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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늦잠- 양극의 세계

에드거 앨런 포 오두막집, 크리스티 경매장과 소더비 경매장

by 김지수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버렸지. 뉴욕 오픈 하우스 축제 스케줄을 만들어 두었는데 집에서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냉장고에 먹을 것도 없고 식사비 비싼 뉴욕 밖에서 식사하기도 겁이 나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지. 얼른 식사 준비부터 했다. 씻어둔 쌀로 밥을 짓고 감자와 양파와 돼지고기를 썰어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한 시간 정도 후 밥이 지어지고 카레라이스로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전날 밤 만든 스케줄을 변경할 수밖에. 브루클린에 가고 싶었으나 이동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포기하는 게 더 낫겠다 싶고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Mount Vernon Hotel Museum에 가장 먼저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퀸즈 보록 플라자에서 환승해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걸었지. 천천히 두리번두리번하며 낯선 거리를 걷다 목적지에 도착. 매년 10월에 열리는 뉴욕 오픈 하우스 축제 이틀째 정말 방문객이 많아서 놀란 일요일 아침. 맨해튼에 산다면 이동 시간이나마 줄일 텐데 플러싱에서 맨해튼에 오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처음으로 방문한 뮤지엄. 우디 알렌 영화에도 나 오는 퀸즈 보로 브리지가 가까이 보여. 퀸즈 보로 브리지는 퀸즈 롱아일랜드 시티와 맨해튼 미드타운을 연결하는 다리. 1909년 완공되었고 1880만 달러 공사비가 든 곳. 밤에 퀸즈 보로 브리지 야경이 무척 아름다운 곳.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59 스트리트 브리지 송(The 59th Street Bridge Song)"은 이 다리에서 영감을 받은 거라 해.

뮤지엄 입구에서 발런티어가 나 보고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이 뮤지엄은 1799년 지어진 빌딩이고 애초에 마구간으로 사용되었으나 1826년 호텔로 개조되어 어퍼 클래스 사람들이 주말 휴식을 하기 위해 찾아온 곳이라고. 침대, 식탁, 소파 등 그들이 살던 시절 그대로 재현해 둔 작은 뮤지엄이고 피아노 포르테 악기와 하프와 플루트도 보이고 커튼 장식이 무척 예쁘고 뮤지엄 정원에는 연보랏빛 과꽃이 예쁘게 피어 있고. 1830년대 뉴욕시에 대한 자료가 식탁에 놓여 있어 읽어 보았다. 뉴욕시 인구가 197,112 명 미국 전체 인구가 12, 866, 020 명. 뉴욕시 백인 남자 인구가 89,034 명, 백인 여자 인구가 94, 102명. 이민자는 17,773명 (전체 5.7%). 1825년 뉴욕시에 435명 의사가 활동했고 1823년 결핵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고 결핵이 전체 죽음의 약 20%를 차지한다고 적혀 있었다. 일요일 오전 오픈 하우스 축제에 많은 방문자가 찾아온 게 놀라웠다.


주말에 찾아와 휴식을 한 별장이라 하니 오래전 영어 회화 수업 시 만난 지인들과 함께 T의 별장에 간 것도 기억이 나고. 와인과 음식을 조금씩 가져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갔지. 영어 회화 수업반 사람들 가운데 영어를 미치도록 사랑한 분도 있고 종일 영어 소설과 신문을 읽고 회화 수업을 받고. 난 그때 두 자녀 교육으로 영어 회화 수업 듣는 것만으로 벅찬데 각자 삶은 다르고 나랑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 영어회화 수업반이 떠오르고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당시 캐나다에서 온 영어 강사가 수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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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에서 나와 길을 걸었지. 원래 계획에 없던 갑자기 소더비 경매장이 떠올라. Mount Vernon Hotel Museum 근처에 소더비 경매장이 있어. 북쪽으로 계속 걷다 해마다 가을 아트 경매를 여는 소 더디 경매장에 도착. 입구에 있는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작은 사이즈 백이 아니라면 반드시 맡겨야 해서 직원에게 가방을 맡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올라갔다. 보석류와 장식품 전시를 보고 일요일 꽤 조용했다. 보석을 전시한 공간을 꽃과 식물로 예쁘게 장식을 해서 더 아름답고 직원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보석을 구입할 눈치로 보였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아트 경매가 열리고 미리 프리뷰를 일반에게 공개 하나 개인적으로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매장이 덜 부담이 되고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소더비는 좀 부담스럽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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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경매장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Bohemian National Hall 2층 갤러리에 갔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보헤미안 내서 날 홀에 체코 총영사관과 체코 문화원이 있다. 원래 1897년 오픈했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이민자들이 만나는 장소다. 강의, 영화, 공연과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며 무료 이벤트가 많으나 가끔 유료 이벤트도 연다. 조용한 공간이라 아주 좋은 곳. 오랜만에 방문해 사진전(Velvet Revolution in Prague)을 보았다. 프라하 하면 카프카 작가도 생각나고 카를 교 다리와 정말 예쁜 시계탑도 생각나고. 프라하 야경도 정말이지 예뻤다. 프라하 여행 시 미국 시민권을 분실한 여행객이 발생해 힘들었던 한국 유학생 가이드. 당시 체코에서 연극을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난리가 나버렸어. 미국 비행기 보잉사 직원과 결혼해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당시 미국 시민권이 천만 원이 넘게 암거래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행 팀 가운데 그분 남편을 제외하고 그분 혼자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는데 어찌 알고 소매치기를 했는지.

