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계속 자정까지 일을 했더라면
지금 난 어떤 모습일까
몸이 다 녹아버려
흔적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버렸을까
두 곳 직장에서 일하고 자정에 집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하다
어느 날 사장이 불러
다음날부터 나오지 마세요, 라 하니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두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딸은 3학년
아들은 1학년
앞이 캄캄했다.
두 자녀 대학을 졸업한 동안
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먹지 않았다.
일을 그만둔 내게
수 억 가지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자살을 하고
로빈 윌리엄스도 자살을 하고
월가의 백만장자도 자살을 하고
뉴욕 거리거리에 홈리스 가득한 뉴욕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면
뉴욕 타임지 신문 뭉치를 노끈에 묶어 두면 수 만불 하고
명성 높은 화가 이름이 붙으면 작품값이 수 백억 하는
뉴욕 뉴욕
수 억의 선택 가운데
어느 날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뉴욕 곳곳을 방랑하기 시작했다
거리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뉴욕의 비밀을 알아내기 시작했지만
뉴욕에 올 적
아무것도 몰랐다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맨해튼에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 기록하는 작업을 수 년동안
하고 지내고 있고
세상의 부자와 천재들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은 자의
삶의 무게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추위도 경험해야 추위가 무언지 깨닫고
가난도 경험해야 가난이 무언지 깨닫고
삶의 어려움도 경험해야 그게 무언지 깨닫고
이민도 이민을 해야만 이민이 뭔지 깨닫게 되고
금수저도 아냐
은수저도 아냐
동수저도 아냐
난 그런 거에 불평을 해 본 적도 없고
누가 내게 도움을 준단 말인가
뉴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부모가 뉴욕에 이민 온 것도 아니고
40대 중반 남의 나라에 오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토플 시험장에 가서 컴퓨터로 시험을 보고
당시 컴퓨터는 내게 괴물이었지
켜고 끄고 하는 것만 아는 컴퓨터로 토플 시험 보는 게
얼마나 어렵던지
죽음 같은 터널을 하나씩 통과하고
그 비싼 유학 수속을 유학원에 맡기지 않고
인터넷에서 혼자 알아보고 원서 보내고
대사관에서 인터뷰 보고
남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미국행 비자를 갖고
뉴욕에 왔다
단 한 명도 아는 이 없는 뉴욕에서
정착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던지
길을 안 것도 아니고
한국처럼 바로 옆에 가게와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단 한 번도 공부하지 않은 전공과목을
대학원에서 하는 게 꿈처럼 달콤했을까
지옥이 따로 없었다
단 한 명의 한국인 학생도 없었으니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고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도전을 하고
지내는 삶
지난날을 돌아봐도
아득한 길이었구나
삶은 늘
아득하고
안갯속 같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 가족은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18. 2. 2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