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자 뉴요커의 꿈

카네기 홀에서 길 샤함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공연보다

by 김지수



찬란한 황금빛 가을 햇살이 창가에 비춰. 찬란한 가을 아침을 맞고 있다. 11월 초순이 지나니 이제 단풍이 들 시기인데 이웃집 가로수는 오래전 빨갛게 물들더니 대머리처럼 금세 잎새가 뚝뚝 떨어져 버렸고 작년보다 나뭇잎이 풍성하지 않아 느낌이 다르고 내가 사는 아파트 고목나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어. 약간 차가운 느낌이 드는 늦가을 금요일 아침.

어제 맨해튼에서 18시간 정도를 보내고 집에 자정이 넘어 돌아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 같은 날. 누군가는 천사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악마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때로는 천사 때로는 악마 역할을 하는지 모르지. 많은 에피소드가 생겨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한밤중 랩톱을 켜고 즉석 메모를 하려 했지만 인터넷이 작동하지 않아 몇 시간 흐르고 말았지. 황금보다 더 귀한 시간이 금세 저 멀리 사라졌어. 결국 새벽 2시가 넘어 잠들고 말았지. 다음날 눈을 뜨고 설거지를 하고 하루 일과 스케줄을 만드는데 다시 한 시간이 지나가버려. 맨해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지만 나의 한계 안에서 뭐가 최적인지 파악하고 스케줄을 만들어야 하고 이동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매일매일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아. 물론 종일 지옥철 타고 맨해튼에 가서 이벤트 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기록하는 작업은 훨씬 더 힘들지.

어제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연주를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 플러싱에서 출발 카네기 홀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늦가을이 아니라 마치 한겨울처럼 추운 날 온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가. 나보다 더 먼저 도착한 4명의 사람들이 보여. 그 가운데 암표 상도 세 명이나 보여. 담배 연기가 하늘을 찔러. 마치 굴뚝 공장 안에 있는 기분. 담배를 피운 건 개인 취향이지만 담배 냄새는 왜 그리 싫은지 몰라. 싫어도 할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상황. 얼마 후 낯선 할머니가 도착하셔 내게 커피 마시러 다녀오지 않을래? 하시길래 근처에 있는 마켓에 가서 작은 사이즈 커피를 구입해 카네기 홀로 돌아갔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할머니는 가방에 커피와 빵을 담아와 드시고 난 식은 커피를 안 좋아해. 절약하고 절약하는 뉴요커 할머니들을 자주 보고 그런 가운에 음악 사랑은 최고.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3일 동안 열렸는데 어제가 3일째. 그 할머니는 이미 2개 공연을 보고 어제 3번째 공연표를 구입하러 오셨다.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가운데 노인들이 아주 많고 특히 러시아 이민자들이 많아 놀라고 있지.

얼마 후 담배 연기보다 더 심한 매연가스를 쏟아내는 트럭이 카네기 홀 앞에 멈췄다. 30분 정도 매연 연기에 모두 죽을뻔했지. 코와 입을 막고 저 트럭이 언제 떠나지 했어. 트럭 번호판은 뉴저지. 매년 정기 점검을 해야 하는 뉴욕 법에 따른다면 그 트럭은 뉴욕식에서 운전할 수 없을 거 같은데 30분이 30분이 아니라 마치 3시간 이상 된 거 같고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은 전부 주름살 가득해. 코와 입을 막고 이마에 주름을 그리고 걸었다. 인간은 비슷한 점도 있는 거 같아. 안 좋은 환경을 누가 좋아하겠어. 아, 드디어 30분 후 트럭이 떠났지. 카네기 홀에 갈 때 오래된 가방에 책 두 권을 담았지만 추운 날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기도 하나 봐. 호주머니에서 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추운데 어찌 책을 읽을 수 있어. 포기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연주가 아니라면 그렇게 추운 날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도 했을 거 같으나 어제 공연은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참고 기다렸다. 오래전 아들이 줄리아드 음악 예비학교와 맨해튼 예비 음악학교 오디션 치를 때 준비한 곡이 바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난 대학 시절 안네 소피 무터 연주로 자주 들었고 아들은 자신 연주를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해 웃었지. 길 샤함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은 게 결코 쉽지 않았어. 정말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 3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얼마 후 빨간색 목도리를 한 여자가 나타나 카네기 홀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처럼. 나머지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데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그러고 나서 자신이 가장 먼저 표를 산다고 주장을 하니 모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 누구 맘대로 늦게 와서 가장 먼저 표를 사? 해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황비나 되는 것처럼. 검은색 머리카락의 동양 여자. 어떤 여자일까 정말 궁금했어.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러운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자아가 아주 강한 여자. 마침내 박스 오피스가 문을 열 시간 오전 11시. 카네기 홀 제복을 입은 직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 직원에게도 쉬지 않고 말을 해. 자신이 먼저 표를 사야 한다는 식으로. 그 직원은 "언제 왔어요? 라 묻고 여기 다 기다리고 있지요. 저 뒤로 가세요." 하니 저 뒤로 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자기주장을 해.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의 아시아 여자였다. 그녀는 어제 카네기 홀에 처음 와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이 맨 먼저 표를 사야 한다고 주장을 하니 오래오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웃을 수밖에.

