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루클린 식물원, 카네기 홀, 라커 펠러 센터, 미드타운 갤러리
금요일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올 듯하고 고민하다 아들과 함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에 가는 중 갑자기 7호선이 멈췄다.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니 내렸는데 다시 운행한다고 하니 다시 지하철에 탑승했다. 상당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갔다. 그런데 다시 7호선이 운행하지 않는다고 방송이 울리고. 아들과 난 7호선 헌터스 포인트 애비뉴 역에서 내렸다. 매일 7호선에 탑승하지만 그 역은 내게는 아주 낯선 곳. 한 번도 그 역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운행을 안 한다고 하니 내려야 했다. 목적지 브루클린 식물원에 가야 하는데 그곳에 가는 지하철역이 어디에 있는지 아들은 아이폰으로 찾고 평소 2/3호선에 탑승하면 식물원 바로 앞에서 내려 편하지만 브루클린은 지하철역이 맨해튼과 다르고 식물원 바로 앞에서 내린 지하철이 우리가 서 있는 장소에서는 없어서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결국 G에 탑승해 브루클린 낯선 지하철역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걷는 낯선 지역. 꽤 멋진 빌딩도 많고 흑인 남자가 쓰레기통에서 빈병을 수거하는 것을 목격했다. 평소 흑인이 빈병을 수거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지역마다 거주하는 인종이 다르고 우리가 걷던 지역이 흑인이 많이 살까 생각을 하며 식물원을 향해 계속 걸었다. 낯선 도로에서 아들이 안내를 하고 난 따라갔다. 뉴욕에 도착한 첫해 아들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날 아침에 주인이 차로 우릴 데려다주었지만 당시 차가 없고 휴대폰 비용이 비싸서 구입하지 않아 휴대폰도 없는데 오리엔테이션 마치고 집에 가는 중 길을 잃어버려 4시간 이상을 헤맸다. 롱아일랜드 부촌 딕스 힐 주택가는 비슷비슷해 도저히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아들은 무척 힘들어 짜증을 부렸는데 세월이 지나니 이제 엄마에게 낯선 도로를 안내하니 많이 컸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하필 무한 메트로 카드도 없는데 지하철이 말썽을 피우니 다시 2.75불을 주고 사용하니 엉뚱하게 지출이 되었다. 며칠 전 밤에도 아들 메트로 카드가 환승이 되어야 하는데 메트로 카드를 그으니 2.75불을 삭감했다. 기사 아저씨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고생 끝에 브루클린 식물원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향기 가득한 식물원을 아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3월에 네 차례나 눈 폭풍우 찾아와 과연 매그놀리아 꽃이 피었는지 궁금했는데 놀랍게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혹시 피지 않았는지 이미 피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궁금했는데 예쁘게 피어나기 시작해 감탄이 나왔다. 언 땅에서 눈보라가 쳐도 꽃을 피우니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인지. 아들과 함께 가끔 찾아가는 식물원이고 튤립이 피는 정원 근처에서 붉은색 금붕어가 헤엄치고 노는 모습을 보노라니 초등학교 시절 당번을 하며 금붕어가 담긴 어항에 새로운 물로 교환했던 것도 떠오르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아직 연꽃도 튤립도 피지 않았다. 식물원 옆에 있는 브루클린 뮤지엄에 가려고 출구로 나가는 중 노란 민들레 꽃을 봤다. 세 송이가 피었으니 우리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는 시들어 버린 노란 민들레 꽃이 보이니 정말 우리 가족 같아 하면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민들레 꽃을 보고 우리 가족 같다는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도 떠오르고 덕분에 수 십 년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바로 옆에 있는 뮤지엄에 가니 방문자가 많아 입장권을 구입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오래 기다렸다. 데이비드 보위 특별전이 열리나 기부금이 아니라 포기하고 기부금을 주고 일반 입장권을 2장을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다. 금요일 아침 대소동을 피워 피곤하니 커피 한 잔 주문해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카페에서 호박씨를 파니 "호박씨 깐다"라는 속담이 생각나 웃고 말았다. 잠시 후 뮤지엄에서 준비한 한국전도 보고 박남준 비디오 아트가 보였는데 야동이 비쳐 역시 웃음이 나왔다. 