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6 일요일 봄비, 흐림
주말 플러싱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7호선 지하철이 퀸즈보로 플라자 역까지 운행하니 74 브로드웨이 역에서 내려 환승하려고 기다렸는데 홈리스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도와 달라고 하니 공포감을 느꼈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면 괜찮은데 아주 가까워지면 마음이 달라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최소 거리가 필요한다. 도움을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정도의 형편이 된다면 좋겠지만 뉴욕 삶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잠시 후 긴 머리 스타일의 아가씨가 소리를 지르는데 분명 정상은 아닌 듯 보이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려고 록펠러(라커펠러) 역에서 내렸는데 역시나 홈리스들이 쓰러져 누워있거나 서서 구걸하니 마음이 아팠다. 갈수록 뉴욕 홈리스들은 많아지고 있나. 거리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더 자주 본다.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올라 거리로 나오려는데 구수한 빵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빵집이 코너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맛있는 케이크를 사고 싶으나 유혹을 물리치고 예쁜 케이크는 눈으로 먹는다.
가끔씩 부자들 잔칫집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방문해서 전시회를 보곤 한다. 오래 전은 초콜릿색 가죽 소파에 앉아 향기로운 카푸치노 마시면서 휴식도 했는데 좋은 시절은 가버렸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음료는 무료라서 서울에서 온 손님과 함께 방문했다. 처음에 무료가 아닌 줄 알고 거절해 무료라고 하니 카푸치노를 마신 분은 사실 부자다. 그런데도 평소 무척 아낀다.
실은 내가 뉴욕에 올 때 용돈을 챙겨준 친척분이다. 아드님이 미국 명문대 졸업하고 잠시 뉴욕 구경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맨해튼에서 만나 함께 걸으며 안내를 해드렸다.
뉴욕 여행 오거나 뉴욕에 사는 낯선 분이 가끔씩 만나자고 연락이 오나 아직은 삶이 복잡하니 개인적인 만남은 자제하고 있다. 좀 더 여유로운 상황이 되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려나.
직원이 내 정보를 요구하지 않아서 마음 편히 전시회(라틴 아메리카전과 컨템퍼러리 전)를 관람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분도 있고 혼자 조용히 구경하는 분도 있다. 파리에서 열리는 경매 전 작품도 벽에 걸려 있는데 마티스 등 명성 높은 작가들 작품 가격은 하늘 같다. 하늘나라로 여행 가서 마티스, 샤갈, 피카소를 만나 우리 가족을 위해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다.
잠시 후 우연히 카네기 홀에서 가끔씩 만난 뉴욕 부자 안드레아를 만났다. 일본 모자 디자이너로부터 수년 전 여름 링컨 센터 여름 축제에서 소개받고 인사를 했는데 가끔씩 카네기 홀 공연을 볼 때 만나곤 한다. 멋진 스타일의 의상이 눈부시다. 그녀 집은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다고 하니 얼마나 돈이 많을까. 그녀가 날 먼저 보고 인사를 하며 옆에 있는 분을 소개했다. 함께 전시회를 보며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내 눈엔 특별히 마음에 든 작품은 안 보였고 한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하니 자주 전시회를 가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물음을 던지는 뉴욕 미술관과 갤러리들.
크리스티 경매장 근처에 있는 반스 앤 노블 북카페에 갔는데 빈자리는 없고 내가 찾는 책은 안 보여 미드타운 중고 책방에 들려 잠시 구경하다 지하철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오래전 메트 오페라 티켓을 발견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분이었나. 가격이 꽤 비쌌다.
일요일 오후 2시 메트에서 돈 카를로 오페라를 하는데 러시 티켓도 안 팔고 가장 저렴한 게 47불에서 시작하니 포기했는데 수 백 불 하는 티켓을 사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팬들이 많은 뉴욕 뉴욕.
빨래를 미루면 안 되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탁 가방에 담고 아파트 지하에 내려갔다. 지하에는 아파트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 여섯 대와 건조기 여섯 대가 놓여 있는데 지난번처럼 여전히 두 대가 고장이라고 붙여져 있고 세탁기는 이미 사용 중. 세탁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은데 할 때마다 난처한 일이 생긴다. 평소 2시간 정도면 끝날 수도 있는데 고장 난 건조기와 남들이 사용 중이라서 3시간 이상이 걸렸고 자주자주 지하에 내려갔다. 가난은 이토록 사람을 힘겹게 한다. 얼른 가난의 옷을 벗어야 할 텐데 삶은 여전히 안개 같다.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면 수 백억 하는 작품이 있는데... 뉴욕에 와서 이민자로서 싱글맘으로 살면서 가난의 의미를 자주 생각한다.
사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일요일 아침에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종일 하늘은 흐렸지만 기온이 올라 모처럼 봄날 같았다.
1주일 후 서머타임이 시작된다니 좀 피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