그런데 내 기억력보다 더 기억력 좋은 게 있지. 바로 아이폰 사진. 지난 7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아침에 일찍 표를 사러 카네기 홀에 갔고 그날 카네기 홀 앞에 붙여진 프로그램을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너무 바빠 아직 사진 작업을 못했지만 내 아이폰에 그녀 얼굴이 보여.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해. 어제 카네기 홀에 처음으로 와서 잘 몰랐다고. 모른 거는 모른 거고 왜 1번으로 표를 구입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오로지 자신 주장만 하고 나머지 사람들 말을 아예 듣지도 않아 놀랐지.

가장 먼저 온 할아버지는 "그녀 번호는 0번이야"라고 해 웃었다. 수영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는 백발 할아버지도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어제 아침 일찍 표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 아주 평범한 옷차림이고 그래서 그녀가 더 강하게 주장을 했는지 모른단 생각도 들고. 외모와 달리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뉴요커를 잘 모른 아시아인. 어제 오전 기분을 푹 가라앉게 하는 여자였다. 몹시 추운 날이라 정말 힘들었고 담배 연기로 더 힘들었고 그 후 매연가스를 푹푹 쏟아내는 트럭으로 더 힘들었고 더 힘든 것은 카네기 홀에 늦게 도착해 가장 먼저 표를 산다고 주장하는 아시아인 여자였다. 마지막까지 자신하고 싶은 말만 해. 세상에 저런 사람들도 가끔 보지. 상대방을 얼마나 힘들고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나 봐.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봐야 만 하는 길 샤함 공연표를 구입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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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눈물겹게 카네기 홀 표를 구입하고 가방에 담은 후 부자들 잔치를 하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다. 여기도 세상 구경을 하는 곳. 그림만 보는 게 아니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카푸치노와 라테 커피도 마시고 가끔 비스코티도 먹어. 전부 무료. 언젠가 비스코티를 먹고 있을 때 멋진 뉴요커 차림의 남자가 내게 보디랭귀지로 말을 했다. "그거 많이 먹으면 아주 라틴 미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 작품 주인공처럼 살이 찐다는 말"을 하고 그래도 열심히 먹는 난 그를 보며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인데 요즘 갈수록 한국 백화점처럼 사람들이 많아져 가. 암튼 갤러리 풍경은 아주 놀랍고 재미있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종이 달러" 그림도 보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거미도 보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낙서 그림도 보고 하얀 캔버스에 낙서를 한 그림인데 작품 가격은 상상 초월이야. 모네와 고흐와 샤갈도 모두 부활을 했나 봐. 어디서 살면 한 번 만나봐야겠다. 샤갈과 고흐와 피카소 그림 한 점만 있으면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살 테니 내게도 한 점 달라고 부탁해야지. 마크 로스코 그림도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로스코가 그린 게 아닌 거처럼 보이고 색감이 약간 이상하고 한스 호프만 작품도 색상이 정말 비슷하게 보이나 진품은 아니게 보여. 지난번 소호 어느 갤러리에서 작품 스승의 스승이 한스 호프만이던데. 전에 메트 뮤지엄에서 한스 호프만 전을 열었지. 마법에 걸린 내가 진품 같지 않다고 말하니 누가 나 보고 소송하면 안 돼. 내 눈에 그렇다는 거야. 뭐가 진실인지 하늘에 있는 피카소, 샤갈, 고흐, 로스코, 앤디 워홀 등을 알 거야. 일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작품도 크리스티 경매장 앞에 전시되어 있고 앤디 워홀의 "최후의 만찬" 전시는 갤러리 입구가 다르고 인기가 아주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카네기 홀에서 꽁꽁 얼어버린 몸을 녹일 시간이지. 아름다운 조명이 비친 갤러리에서 진짜든 가짜든 난 그림을 구입할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 구경도 하고 그림도 구경하고 잠시 마법에 걸리는 시간이지. 내 눈이 마법에 걸려 진짜와 가짜를 구분 못할 수도 있고 가끔 난 마법에 걸리곤 해. 마법에 걸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바로 그게 마법의 힘이지. 사랑에 빠지면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만 생각할 테고 난 평생 내가 사랑하는 세계에서 퐁당 빠져 수영을 하지.

