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의별짓 Oct 11. 2020

다시 찾는 그 날까지.

귀차니즘에 밀린 나의 여행에 대한 의지력을 깨우는 중

순간이었다. 

몸을 좌우로 움직여 일어나보려 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상체를 있는 힘껏 일으켰다.

그리고 하체를 일으키고자 왼쪽 발목에 손을 대는 순간 깨달았다. 


‘젠장’


일어서기를 포기한 채, 한참을 물웅덩이에 주저앉아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삼복사 골절. 수술과 3주간의 입원, 2-3개월가량의 깁스 치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전화로 대충 업무를 수습하고 있는데, 신발 한 짝 들고 어색하게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태어나 지금까지 숱하게 미끄러지고, 넘어졌었는데, 하필 가장 바쁜 이 타이밍에 골절 수술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솔직히 계속되는 고강도 업무로 휴식이 갈급하긴 했지만, 이렇게 망가지는 걸 원한 건 아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에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사고 난지 두 달이 지났다.

목발에 의지한 채 힘겨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사람다워졌다. 시간이 약인 병인지라 바로 서서 걷는 과정까지 꽤 멀고 험난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걸음걸이를 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발이 묶여버리니, 모든 생활이 집안에서만 이뤄졌다.

솔직히 심해진 귀차니즘과 코로나로 출근을 제외한 외출과 여행이 사라진 오래였지만,

사고로 인한 외출 불가는 잠시 잠들어 있던 청개구리 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럴 줄 알았음, 시간 될 때 틈틈이 다녀올걸’     


돌이켜보니, 한 3-4년? 피곤하단 핑계로 휴일의 대부분을 집에서 생활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나의 의지 문제였다. 하지만 귀차니즘이 늘 그 의지를 꺽어버린다는 것이 변수였다. 그래도 나름 올해는 콧바람 한번 쐬러 갈 생각이라는 것까진 해봤는데, 덜컥 코로나라는 변수를 만난 더 무기력해졌을 뿐이다.

근데, 이렇게 사고로 인해 반강제적 휴식을 취하게 될 줄이야!!!!



뚜벅이 여행가에게 다리는 참 소중한 존재이다.

‘발길 닿는 대로’란 말처럼, 낯선 땅 위를 마음 내키는 대로 걷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그 낯선 땅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져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굉장히 단순해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목적지 없이 걷는 걸 참 좋아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그 동네만의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발견하곤 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여행객을 만나는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있다. 

처음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적막이 흐른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낯선 시선들. 공기마저 차갑다. 
하지만 이내 차가웠던 공기는 사라지고, 낯선 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각자 하던 일에 열중한다. 
그렇게 적막이 사라지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스며든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파리 13구에서 만난 cafe sol doiro, 아스토리아의 single cut beer, 후쿠오카의 manu coffee ... 
이곳들이 내게 그런 곳이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 가는 우리 집 앞 카페나 호프집 같은 쉼터 같은 곳이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익숙한 편안함은 내게 특별한 에너지를 준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마다 나만의 쉼터를 찾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이번 골절 사고로 내게 불안한 믿음이 하나 생겼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나아진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당장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 내려가기도 버거운 상황이다보니, 과연 언제쯤 이전 처럼 걸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일상에 무리가 없어야 다시금 나의 현지 쉼터들을 찾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럴줄 알았음 멀쩡할때 한번 이라도 더 다시 갔다올걸...

지난날 귀차니즘 앞에 무너진 나의 의지력이 정말 밉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나아지는 병이니까, 분명 조만간 건강한 다리로 다시금 찾은 나의 현지쉼터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날이 올 것을 믿어본다. 


그리고 어제보다 나은 나의 다리를 잡고 다짐한다. 


'앞으로 나의 여행길 앞에 귀차니즘을 두지 말자! '

작가의 이전글 그리운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