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천국을 찾다
2022. 3. 10 목요일
운 좋게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을 사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를 보고 자정 넘어 집에 돌아왔다. 저녁 6시 반에 시작 밤 11시가 넘어 막이 내리니 오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보기 어렵다. 더더욱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내겐 상당한 도전이다. 4시간 반을 즐겁게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도 내 몫, 한 밤중 오페라 보고 지하철과 시내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내 몫. 상당히 고민하다 티켓을 구입해 오페라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실은 '월간 에세이' 편집장님께서 지난 2월 초 원고 청탁을 하셔 난 원고를 보내고 3월 월간 에세이 책과 동시 원고료를 받았다. 원고료로 무얼 할지도 역시 내 몫. 사랑하는 오페라를 보기로 결정했다.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고 메트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을 체력이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오페라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왜냐면 오페라 공연이 항상 열리지 않으니까. 돈 카를로 오페라는 3뭘 말까지 공연 예정.
작년 카네기 홀에서 카우프만 성악가 공연을 볼 때 만난 오페라 지휘자가 아버지 10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간다고 말하며 3월 돈 카를로 오페라를 꼭 보라고 권했다. 오페라 지휘자가 권한 오페라니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에게 엄마 오페라 봐도 좋겠니?라고 물으니 엄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학 시절 만난 두 자녀 아빠 뒷바라지 수 십 년 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올랐고, 결혼 후 두 자녀 조부모님 집에 매주 토요일 방문했고, 우리 가족이 남들이 궁궐이라 부른 60평 아파트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조부모님을 위해 중형 아파트를 준비해드리고, 할아버지가 뇌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할 때(수차례) 역시 막내며느리 내 몫이 가장 컸고, 두 자녀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위해 10년 이상을 하루도 빼지 않고 두 자녀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습을 도와주며 특별 매니저 역할을 했고, 뉴욕에 와서도 싱글맘으로 부족했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 두 자녀 교육을 했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삶이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만큼 했으면 이젠 날 위해 살아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걸 돈과 성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의 의무를 다하며 그림자 인생으로 평생 살았다. 의무 의무 의무... 를 위해 내 몸을 활활 불태웠다. 더구나 원고료도 받았다. 한없이 위로를 받고 받아도 어려운 뉴욕의 삶. 남들이 궁궐이라 부른 집을 나와 뉴욕 오두막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내가 천국에 산다고 착각하고 내가 말하면 모두 기겁을 하며 충격을 받는다.
오페라 지휘자가 권한 베르디 오페라는 역시나 좋았다. 세계 최고 성악가라 할지라도 4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서서 아리아를 부르는 게 얼마나 힘들까.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난 오페라 성악가가 부르는 아리아와 장미꽃잎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음악과 꽃이 얼마나 날 위로를 하는가. 오죽하면 아리아 속으로 피하고 싶을까. 그만큼 삶은 지옥이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다. 멋진 무대와 의상과 조명도 황홀하고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무대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성악가를 보니 얼마나 즐거운가. 돈 카를로 오페라 내용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하필 아들(스페인 왕자)의 연인이 스페인 왕(왕자 아버지)과 결혼하니 얼마나 어긋난 운명인가.
명성 높은 오페라 공연이라서 가끔씩 줄리아드 학교에서 본 음대 교수님과 맨해튼 음대 마스터 클래스에서 본 백발 할아버지도 보였다. 무대에서 가까운 객석에 앉아 악보를 펴고 학생들 마스터 클래스를 보는 분은 은퇴한 교수님인지는 나도 잘 모르나 마스터 클래스 보러 갈 때마다 보곤 했다.
또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만난 일본 모자 디자이너도 오페라를 보러 왔다. 그녀는 무대와 아주 가까운 좌석이라고. 난 무대 앞 좌석은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불편하다. 링컨 센터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사는 그녀는 오페라 공연이 너무 길었다고 했다. 난 오페라 보고 한 밤중 몇 번 환승하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입장. 우리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20대 후반 뉴욕에 유학을 와서 커리어를 위해 출산도 하지 않고 자산의 커리어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녀.
베르디 오페라 보면서 맨해튼 음대 오페라 공연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오페라 공연을 볼 기회조차 없던 내게 오페라는 여전히 낯선 예술이다. 맨해튼 음대에서 자주자주 오페라 공연을 보았고 그때 들은 곡들이 귀에 들렸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른 난 귀로 황홀한 아리아를 들으며 새로운 오페라 세상에 노출되었다.
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음악 선생님도 생각났다. 교직에 근무할 때 친했던 음악 선생님은 그 무렵 대학원 교수님께 성악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80년대 후반 교직 급여는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급여의 상당 부분을 레슨을 위해 쏟아부었다. 얼마나 성악을 사랑했을까. 그때 난 오페라의 세계를 잘 몰랐고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음악을 사랑하니 서로 친하게 지냈다. 연하의 남자와 결혼 후 남편 사업이 힘들자 음악 선생님이 뒷바라지했지만 자살을 하고 만 슬픈 운명. 내가 두 자녀 아빠 군 복무 때 휴직계 내고 전방에 간다고 하니 내가 사직서 제출할까 염려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때 내 운명이 얼마나 달라질지 몰랐다.
뉴욕 식물원에서 매년 봄 오키드 쇼 축제를 연다. 봄이 되면 해마다 기다리는 환상적인 쇼를 언제 보러 가나 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일이 생겨 맨해튼에 가길 포기하고 시내버스 타고 뉴욕 식물원에 갔다.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편하지 않지만 뉴욕 식물원은 내게는 천국의 세상을 보여준다. 미리 티켓 예약하고 찾아가 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꽤 오래전 처음으로 오키드 쇼를 볼 때 마치 난 영화 속 주인공 같다고 착각할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다. 꽃향기 맡으며 예쁜 꽃들을 보면 힐링이 된다. 언덕에 핀 동백꽃과 살구꽃도 보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중간 메트 뮤지엄에 갈까 하다 저녁 오페라를 봐야 하니 피곤하면 안 될 거 같아 식사하러 아지트에 갔는데 우연히 암표상을 만났다. 가끔씩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볼 때 만난 상인은 내게 저녁에 무얼 하냐고 물어서 오페라 보러 간다고 하니 파바로티 시절이 참 좋았단 이야기를 했다. 그때 티켓 10장을 구입해서 팔았다고. 오케스트라 좌석이 그때 29불이었고 1장당 300불을 주고 팔았으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그는 퀸즈 레고 팍에 사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24개월 동안 렌트비를 내지 않았다고. 매디슨 스퀘어 공연 티켓을 거리에서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티켓이 가짜란다. 워낙 티켓이 비싸 난 아들과 딱 두 번 공연을 보았지만 온라인으로 샀다. 유대인 상인이 처음으로 가족 이야기도 했다. 형은 어릴 적부터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 월가에서 일하고 상인은 어릴 적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거리에서 암표를 팔며 생활한지는 50년이 되었다고. 지금 68세. 50년 동안 뉴욕 거리에서 생활했으니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 같은데 언제 기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