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끝이 없는 길/ 화장실 페인트, 소호

by 김지수

2022. 1. 18 화요일


어차피 마지막 종착역은 묘지. 마지막 순간까지 웃자. 삶이 슬픈데 슬프다고 울면 더 슬프잖아.

웃자. 웃자. 웃자.

힘내자. 힘내자. 힘내자.


그런 때가 있다. 참고 견디기 힘든 순간. 그럼에도 참고 견뎌야 한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으면 안 되지. 아무도 인생을 몰라. 갑자기 인생이 변하기도 하지. 180도 변해서 더 좋기도 하고 아닌 경우도 있고.


1940년대 완공된 아파트 욕실은 곰팡이가 핀다. 가끔 왜 욕실 벽을 타일로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부분적으로 회벽칠로 되어 있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핀다. 이건 내 힘으로 안된다. 그래서 아파트 슈퍼에게 전화를 하는데 자주 하기도 어렵다. 더 이상 참고 견디기 힘든 순간 전화를 한다. 화장실 수리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바로 달려오지도 않는다. 슈퍼가 약속 날짜를 잡고 방문하고 수리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슈퍼가 결정을 하지만 공사를 바로 하지도 않는다.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날짜를 배정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으니.


슈퍼에게 전화하고 1주일 정도 지나 페인트 공이 아파트에 찾아왔다. 초인종도 고장이 나서 혹시 누가 찾아오나 세심히 신경을 쓸 때 낯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었다. 화장실 페인트공이었다. 페인트 도구와 사다리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때 내가 사다리를 들어주니 그가 고맙다고 했다.


화장실 공사는 단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하다. 화장실 사용도 할 수 없고 친한 이웃이 있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으니까. 아파트 지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데 귀신 나올 거 같은 화장실이 있긴 하다. 청소를 하지 않은 세월이 반백년도 더 지났을 거 같은 화장실. 위기 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아침 8시 반 경 공사를 시작해 오후 3시경 끝났다. 페인트 공이 집에 찾아왔을 때 팁이 생각났다. 당장 가게로 찾아가 아주 작은 세제를 사고 잔돈을 받았다. 할아버지 얼굴이 인상파로 변했다.


매달 엄청난 렌트비를 내고 사는데 불편함이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지! 운명의 힘이었나. 무에서 시작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궁궐에 살 때 운명의 여신이 찾아와 미소 지을게 뭐람. 성공과 부에 관심조차 없던, 세상을 하나도 모르던 난 용감하게 집을 뛰쳐나왔다. 바로 옆집도 아니고 수 천 마일 멀리 떨어진 낯선 땅 뉴욕으로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눈물겹게 오긴 왔는데 주위 사람들 말처럼 삶이 쉽지가 않더군. 하루하루 눈물로 버텨낸 세월이 얼마나 길더냐. 그런데 끝이 없더라. 끝없는 길이라고 하니 박인희 노래가 떠올라.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린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 가도록 걸어가는 길 잊힌 얼굴이 되살아 나는 저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와 볼에 스치면 다시 한번 그 시절로 가고 싶어라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 가도록 걸어가는 길



하루 종일 페인트 냄새 맡으며 집에서 지내긴 힘들어 바람을 쐬러 맨해튼에 갔다. 알렉스 카츠 아트가 있는 지하철역에 내려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크리스가 말을 걸었다. 그녀도 나도 자주 이용한 곳인데 지난번 한 번 이야기를 했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난 늘 바쁘니 오래 머물지 않고 책을 읽다 금방 떠난다. 그런데 그녀는 별로 기분이 안 좋은 눈치.


세상에는 시간도 많고 돈도 좀 있는데 심심한 사람들이 많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사람이 상대하긴 좀 어려운 부류. 바쁜 사람은 바쁜 사람 마음 헤아릴 줄 알고 아닌 경우도 참 많다. 무척이나 바쁜데 함께 놀아달라고 하면 난감해.


그녀가 어느 정도 나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흑인 여자. 흑인 억양이 강하지는 않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미국에 온 지 50년이 지났단 그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살다 뉴욕에 왔다고. 유엔에도 근무했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영어, 아프리카어 등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한다고 자랑하는 그녀.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모를 뻔했다. 한국에 관심도 많고 친척이 서울에 산다나. 서울에 가고 싶은데 그녀를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해서 웃었다.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먼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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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아트 클럽(The National Arts Club) 갤러리



지하철을 타고 달려 갤러리에 찾아갔다. 잠시 그림 향기에 젖었다. 한 곳만 보고 돌아오기 아쉬워 얼른 소호에도 방문했다. 두 곳 방문하려고 했는데 한 곳은 닫혀 있었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아. 그렇지. 오랜만에 방문한 소호 갤러리가 있는 빌딩 수위 미소가 날 행복하게 했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짓는 남자의 말투도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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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갤러리


아, 그렇군. 계획에 없던 소호 갤러리에 방문해서(그러니까 결국 2 곳 방문) 백만 마리 나비도 보았지. 형형 색색의 나비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티스트 마음이 그리 예뻤나. 나비 색이 아름다워 황홀했다. 왜 나비 사진이 없냐고.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갤러리였다.



나비 하면 춤이 생각나. 한인 김영순 예술 감독이 이끄는 화이트 웨이브 댄스 컴퍼니에서 티켓 판매한다고 연락이 왔다. 하얀 겨울 음악이 흐른 공간에서 댄스를 보면 좋을 텐데. 댄스 공연 본지도 꽤 되어간다.



뉴욕 지하철은 어땠냐고? 상당히 불편했다. 소호에서 기다리는데 플러싱 시내버스처럼 오지 않아 당황했다. 분명 3분 후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집에 와서 식사 준비해야 하는데...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불편하다. 그럼에도 참고 산다. 형편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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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카츠 작품이 있는 뉴욕 지하철역






일기 제목은

박인희 노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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