프라하 사진전을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를 산책하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도 많고 난 86th st. 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익스프레스 4호선을 기다렸다. 지하철역이 열기로 가득해 숨이 막힐 듯 덥고 오래오래 기다려도 안 오는 지하철로 포기할까 생각도 하면서 지하철을 기다렸는데 늦게 온 4호선은 승객으로 만 원이고 물론 빈자리는 없고 후회도 되고. 목적지 브롱스 에드가 앨런 포 오두막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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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ar Allan Poe Cottage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와 평론가로 활동한 에드거 앨런 포가 그의 생의 마지막 부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지냈던 곳이고 The Bronx Poe Cottage는 Kings Road Bridege & Grand Concourse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AnnabelLee', 'Eureka', 'The Bells'를 완성했다. 오늘날 미국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포는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받으며 지냈고 당시 오두막집 렌트비가 1년에 100불이었다고. "갈까마귀"로 명성이 높아졌으나 수입이 변변찮게 지냈던 포.




에드가 앨런 포가 사용하던 책상


수년 전에도 그곳을 방문해 그가 사용하던 작은 침대와 식탁과 테이블 등을 보고 많이 놀랐고 위대한 작가 정신에 감명을 받았다. 아름다운 시월에 열리는 오픈 하우스 축제라 겸사겸사 방문했는데 가이드는 1층 공간만 보게 하고 2층을 올라가지 못하게 해서 속이 상했다. 지하철로 너무 고생을 했는데 오두막집 공간도 못 보게 하다니. 미리 알았다면 방문하지 않았을 것을 정말 후회가 돼. 그의 아내 버지니아는 가난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가 죽은 지 2년 후 포도 저세상으로 갔지. 왜 천재는 살아 있는 동안 인정을 받을 수 없는지. 만약 포가 인정을 받아 부와 명성을 얻었다면 그 후 미국 문학은 얼마나 달라졌을지도 생각이 들고.


에드가 앨런 포가 사용하던 침대


고등학교 시절 많이 읽은 "애너벨 리" 시를 그렇게 가난하게 지낸 포가 썼을 거라 감히 상상도 못 하였는데 뉴욕에 와서 포가 뉴욕에서 지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뉴욕과 인연 깊은 작가가 많아. 고등학교 시절 친구랑 매일매일 아름다운 시를 교환하고 지냈는데 입시생 시절 그랬으니 돌아보면 다르게 지낸 거 같아. 지하철로 대소동을 피우며 포 오두막집에 갔는데 전시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정말 유령이 나온 기분이 들고 브롱스에서 맨해튼에 돌아올 때 다시 4호선 타기 겁이 나 그냥 다른 지하철을 이용했다. 오두막집에서 B/D 지하철이 더 가까워 아무거나 타고 달렸지. 자주 이용하지 않은 지하철이라 노선을 잘 모르고 뉴욕 지하철은 지하에서 인터넷이 연결이 되지 않으니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내가 아는 콜럼버스 서클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난 바로 내렸다.

콜럼버스 서클 주변을 지나면 항상 만나는 중국인 홈리스도 보고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년 전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본 할아버지가 계셔. 예전과 다르게 짐이 없고 지팡이 하나 보이고 전보다 체중이 많이 줄어들게 보였다. 음악을 정말 사랑한 분이란 것을 줄리아드 학교에서 많은 공연을 본 것을 보고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그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예전보다 더 마르고 더 초라해진 행색으로 나타나 마음이 아팠다.




잠시 후 지하철을 타고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다. 지난번 봤던 티파니 전등 가격을 내가 착오했나 다시 확인을 하니 역시 60만 불-80만 불이라 적혀 있고 가구와 멋진 장식품이 전시된 갤러리를 둘러보고 눈높이만 높게 하고 바리스타가 만들어 준 카푸치노 마시고 크리스티를 나왔다. 만약 돈에 상관없이 갖고 싶은 장식품과 가구를 고르라면 내 취향대로 고를 텐데 뉴욕의 부자 잔치에 낄 수가 없지. 서민과 부자의 차이가 하늘과 땅 보다 더 큰지도 몰라.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토니 베넷 오케스트라 석은 553불부터 시작했고 브로드웨이 브루스 스프링스틴 공연은 75불-850불 사이고, 뉴욕 시 Food & Wine Festival은 146 불이고 New York Youth Symphony Annual Benefit 티켓은 500불- 25000불 사이다. 정말 차라리 모른 게 약이 될지도 몰라. 뉴욕 알면 알수록 놀라운 게 많아.

일요일 오후 5시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니콜라스 료리히 뮤지엄에 가서 공연 볼까 하려다 그냥 취소하고 집에 돌아왔다. 맨해튼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지하철 역시 지옥철. 주말에도 승객이 너무 많아 빈자리가 안 보여. 일요일 부자들의 잔치를 여는 크리스티 경매장과 소더비 경매장 그리고 상류층이 주말 휴양지로 지낸 Mount Vernon Hotel Museum에 가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창작 활동을 했던 에드거 앨런 포 오두막 집에도 가고 양극의 세상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21세기 지구촌 문제 가운데 하나 빈부 격차는 언제쯤 사라질까. 누가 구세주일까.

일요일 무얼 하며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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