박서보 화백 작품도, 도자기도, 한복도 전시되어 있었다. 존 싱어 사전트 누이가 담긴 초상화도 보고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 제자 초상화도 보고 몇몇 작품을 보다 뮤지엄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목요일 저녁 7시 카네기 홀에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오페라를 아들과 함께 감상했다. 내게는 낯선 작품이고 처음으로 본 오페라였다. 아들은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더 좋아하고 어제 작품은 별 흥미가 없다고 하니 밤 11시에 막을 내린다고 하나 우린 2막까지만 보고 집에 돌아왔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밤늦은 시각이 되었다. 가끔 카네기 홀에서 만나는 오페라 지휘자도 만나고 UK에서 뉴욕에 여행 온 학생들도 만나 얘기를 했는데 뉴욕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와서 많이 놀랐다. 카네기 홀에 가면 가끔 여행객을 만나고 대개 뉴욕에 자주 여행 오는 분도 많고 뉴욕에 와서 공연과 전시회를 많이 본다고 한다. 어제 그 학생들에게 메이시스 백화점 플라워 쇼와 첼시 갤러리와 모마를 소개해 주고 며칠 전 라커 펠러 센터 아이스 링크에서 열린 아이스 쇼 사진 보여 주니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해서 웃었다. 특별 이벤트니 항상 열리는 것이 아닌데. 이벤트는 그야말로 그 순간 열리는 게 많다. 어제 브라질에서 온 여행객도 만나고 그분은 어머니가 뉴욕에 살고 있다고 하고 가끔 뉴욕에 와서 공연을 본다고 하셨다. 읽고 읽는 책을 어디서 구입했는지 묻자 스페인에서 구입한 것이고 뉴욕에 대한 것이라 하나 스페인어를 모르는 난 장님과 비슷하다. 내가 모른 것은 보이지 않으니. 그제도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봤고 처음으로 독일계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 피셔 연주를 들었다. 그동안 카네기 홀에서 봤던 어떤 공연보다도 더 좋았다. 활도 탄탄하고 느낌도 좋고 브람스 바이올린과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둘 호흡도 잘 맞아서 더 좋았다.
그날은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스 대통령이 정책을 바꾸려 하니 국민은 싫어한다고 하고. 프랑스 디종 출신이라고. 따님과 사위가 뉴욕에서 일하니 가끔 뉴욕에 온다고. 프랑스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500불이라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부러운 눈치로 바라봤다. 정말 저렴하다고. 이틀 연속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만나고 헌터 칼리지에서 미술사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중년 여인을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스페인에서 미술사 대학원 과정을 하다 뉴욕에 왔다고 하고. 이탈리아를 정말 사랑한다고. 대학에서 무슨 전공했냐 물으니 문학이라 하니 놀랐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를 구사하고 내게 스페인어로 적어진 '돈키호테'를 읽어보라고 하니 장님인 난 아들에게 부탁을 해야 할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은 원본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하나의 단어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게 많다고 했다. 링컨 센터에서 돈키호테 발레 공연을 본 적은 있으나 그분이 말한 내용은 내겐 처음이었다.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고 자정 무렵에 집에 오니 피로가 쌓여갔다. 그제 라커 펠러 센터에서 아이스 쇼도 보니 신이 났다. 자랑스러운 김연아 선수도 떠올랐고 김연아 선수만큼 잘 하지 못하더라. 하지만 특별한 의상을 입고 하얀 빙상을 달리니 마치 영화 같았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하얀 빙상 위를 달리고 구경꾼은 신이 나서 구경을 했다. 1년 6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뉴욕. 뉴욕에 사는 시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도시. 그날 미드타운에서 전시회도 보고 북 카페도 가서 책과 시간을 보냈다.
이제 서서히 봄기운이 도는 뉴욕. 내일모레는 부활절이고 5번가에서 퍼레이드가 열리니 또 얼마나 화려한 모습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올지. 부활절 퍼레이드 덕분에 버그도르프 굿맨과 삭스 앤 핍스 백화점과 바니스와 블루밍데일즈 백화점은 매출이 더 잘 될까.
내일도 외출해야 하는데. 오전 세탁도 해야 하고 왜 이리 바쁜지.
2018. 3. 30 금요일 밤
외쪽 존 싱어 사전트/ 오른쪽 백남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