부자들 잔치를 실컷 봤으니 장소를 옮겨야지. 라커 펠러 센터 프로메테우스 황금 동상 조각상 앞 분수는 흐르지 않아 프로메테우스가 슬퍼했을까. 하얀 빙상은 동화의 나라. 라커 펠러 센터에서 스케이트 탔다고 하면 행복할까. 언제 봐도 영화 같은 곳을 지나 사랑하는 채널 가든에 가 붉은색 열매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나무를 보고 5번가에서 버스를 타고 매년 프라이드 축제가 열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근처에 있는 CUNY, The Graduate Center에 갔다.


Kenneth Hamilton pianist

어제는 런던에서 온 음악가가 피아노 연주를 했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듣는 낯선 컨템퍼러리 음악가 곡도 감상하고 사랑하는 쇼팽 곡도 듣고. 음악의 마법에 빠지는 시간이지. 행복이 밀려오는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 CUNY, The Graduate Center는 뉴욕 시립 대학 박사 과정 하는 학교. 거기서도 꽤 많은 무료 공연이 열리나 너무 바쁘니 넘어가고 그랬다. 어제 사랑하는 쇼팽 곡까지 감상해 좋았으나 더 재미있는 것은 런던에서 온 학자이자 피아니스트.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공연이 끝나자 "브라보 브라보" 하니 갑자기 피아니스트 얼굴에 백만 송이 장미꽃 미소가 피어. 역시 칭찬은 좋아. 고래도 춤추게 하지. 학자이자 피아니스트도 인간이지. 누가 칭찬 안 좋아하겠니. 칭찬도 좋은데 상 받으면 더 좋겠지.

