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만남이란 이상한 논리 앞에 끊어져 버린 인연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친구가 많았다.
초·중·고 동창에 대학 친구, 동료, 커뮤니티 친구들까지매일같이 약속이었고, 그 약속들은 힘든 직장생활의 활력소였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업무, 잦은 약속 취소는 귀찮음과 공감 없는 대화를 만들었고, 서로를 향한 배려 없는 날 선 비판은 ‘오랜 친구’, ‘원래 이런 애’라는 명목하에 받아드려야만 했다. 각자의 기분과 상황만 있을 뿐. 서로에게 활력을 채워주던 만남은 오히려 헛헛해져만 갔다.
여행 중,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학 졸업 기념 여행, 퇴사 하고 떠나온 힐링 여행, 출산 우울증 극복을 위한 여행,
어학연수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하는 여행,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온 여행,
갱년기 엄마와 함께 시작한 여행, 여행이 정착 생활이 되어버린 사람 등,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낯선 땅에서 만난 이들이 맥주 한잔, 맛있는 밥 한 끼를 나누며
하루 여행 일과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각자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 여행지에서 보고 들었던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내일의 여정을 응원하는 자리였다.
서로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여행”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각자 일정에 따라 움직였기에 함께한 순간에 충실했던 사람들.
관계 피로도에 갇혀 있던 내게, 이런 만남은 신선하고 담백했다.
이때부터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상호 이해관계가 확실한 관계,
서로에게 자기 생각과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
함께하는 현재를 즐겁게, 하지만, 서로의 과거나 내일을 알려고 하지 않는 관계,
그렇게 관계가 점점 담백해지면서,
현재, 그 많던 나의 지인들은 소수만 남겨둔 채 휴대폰 깊숙한 곳에 잠들어 버렸다.
담백하고 단순한 관계의 단점은 지속력이 짧다는 거다.
상호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의 정도가 미비하기에 그 깊이가 얕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관계의 끈을 놓아버리면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그래서, 요즘처럼 일상의 피로가 다시금 쌓일 때면
담백한 관계를 추구하던 지난날의 내가 조금 후회스럽다.
비행기 연착으로 페루 쿠스코 공항에서 6시간 노숙했던 일,
페루의 인연이 시카고로 이어져 함께 즐겼던 저녁 식사,
뉴욕 블루노트에서 함께 즐겼던 맥주 등
영원히 기억될 줄 알았던 여행의 순간들이 5년이란 시간 앞에서 조금씩 퇴색된다.
그럴 때면, 가끔 만나 그날의 기억과 생각을 함께 추억하면 좋을 텐데,
오롯이 나 혼자만의 추억이라 주변에 함께 공감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마치 홀로 꾼 단꿈 같아 쓸쓸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당시 가졌던 희망을 품고 아직도 살고 있을까?
관계 피로도란 핑계 앞에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기 싫었던 지난날,
그때의 게으름과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담백한 만남이란 이상한 논리.
그 논리 앞에 끊어져 버린 인연들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