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위기를 맞아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후로 내 인생은 달라졌다. 40대 중반 뉴욕에 와서 어린 두 자녀랑 공부하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지만 어렵게 유학 준비를 하고 뉴욕에 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간다는 결정은 주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어떻게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놀라며 충격을 받았다. 뉴욕에 가면 어떻게 살래?라고 대학 친구들도 물었다. 학생처럼 지낼 거다,라고 했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낼 적 상황과 정 반대의 극한 상황에 두 자녀도 함께 적응하며 지내야 했다. 죽음 같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오래오래 빛이 들어오지 않은 암흑 속에서 지낸 세월.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눈물을 뿌리며 꿈과 희망의 씨를 뿌렸다. 세월이 흘러 텃밭에서 장미꽃이 피기도 하지만 얼마나 힘든 세월인지 차마 말할 수도 없다. 두 자녀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켜서 늘 죄인 같은 마음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도전들이 너무나 많았다. 언어, 지리와 문화 등 모든 게 다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새로운 나라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어디로 가고 없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며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도전과 열정과 꿈이 없다면 새로운 세상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니 뉴욕은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 싶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읽은 헤세의 "데미안"에 있던 구절도 생각이 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