공연 감상 후 화장실을 찾다 오래전 "펜 월드 보이스 페스티벌"이 열린 홀을 지나갔다. 축제 시 소설 낭송을 들었는데 기억에 아마 아시아 작품 같고 남편이 죽은 후 장례식에 찾아온 여자가 있었다지.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프랑스 영화 "세 가지 색 블루"도 그러지. 줄리에트 비노슈가 남편 사후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남편의 정부가 임신한 것도 알게 되고. 암튼 소설에 등장하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부자였다고 하고 그럼 아내 몰래 다른 여자 있어도 괜찮을까. 축제에 참가했던 어떤 남자가 작품에 등장하는 남편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부자'란 것을 강조해. 당연 그래도 된다 듯이. 각자 생각이 다를 거 같아. 바로 그 축제를 본 홀 옆 화장실도 들렸지. 문득 지난 축제도 생각나고. 펜 월드 보이스 페스티벌도 세계에서 작가들이 뉴욕에 방문하고 수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맨해튼에 아침 일찍 가서 카네기 홀 길 샤함 표 구입 후, 크리스티 경매장 가서 진품인지 가까인지 혼동스럽게 하는 갤러리도 구경하고 런던에서 온 피아니스트 쇼팽 곡도 듣고 그 후 어디로 갈 것인지 잠시 고민을 하다 사랑하는 센트럴파크 가을 풍경을 보러 갔지. 5번가를 걷다 버스 정류장이 안 보여. 생각하니 업타운 가는 버스 정류장이 메디슨 애비뉴에 있어. 다운타운 갈 때는 5번가에 있고. 메디슨 애비뉴 근처로 가니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이 근처에 보이고 잠시 후 버스를 타고 플라자 호텔 근처에 내렸다. 그런데 날 사로잡은 루이뷔통 숍 쇼윈도. 멋진 모네 작품으로 쇼윈도가 장식되고 안에 하얀색 산타 할아버지가 보여. 세상에 태어나 하얀색 산타 할아버지는 처음 봐. 럭셔리 의상을 입지 않은 내가 명품 숍 안으로 들어가기 좀 어색해 밖에서만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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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플라자 호텔 가는 길 꼭 들어가고 싶은 '메트로폴리탄 클럽'과 '하모니 클럽'도 지나고 결코 아무나 회원 가입이 안 되는 역사 깊은 뉴욕 프라이빗 클럽. 그 후 플라자 호텔 근처 센트럴파크 입구에 도착했는데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가 말을 걸어.

-자전거 타고 센트럴파크 구경하지 않을래요?

난 미소로 '아니오"라 답했지. 그랬더니 "왜 안 돼?"라고 물어. 아무 말 안 했지. 매일매일 맨해튼에 가서 공연과 이벤트 보고 북 카페에 가서 책 읽고 집에서 리서치하며 보낸 세월이 얼마야. 뉴욕에서 태어난 뉴요커보다 더 많은 문화 정보를 알고 있는 내게 자전거 타고 공원 구경하래. 웃음이 나올 일이지. 언젠가 줄리아드 학교에서 만난 변호사 출신 남자도 내가 몇몇 문화 정보 주니 감사하다고 했지. 뉴욕에서 태어난 뉴요커 변호사. 미드 타운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막 실직자로 변해 친구가 소개해 줘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 보러 와서 내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피아노도 연주하고 골동품과 아트도 수집하고 매일 운동도 하나 맨해튼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 매일 눈만 뜨면 직장에 가서 일하니 그런다고. 이제 변호사 그만두었으니 새로운 인생 시작해야겠다고 하던데 그 후 가끔 줄리아드 학교에서 보곤 했다. 줄리아드 학교 댄스 공연 볼 때도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사는 할아버지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콜롬비아 대학원 출신인데 성가대 오디션 봤는데 실패해 너무 속상해서 레슨 받으러 줄리아드 학교에 왔고 그제야 줄리아드 학교에서 많은 공연이 열린 것을 알게 되었다고.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이 모든 뉴요커가 아는 정보가 아닌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얼마나 힘들게 구한 정보인지. 내가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몰랐지. "롱아일랜드 제리코가 어디 있어요?"라 큰아이 선생님에게 물으니 "제리코가 롱아일랜드에 있다는 것만 알아요."라 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딸 선생님은 잠시 한국 외국인 학교에서 교사를 했고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분 아버지가 맨해튼에서 의사로 활동해. 그렇게 필요한 정보 구하기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 특히 뉴욕은 개인주의 삶이고 다른 사람 삶에 관여를 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지.

'브런치 뉴욕 산책'으로 글쓰기를 하는 나도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다 어느 날 그만두게 되고 하늘이 무너질 거 같았지. 두 개의 직장에서 일하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지. 이민자 삶은 정말 눈물겹지.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 어느 날 낡고 오래된 가방 하나 들고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맨해튼 답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맨해튼이 보물섬인 것을 발견하는 중. 누구든 살다 보면 위기가 찾아오고 내가 경험한 위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처럼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걷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걷다 훗날 인생이 달라졌다고 시인이 말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리고 가는지 시인은 말하지 않았다. 쉽고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 누가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할까. 미국과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우리 가족이 어느 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무한도전 일 수밖에 없고 어렵고 힘들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을 찾아가고 있다.



