에서 플러싱으로 이사와 낡고 오래된 차를 팔아버린 뒤 처음으로 아파트 지하 세탁기를 사용할 때 건조기가 멈춰버린 사고가 발생해 놀랐는데 친절한 이웃분이 여기 사정을 말해줘 알게 되었다. 가슴이 철러덩 한 순간이었다. 그 후로 가끔 그런 일이 발생했다.


젊은 커플도 날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번 그들이 6대의 세탁기 전부를 사용해서 난 세탁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웃 주민 공동으로 사용하니 한꺼번에 세탁기를 사용하면 불편하니 서로 조심하자고 말했다. 그들에게 다시 건조기 사용에 대해 말했다. 6대 모두 사용하면 멈춰버린다고 말했는데 커플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내가 한 말을 이해를 했는지 안 했는지 난 알 수가 없다. 6대 세탁기 모두 사용하지 않고 4대만 사용하니 고개를 를 흔들었을까.


건조기가 끝날 무렵 지하에 내려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건조기가 멈춰있었다. 아들은 엄마가 영어 대신 스페인어로 말해야 했어야 한다고. 그럴 에너지가 어디에 있나. 스페인어를 딱 두 달 배웠는데 스페인어를 어떻게 구사해. 몇 년 배운 외국어도 다 까먹었는데. 아들이 구글 번역기 이용하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도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아픔과 슬픔. 내 마음이 멈춰버렸다. 지난번에도 세탁을 하러 갔는데 동전만 먹고 물세탁도 되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서 세탁기 없는 집이 얼마나 될까. 뉴욕에 와서 쓴 세탁 비용으로 몇 대의 세탁기를 구입했겠다. 아파트에 세탁기를 설치할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공동 세탁기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말로 할 수 없다. 뉴욕 서민들의 삶은 지옥의 향기가 품어 나온다. 25센트 동전만 사용하니 미리 은행에 가서 교환해야 하는 불편.




일요일 오후 2시 카네기 홀에서 르네 플레밍과 에머슨 스트링 쿼텟 공연이 열렸다. 최고 전성기를 지난 르네 플레밍 공연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 약간 망설이다 카네기 홀에 갔다. 프로그램도 귀에 익숙한 곡이 아니었다. 르네 플레밍도 에머슨 스트링 쿼텟도 2년 만에 무대에 올라 기쁘다고 말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 아닌가. 한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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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3, 2022 — 2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Renée Fleming, Soprano
Uma Thurman, Narrator
Emerson String Quartet
Simone Dinnerstein, Piano



BARBER String Quartet in B Minor, Op. 11

PHILIP GLASS Mad Rush

GRIEG Sechs Lieder, Op. 48
·· Lauf der Welt
·· Zur Rosenzeit


FAURÉ "Les berceaux, " Op. 23, No. 1

FAURÉ "Au bord de l'eau, " Op. 8, No. 1

KEVIN PUTS Evening

PREVIN / TOM STOPPARD Penelope (NY Prem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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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플레밍이 무대에 오르니 오페라 지휘자도 뉴욕에서 머문다면 왔을 텐데 멀리 플로리다주에서 일한다고 했다. 아버지 100세 생신이 지난 12월 중순이라서 미리 방문해 겨울에 그곳에서 일하다 뉴욕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가지만 지인들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좋다.


꽤 오랜만에 음악을 사랑하는 지인을 만났다. 아들과 날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 교회에서 열리는 공연에 초대하셨던 분.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느꼈다. 오늘 공연 멤버를 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카네기 홀뿐 아니라 거버너스 아일랜드 음악 축제에서도 만나기도 했다.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음악 축제 시도 만났다. 그분을 만난 지 꽤 오래되어가는데 브라운 대학 출신이란 걸 처음 알았다. 뉴욕에서 태어나 로드 아일랜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니 혹시 브라운 대학 졸업하셨어요? 하니 웃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셨다.



지난봄 우리 가족이 여행 갔던 프로비던스에 있다. 귀족들 여름 별장이 있는 뉴포트(Newport)에도 방문했던 추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뉴포트 휴가지는 자주 방문하면 좋을 거 같은데 여행 경비는 꽤 든다. 하긴 여행 경비 안 든 곳이 어디에 있으리. 뉴욕에 비해 프로비던스는 깨끗하고 조용했지만 경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보스턴과 뉴욕에 사는 유학생들은 브라운 대학이 있는 프로비던스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


석사 과정 마치고 박사 과정 하다 중도에 포기했다고. 여동생은 의사란 말을 처음 들었다. 머리카락은 거의 백발로 변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태어나 명문 대학 졸업하고도 저렴한 티켓을 사러 카네기 홀에서 온다는 말은 뉴욕 삶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 것은 아닐까. 뉴욕에서 태어난 시민도 힘든데 이민 1세와 1.5세의 어려움은 어떠하겠는가. 이민 레슨비가 혹독하다. 물론 소수 예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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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작곡가에 대해 알지 못했고 뉴욕에 와서 가끔 프로그램에서 그의 이름을 보곤 하는데 피아니스트 연주가 꽤 좋았다. 에머슨 스트링 쿼텟 첼리스트 연주도 좋고 르네 플레밍이 부른 곡 가운데 몇 곡은 꽤 좋고 감정 표현이 안 되는 곡도 있었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여직원과 이야기하다 그녀도 르네 플레밍 공연이 나와 같은 느낌이라도 해서 웃었다. 라이브 무대는 언제나 어렵다. 그래도 나름 좋은 공연이었다. 후반부 곡이 상당히 길어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일찍 카네기 홀을 떠났다. 플러싱에 살고 저녁 식사 준비도 세탁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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