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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Mar 15. 2020

창문 넘어 도망친 XXX!

100세 노인 알란같은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몇 장 읽지도 못하면서 여행 짐 꾸릴 때 꼭 챙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낯선 땅에서 상호 언어가 통하는 유일한 매개체라서 그런가? 여행 기간 내내 한 줄을 읽던, 한 장을 읽던, 내 가방 한쪽에는 늘 여러 권의 책이 자리한다.      


2015년 3월, 본격적인 안식 여행을 위한 짐을 꾸릴 때도 그랬다. ‘여덟단어’,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등 여행이 긴 만큼 권수도 많았다.      


“너 이거 다 읽을 수 있어?”     

“1년을 놀고먹는데, 당연한 거 아냐?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평소에도 책 한 권 읽기 힘든 나였기에 여행지로 고이 모셔온 책들은 몇 달이 지나도 빛을 보긴 힘들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쓸데없는 짐들은 하나둘 버려졌다. 


하지만, 이놈의 책들은 ‘다음 도시로 이동하면서 읽을 거야,’, ‘카페에서 현지인처럼 읽을 거야’, ‘공원에서 커피 마시며 읽을 거야.’, ‘오늘 숙소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읽어야지’ 등 절대 꺼지지 않는 내 허세로 인해 캐리어 한곳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여행 후반부는 주로 유럽에서 보냈다. 이동은 주로 기차를 이용했는데, 하나로 쭉 연결된 기찻길 위에서 나라가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또, 나라와 도시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도 꽤 볼만했다. 하지만, 장시간 기차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여간 지루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지루함을 달래줄 다양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고, 캐리어 안에서 고이 잠들던 책들도 자연스럽게 빛을 보게 되었다.  

    

그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었다. 자신의 100번째 생일날 양로원에서 탈출한 알란의 일대기가 담긴 이 책은 마치 SF 만화 같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헛웃음 치며 읽었던 이 소설이 내게 흥미로웠던 점은, 100세 노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 준 고양이 몰로토프의 죽음 이후, 모든 의욕을 상실했던 알란이 100번째 생일 전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양로원의 삶을 뛰쳐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꽤 흥미로웠다. 평생을 우여곡절 속에서 살던 알란의 100세 이후의 삶도 여전히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얽매이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인생을 즐기며 사는 100세 노인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깨달았다.

      

소설 속 알란은 무언가에 욕심내거나 요행을 바라던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었다. 열심히 살다 보니 좋은 기회와 인연은 찾아왔고, 거기에 운이 조금 좋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속에서 그의 삶은 고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고양이 죽음을 핑계 삼아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열심히 살았던 그였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겠노라 결심하고 창문을 넘어섰다.      


나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도 목적도 잃은 채 살아가는 게 싫었다. 뭐든 새롭게 도전하고,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내가, 어느 순간 현실 앞에서 타협해갔다. 그런 내 모습이 점점 쪽팔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몸과 머리를 비우겠노라 결심하고 내 일상의 창문을 넘어선 것이다.     


여행 초반은 마냥 신나고 즐거웠다. 하지만, 여행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어떻게 일상으로 복귀할 것인지, 앞으로 뭐해 먹고살아야 할 것인지 등 고민이 점점 깊어져 갔다.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창문을 넘은 100세 노인의 용기에 나 역시 뭐든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게 됐다.      


그렇게 결심하고 돌아온 지 5년... 

과연 나는 그때 알란의 용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을까?     


얼마 전, 우연히 대학로에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공연 포스터를 보게 됐고, 반가운 마음에 공연장을 찾았다. 황당무계한 알란의 이야기는 역시나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일상의 창문을 넘었던 2015년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알란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 번 사는 인생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면 잘 살아보겠다.’ 결심했는데, 과연 나는 그때의 약속을 지키며 현재 살고 있는 걸까?      


해볼 만큼 다해봐서 미련 없다는 말로 위로하거나, 마흔 문턱에 선 나이 뒤에 숨어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는 ‘일’ 이 아닌, ‘삶’을 살고 싶다 말하면서, 막상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는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일상은 쉽게 익숙해진다. 수없이 되새김질하며 각오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생각과 각오는 쉽게 무뎌져버린다. 그렇기에 더 많이 각오하고, 더 많이 되새김질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되는데, 과연 지금의 나는 2015년에 그렸던 내 모습일까?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 다시금 되새겨 본다.      


창문밖으로 도망치고 싶었기에.. 책 제목이 맘에 들어 구입했다.
구입당시에 왜 바로 읽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창문 밖으로 도망친 노인 알란처럼 일상에서 도망친 순간, 이 책을 읽고자 선택했고, 유럽여행 중에 완독했다.
 알란처럼 늘 용기있게, 자신을 가두지 말고, 도전하고, 즐기면서 살아보고자 한다.
나 역시 창문밖으로 도망쳤으니까... - 2015.11.5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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