이민과 유학은 그림처럼 예쁘고 우아하고 멋진 게 아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새로운 세상이 열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 졸업 후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도 매일매일 숨 막히게 연구에 몰두하지. 맨해튼에 살지만 맨해튼 문화생활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한국에서는 그 정도 위치라면 누릴 거 다 누릴 거라 착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착각이지. 전에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석좌 교수님도 미국에 유학을 와서 석박사 학위 마쳤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니 다시 박사 과정 시작해 마쳤고 말하자면 두 개의 박사 학위가 있다. 첫 번째 아내가 오랫동안 뒷바라지 해 힘든 공부 마치고 대학에 강사 자리 구하는 게 마흔이 다 되어서 가능한 일이고 그 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수 십 년이 흐른 후 아주 늦게 석좌 교수에 올랐다. 어느 날 석좌 교수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지. 그 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가서 종일 연구를 한다. 그분은 뉴욕에서 지낸 지 40년이 지냤지만 맨해튼 문화생활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로지 학문에만 힘쓴다. 이처럼 뉴욕 생활이 결코 화려하지 않아. 결국 모든 걸 다 갖고 살 수 없는 세상이지. 소수 예외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한 것을 선택하고 불타오르는 태양처럼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닐지. 외부적으로 화려한 직업이 그냥 화려한 게 아닌 것이다는 것. 특히 이민자로서 성공하기 정말 어렵다는 것. 언어와 신분 문제 그리고 좋은 직장은 지구촌 경쟁률을 통과해야 하고. 무엇보다 언어와 신분 두 가지가 발목을 잡아. 한국에서 결코 알 수 없는 두 가지 문제 언어와 신분 문제.


서울 예원과 과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사촌 동생 두 명도 미국에 와서 명문 대학에서 석사 과정 졸업했으나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가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으나 미국은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경쟁하니 쉬울 거 같지 않다고 보통 미국인으로 지낸 것보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살고 싶다고 오래전 한국에 돌아갔다. 몇 년 전 미국에 오신 외숙 부부는 두 자녀 유학 비용이 정말 너무 많이 드셨다고 했지. 아니 미국 유학뿐 아니라 한국에서 교육 비용도 많이 드셨다고.


이민을 오면 생물학적 나이가 숫자 '0'으로 변해버린 이민 생활은 아무나 적응하고 살 수 있는 게 아냐. 어떤 상황에서도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고 밑바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살아야 하나씩 문이 열리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유학생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공부를 하지만 지금 미국의 경우 직장 구하기 너무 어려우니 한국에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와 너무 달라졌지. 엄청난 조기 유학 비용 지불한 부모의 경우 노후 생활할 재산까지 탕진했다는 말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공부했으나 유학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이 들었지만 박사 학위도 마치지 못하고 한국에 간 유학생도 많아. 한국에서도 직장 구하기 어렵다고 해.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유학생이 작은 시절이라 그때는 한국에 돌아가면 쉽게 대학 교수 자리도 구해 강의를 하고 교수가 되기 쉬웠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 정말 사느냐, 죽느냐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지 모를 정도로 경쟁이 심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하물며 보통 사람이 40대 중반 유학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어려운 일에 속하나 물론 힘든 이민과 유학 생활을 이겨낸 소수도 있어. 하지만 편하고 럭셔리한 삶은 상상도 안 하고 살지.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 타고 답사하라고 권하는 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잠시 후 공원으로 들어가 산책을 했다. 청둥오리 떼들이 거니는 호수를 지나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길을 밟으며 계속 걸었다. 셰익스피어 동상이 세워진 "더 몰"로 들어가 셰익스피어에게 물었지. "존경하는 작가님, 어찌해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했더니 셰익스피어 대답이 "멋진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지, 그리고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봐라"라 해. ㅋㅋ 내가 혼자 상상해 본 거다. 사실 늘 궁금하지. 천재 작가 글쓰기 비결이. 결혼 후 아내 고향에 두고 혼자 런던에 가서 20년을 지냈다고 하지. 당시도 배우 되기 정말 어려웠는데 배우도 하고 글도 쓰고 세상 천재 작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열정으로 삶을 만들어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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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한 신랑 신부는 더 몰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해. 신랑 신부 얼굴에 장밋빛 미소가 피어. 영원히 미소가 머물길 바라지 마차는 달리고 색소폰이 울리고 호수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는 뉴요커도 보고 세상 부자들이 사는 산 레모 럭셔리 아파트 비추는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 풍경은 마치 영화처럼 아름답지. 아직 센트럴파크 단풍은 최고 절정이 아닌 듯. 지난주 일요일 뉴욕 시 마라톤 행사가 막을 내려 행사장을 치우는 중이고 센트럴파크 웨스트 입구 근처 노란 은행나무도 보면서 사랑하는 브루클린 식물원 은행나무도 떠올렸지. 아마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을 거라 짐작해. 적어도 11월 중순이 지나야 예쁘게 단풍이 드는 듯. 중국인 이민자들은 식물원에서 열심히 은행을 줍는 것도 오래전 봤지.

