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지하철역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2022. 2. 9 수요일 맑음
카네기 홀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추예프 공연이 열리는 날이라 설레었다. 프로그램 곡들도 예뻐서 기대를 했다. 더벅머리 스타일이라고 해도 되는가. 멋진 연미복을 입은 그가 군인처럼 씩씩한 걸음걸이로 무대에 올라 청중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잠시 후 아름다운 선율이 카네기 홀에 울려 퍼졌다. 마추예프 열 손가락이 하얀 건반에서 춤을 추었다. 피아노 연주 해석은 고전적인 느낌이 들었다. 요즘 줄리아드 학교 학생 연주 스타일과는 상당이 다른.
베토벤 곡과 슈만 곡 연주가 더 가슴에 와닿고 가장 기대를 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는 감흥이 별로 없었다.
비록 그의 손가락에서 광기가 넘쳐흘렀지만.
음악 해석이 특별했나.
분명 기교는 뛰어났다.
마추예프가 연주한 베토벤 소타나 들으며 바흐 느낌 색채가 느껴져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베토벤이 바흐의 광팬이었다고 나왔다. 그런 줄 몰랐다. 우리 가족도 바흐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앙코르곡 연주를 할 때 아들과 난 일찍 홀을 떠났다. 맨해튼에 살면 마지막까지 볼 텐데 플러싱에 사니 상황이 다르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공연을 보는 것은 다르다. 카네기 홀에서 대가들의 연주가 열리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공연 스케줄조차 기억도 어렵고 다른 일도 복잡하니 갈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음악 좋아하는 뉴요커들은 뉴욕에서 열리는 공연 스케줄을 알고 있음도 놀람 자체다. 난 카네기 홀과 메트 오페라와 줄리아드 공연 스케줄만 확인하는 정도.
음악 마니아들은 나와 차원이 다르다. 뉴욕필 공연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삶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저렴한 티켓 구해서
카네기 홀 공연과 메트 오페라만큼은 보려고 노력한다.
기회가 올 때 붙잡아야 한다.
뉴욕은 공연 천국의 도시. 매일 공연을 볼 수 있으니까. 또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 볼 수 있으니까. 뉴욕에 살 때 공연을 봐야지. 만약 떠나면 머나먼 님이 될 테니까. 한국 클래식 공연 티켓은 얼마나 비싸.
February 9, 2022 —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Carnegie Hall Presents
Denis Matsuev, Piano
BEETHOVEN Piano Sonata No. 31 in A-flat Major, Op. 110
BEETHOVEN 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R. SCHUMANN Kinderszenen
RACHMANINOFF Piano Sonata No. 2 in B-flat Minor, Op. 36
카네기 홀에서 대가들의 공연이 열릴 때면 음악을 사랑하는 지인들을 보곤 하는데 요즘 코로나 전에 가끔씩 뵌 분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실까.
명성 높은 마추예프 공연이라 음악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왔고 함께 잠시 이야기를 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피아노 석사 과정을 하는 여학생은 매네스 음대를 졸업했다고. 또 매네스 음대 피아노 전공하는 두 명의 남학생들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음악 세계가 얼마나 좁은가. 하필 같은 음대 출신이라 교수님도 잘 아니 처음 만났지만 통했다. 줄리아드 석사 과정 학생은 미시간 대학에 박사 과정 지원한다고 다음 주 출발한다는 말을 했다.
어느 길이든 어려운 세상이지만 음악의 길도 정말 어렵다. 뛰어난 천재들은 많고 오픈된 직장은 많지 않아서. 수 십 년 전과 너무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매네스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하는 두 명의 남학생들은 카네기 홀에서 가끔 본다. 그들에게 전날 열린 필라델피아 공연이 어떠했는지 묻자 한 명은 좋았다고 다른 한 명은 나와 같은 느낌이었다고.
같은 공연을 보고도 느낌이 다르다. 좋았다고 한 학생에게 가사를 보며 소프라노 노래를 들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저녁 8시 공연 보러 7시 반 지나 입구에 도착했는데 암표상이 날 보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뉴욕에서 열리는 공연 티켓을 파는 암표상 얼굴도 알게 되니 세상이 좀 좁아지나. 세상의 한 복판 뉴욕에서 별별 사람 다 만나고 산다. 오페라 좋아하는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사는 조도 만났다.
명성 높은 마추예프 공연 티켓이 다 팔리지 않아 빈자리도 많았다. 왜 그랬을까. 한국이라면 아마도 매진이 되었을 텐데...
지하철 소동이 일어났다. 빨리 지하철에 타려다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 넘어졌다. 어쩌다 이런 일이...
조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나. 좀 늦게 집에 가도 되는데 서둘렀다.
오래전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할 때 노인들이 넘어지면 골절이 되기도 했다.
정말 위험한 일이다. 십 대도 아닌 내가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데굴데굴 굴렀으니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어. 옆에 지나가던 젊은 남학생이 날 일으켜 세웠다. 가끔 카네기 홀에서 얼굴을 본 거 같은데 이름도 잘 모른다.
실수를 통해 배운다.
다음부터 조심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침에는 아들과 백만 년 만에 트랙 경기장에서 뛰었다. 하늘도 푸르고 새들도 노래하는 겨울날. 곧 봄이 오려나.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세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