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봄 날씨
2022. 3. 11 금요일
봄과 겨울을 왕래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인데 정오 무렵 화사한 봄햇살에 깜박 속아 두툼한 겨울 외투 대신 청자켓을 입고 외출했는데 얼마나 춥던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애매한 순간. 일본 모자 디자이너가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 스케줄을 보냈다. 요즘 정신없이 바빠 3월부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티리움에서 특별 공연이 열리지만 확인하지도 않았다. 공연 좋아하는 사람은 공연을 보면 유혹을 당한다.
고맙다고 그녀에게 말하며 뉴욕 식물원 오키드 쇼 사진을 보내니 함께 가자고 했는데 왜 혼자 먼저 방문했냐고 물었다. 화가 치밀어 그랬다고 말하지 않고 멤버십 카드가 있다고 하니 얼마냐고 물었다. 오키드 쇼 1회 티켓이 멤버십 없는 경우는 30불. 멤버십 카드는 1인 90불인가? 그러니까 뉴욕 식물원 엠버십 카드는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회원이면 마음껏 1년 내내 볼 수 있으니까. 뉴욕 렌트비는 얼마나 비싼가.
며칠 계속 맨해튼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피곤이 쌓여 일찍 돌아가는 계획이었는데 그녀 덕분에 예정대로 플러싱에 돌아오지 않고 맨해튼에서 더 오래 머물며 저녁 7시 반 공연을 기다렸다.
7시 반 공연이지만 7시가 되기 전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가서 기다렸는데 이미 홀 인원이 차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입장, 누가 떠나면 대신 들어갈 수 있다고.
날씨는 춥고 난 봄 차림 옷이라 더 춥고 몸은 피곤한데... 그녀는 링컨 센터 근처에 사는데 나보다 더 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난 공연 포기하고 집에 돌아간다고 말하고 1호선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서 7호선에 환승, 플러싱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 기다려 타고 집에 돌아왔다. 마음 씁쓸한 허탕! 링컨 센터 공연은 무료! 차라리 오페라나 봤으면 좋았을 텐데... 호주머니 사정은 안 좋고 삶은 왜 이리 어려울까.
뉴욕은 무료로 볼 수 있는 공연과 전시회가 많지만 방문객들이 많아서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은 돈 아닌가? 시간도 중요하다. 코로나 전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공연을 보러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팬데믹으로 한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고 뉴욕 시민들 경제적 사정은 갈수록 안 좋으니 무료 공연이 인기가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 듯
금요일 오후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북카페에 가서 로버트와 마이클과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아 커피 마시며 책과 잡지를 읽는데 할머니가 식사를 하러 빈자리를 찾는 눈치라서 양보하고 밖으로 나왔다. 춥고 배도 고프고 영락없이 홈리스가 된 기분..
실제로 홈리스가 된 기분은 어떨까. 지하철을 타면 혼자 독백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보곤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많아졌을까. 겉을 보면 화려한 뉴욕이지만 속을 보면 그렇지 않은 뉴욕. 완벽한 사람 없고 완벽한 세상없을 것이다. 겉이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뉴욕에서 고통받고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도 무척 많을 것이다. 렌트비와 생활비가 유독 비싼 뉴욕.
Address: 40 Wooster Street First Floor, New York, NY 10013
소호 일본 작가 갤러리 NowHere는 전시회가 참신하고 카페도 있어서 좋다.
금요일이라 유니온 스퀘어에서 그린 마켓이 열리고 난 꽃 향기 맡으며 잠시 서성거리다 지하철을 타고 소호에 갔다. 프린스 스트리트에 내려 갤러리에 방문.
갤러리가 나의 피난처였다. 추운 날 갤러리에 들어가니 몸이 따뜻해져 좋았다. 그러니까 피난처 같았다. 벽에 걸린 낯선 일본 작가의 작품을 보며 파리, 상파울루, 밀라노, 일본 오사카와 동경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뉴욕 퀸즈 롱아일랜드 시티에서 10년 정도 살았다는 일본 작가.
롱아일랜드 시티는 변화의 물결이 거센 곳이다. 모마 PS 1 미술관이 있고 맨해튼 모마에서 지하철을 타면 약 15분 정도면 도착하니 교통이 편리한 곳인데 맨해튼 분위기와는 아주 동떨어진 곳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을 연상하게 하는 높은 빌딩이 솟아있는 곳이고 새로운 아파트는 좋긴 한데 렌트비는 무지 비싸서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쳐다볼 수도 없는 곳. 아마존이 이곳에 들어오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기업이 들어오면 렌트비는 더 비싸질 테고 교통도 더 복잡할 테고... 매년 올라가는 뉴욕 렌트비가 지옥이다.
소호 갤러리에 가는 중 거리에서 그림을 파는 사람을 보니 대공황 시절 렌트비 마련하려고 워싱턴 스퀘어 파크 근처에서 그림을 팔았던 잭슨 폴락이 생각났다. 뉴욕 대공황 시절 얼마나 어려웠을까. 지금도 생계가 어려운 뉴욕 작가들도 많을 것이다.
소호 거리에서 연인들은 정답게 이야기를 하며 걷고
난 거리 바닥에 그려진 보물 같은 아트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온 첫해 크리스마스 무렵 한인 여행사에 예약을 하고 맨해튼 버스 투어를 했는데 그때 한인 가이드가 소호 거리에서 그림을 산 분이 어느 날 벼락부자가 되었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람도 불고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몹시도 추운데 저녁 7시 반 공연을 기다리니 배가 고파 아지트에 가서 옥수수 머핀과 커피 마시며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 떠올랐다. 한국이 무척이나 가난했던 시절 학교에서 무료로 준 옥수수 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때는 빵집도 없었다. 수 십 년 사이 한국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 TV와 냉장고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도 하고 이사하려고 방을 구하려는데 자녀들 많으면 방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 연탄불 사용하니 몹시 불편했고 고등학교 시절인가 처음으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니 영어 선생님이 세상 좋아졌지 요즘은 된장국 끓이려면 10분이 채 안 걸려 하면서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해외여행을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 그런데 지금은 해외에서 흩어져 사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여전히 이민을 가려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닌데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옥수수 빵과 커피 마시고 링컨 센터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허탕이라니!
공연도 못 보고 추위에 죽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오페라가 떠올랐다.
매일 오페라나 볼 형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