해마다 당스 기빙 데이 퍼레이드가 열리는 센트럴파크 웨스트를 지나면서 11월 말 경 열리는 당스 기빙 데이 축제도 생각나고 난 올해도 퍼레이드를 볼 수 없어 슬퍼. 그날 퍼레이드가 열리는 시각 아들과 함께 버스로 보스턴에 갈 예정이라 불가능하고 작년에 퍼레이드 보러 갔는데 군중이 너무 많아 퍼레이드를 멀리서 봤지. 좋은 사진은 담을 수 없었지.

공원에서 나와 링컨 센터 단테 파크 근처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 1불어치 구입해 가방에 담고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가서 1불짜리 커피 마시며 잠시 휴식을 했다. 카네기 홀, 크리스티 경매장, 런던 피아니스트 공연 그 후 센트럴파크에 가서 산책했으니 상당히 피곤해서. 만약 맨해튼에 산 다면 그래도 더 나을 텐데 난 맨해튼이 아니라 퀸즈 플러싱에 사니 죽을 맛이지. 매일매일 지옥철 타고 맨해튼 가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반 무료 공연 열리고 혹시 리허설이라 볼 수 있을지 궁금해 들렸는데 리허설도 안 해. 그냥 커피만 마시고 쉬다 분수대가 있는 링컨 센터에 갔다.

저녁 6시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인도 댄스 공연이 열렸고 도서관에서 연락이 와서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했지.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어. 미리 예약 후 방문한 노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분이 계단을 내려오다 그만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 놀라서 바라만 봤지. 직원이 급히 병원에 연락했을 거라 짐작하고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어. 지금 괜찮은지 궁금해. 오래전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수년 동안 발런티어를 하면서 노인들이 쓰러지면 팔목이 부서져 버린 것도 보고 노인들 신체는 젊은이와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지. 어제 카네기 홀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뒤 러시아에서 이민 온 할머니가 날씨 추우니 커피 사 먹고 와도 된다고 해 근처 마켓에 가서 커피 사러 갔는데 식은 커피만 있어서 고민하다 종이컵에 담아 계산대 직원에게 "커피가 다 식었어요." 했더니 다른 직원에게 말해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문득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하면서 노인들에게 커피 만들어 주던 시절도 생각나고. 뉴요커 노인들 얼마나 까다로운지. 우유 한 방울 넣으세요, 우유 두 방울 넣으세요, 레몬도 넣어주세요, 우유 세 방물 넣고 젓지 마세요 등 개인마다 취향이 달라서 발런티어도 쉽지 않았지. 가끔씩 커피 마실 적 양로원에서 만난 노인들이 잘 계시나 궁금도 하고 이미 하늘나라로 여행을 갔는지도 몰라.

얼마 후 도서관 브루노 월터 극장으로 들어가 인도 음악에 맞춰 추는 인도 댄스를 보았다. 작년엔가 월가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인도 댄스를 본 적도 있었지만 어제 댄스는 정말 최고 수준이었지. 카네기 홀에서 댄스 공연도 했다고 하고. 링컨 센터 도서관은 보물섬이야. 명성 높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으니. 저녁 8시 카네기 홀 길 샤함 공연 보러 가야 해 맨 뒷줄 가장 끝자리에 앉았는데 누가 자주 밖으로 나가 다시 들어오고 10차례 정도 해서 정말 화가 날뻔했지. 인도 댄스 공연을 보다 길 샤함 공연 보려고 링컨 센터에서 카네기 홀로 향해 걸었다. 거리거리에 홈리스 구걸하고 콜럼버스 서클 스타벅스 앞에서 매일 구걸하는 중국인 할머니도 보고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아트 스튜던츠 리그를 지나 카네기 홀에 도착했지. 마트에서 기다린 아들을 만나 카네기 홀로 들어가고 어제 길 샤함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얼굴에 장밋빛 미소가 피었다. 센트럴파크에 11월인데 아직 장미꽃이 피어 있어서 놀랐는데 어느새 카네기 홀에 공연 보러 온 사람들 얼굴로 이사를 했나 봐. 주로 저렴한 공연표를 구입해 보니 옥탑방으로 올라가고 카네기 홀 계단은 경사가 높아 천천히 계단을 걸어도 숨이 헉헉 막혀. 발코니 석에 도착 자리에 앉으니 무대에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이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아들과 내 뒷자리에 앉은 분이 말을 걸어 뒤를 돌아봤다. 날 보고 아는 체를 하는데 난 한참 누구지 생각했지. 그런데 어제 아침에 카네기 홀에서 만난 할머니라고 해 더 놀랐지. 카네기 홀 공연을 보러 오실 때 복장이 너무 우아해서 백조 같아. 세상에 옷이 날개야. 아침에 청바지와 파커를 입고 가방에 빵과 커피를 담아 오셨는데 밤에 우아한 백조처럼 나타날 거라 예상을 못한 거야. 맨해튼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아침 표를 구입하고 집에 돌아가 저녁에 공연을 보러 온 다고 하셨다.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난 종일 맨해튼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침저녁 의상이 같은데. 아웃렛 매장 센추리 21에서도 자주 이메일을 보내와. 날씨가 추워져 두툼한 겨울옷도 필요한데. 삶이 뭐길래 그리 어려운지. 보스턴에 여행 가기 전 겨울옷도 구입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드디어 카네기 홀 무대에 길 샤함이 나타났어. 며칠 전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도 봤고 어제도 메타를 봤지. 메타와 샤함이 자주 공연을 한다고 해. 아들이 매일매일 들려주던 아름다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길 샤함 연주로 들었어. 바이올린 소리가 울렸다. 속도가 약간 빠른 감도 있었지. 좀 더 천천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길 샤함은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바이올린 곡. 어제 매진이고 사람들 얼굴 표정에 '행복해요'라 적혀 있어. 뉴요커들은 정말 음악을 사랑해. 수년 전 뉴욕 클래식 음악 채널 WQXR에서 길 샤함이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는데. 오래된 일이고 실제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야. 11월 7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처음으로 봤고 어제가 두 번째. 아래 유튜브에서 이작 펄만과 조슈아 벨의 연주를 올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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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 길 샤함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도 7일 처음 봤고 3일 연속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했고 난 8일 공연을 안 보고 7일과 9일 공연을 봤다. 그러니 주빈 메타 지휘자를 두 번 봤지. 중후한 느낌이 든 지휘자. 걸음걸이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거워. 주빈 메타 왼손도 보고 지휘봉을 든 오른손도 보고 두 손 모두 움직일 때도 보고 어제 플루트와 오보에 소리가 정말 아름다워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도 생각이 났지. 보들레르 '교감' 시에 나오는 오보에처럼 부드러운 은은한 향기. 아주 마른 체형의 길 샤함과 약간 몸집이 큰 주빈 메타 무대를 보고 오래오래 기억할 거 같아.


작년에 카네기 홀에서 아들과 함께 힐러리 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고 12월 다시 힐러리 한 공연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슈베르트 심포니 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했고 막이 내리자 카네기 홀 밖에 나와 지하철에 가니 지하철이 운행을 하지 않았다. 정말 말썽꾸러기 지하철. 할 수 없이 터벅터벅 걷다 미드타운 힐튼 호텔로 근처를 지나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할랄' 2인분을 구입했다. 맨해튼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에 속하는 할랄. 핫 소스와 하얀 소스를 함께 넣어 섞어 먹어. 처음에 이상한 음식이네 하다 이제 아주 잘 먹는 메뉴로 변했지. 다시 계속 걸었지.

밤에도 잠들지 않은 타임스퀘어 지하철역에 가서 7호선을 탔다. 그런데 지하철이 똥통으로 변했어. 참을 수 없는 똥 냄새가 나. 앞에 앉은 뉴요커는 다른 지하철로 가고 난 새벽부터 종일 맨해튼에서 시간을 보내고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않아 너무 피곤한 상태라 움직일 힘도 없고 아들도 참기 어렵다 하고 지하철 기관사가 문을 열어 한마디 하려다 얼른 문을 닫아버려 웃음이 나왔지. 정말 뉴욕 지하철은 별별 풍경이 다 벌어져. 아들 보고 좀 참자, 라 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 도착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점점 냄새가 피아니시모처럼 약해졌다. 정말 다행이었어.

로컬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후 버스에 승차했는데 곧 죽어갈 정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버스에 탄 승객이 보였다. 왼발에 깁스를 한 중년 여자 신음 소리는 포르테 시 모처럼 컸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에 그려진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고 물론 화가 그림보다 실제 인물 고통이 극하게 보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인가 보다 싶어 내 마음도 안 서러운데 잠시 후 어떤 승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병원에 가서 의사 만나 보세요. 여기 전화번호 있어요. 이 빌딩을 찾아가세요.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중년 여자 신음 소리가 차츰 피아니시모처럼 작아지고 얼굴은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육체적인 고통도 심하지만 순간 정신적인 고통도 심한가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아파서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하지만 무엇보다 불안한 정신 심리가 더 큰 고통이 아닐지. 그런데 의사 찾아가면 된다고, 하니 곧 나을 거 같아 금세 얼굴 표정이 변한 게 아닐까 짐작했다. 우리네 보통 사람 삶은 언제나 수많은 문제가 찾아오고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생의 위기가 찾아오기도 해. 그런데 그런 문제로 받는 불안한 정신 심리로 이어진 고통이 인간을 더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 자정 무렵.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지나버렸다.

금요일 오후 1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열리는 공연에 가려고 미리 예약을 했는데 아들과 함께 점심 식사하고 글쓰기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버렸어. 지난 수요일 역시 종일 글쓰기 하느라 맨해튼에 갈 수 없었다. 오후 1시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공연이 열리고 맨해튼 음대에서 성악과 첼로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는데 글쓰기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

맨해튼에 가면 세상 구경하고 매일매일이 새로워.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 끝없이 배우는 게 삶 같아. 오래된 가방 하나 들고 맨해튼에 가서 바나나 사 먹고 움직이지. 특별한 경우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매일 무료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가끔은 저려한 티켓을 구하려고 3-4시간 이상 기다린다. 뉴욕은 갖은 자에게 천국이고 갖지 않은 자에게 가난이 주는 선물은 위대하고 모든 것을 다 참고 극복하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은 문화 예술면에서 정말 아름답고 스스로 노력하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해. 뉴욕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은 언제나 폭풍이 불고 지금도 폭풍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우리 가족 차마 글로 적을 수 없는 아픔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글에 적은 부분은 문화 예술면이지 현실은 언제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위기 한가운데 실직자 뉴요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의 한 복판 뉴욕에서 매일매일 꿈을 찾아 가방 하나 메고 여기저기 답사하며 기록하고 있다. 약 한 달 전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브런치 프로젝트'에 참가하려고 한 달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아름다운 문화 예술을 알고 즐기면 좋을 거란 생각이 변함없어. 브런치에게 글쓰기 기회를 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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