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내려온다'는 되고, '아리리요 평창'은 안 되는 이유
2020년 화제의 콘텐츠로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를 꼽는 것에 이견이 없을 거다. 작년 연말 국내 주요 광고대상에서 상을 휩쓸며, 전형적인 공익광고 스타일을 탈피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며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서 한국관광을 오지 못하는 아쉬움을 '한국의 흥'으로 대신 느끼며 다시 함께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이 홍보 영상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 누리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의 매력을 꼽으라면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배경으로 중독성 강한 리듬과 무심한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춤을 말한다. 그리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 지역마다 재미적 요소를 달린 한 디테일한 연출 포인트도 볼만한 요소라고 말한다. 확실히 흥겹고 힙(hip)한 홍보영상이라는 것에 나 역시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상을 보면서 떠오른 영상이 있었다. 관련 기사에서도 종종 비교 언급되기도 했던 2016년 '아라리요 평창' 온라인 이벤트 홍보영상이다. 흥겨운 리듬과 댄스, B급 감성의 요소를 착용했다는 점은 동일한데, 왜 한국관광공사 영상은 가능했고, 아라리요 평창은 불가능했던 걸까?
공기업의 B급은 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타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영상 제작 비하인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멘트이다. 내 기억으로는 한 7~8년 전, 우리에게 소위 병맛이라 불리는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웹툰에서부터 시작했던 이 트렌드는 언제가부터 'B급 감성(문화)'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문학, 광고, 영상, 영화, 드라마 등 그 의미와 범주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의 콘텐츠에도 이 B급 감성의 콘텐츠를 종종 선보이곤 한다.
당시, '아라리요 평창'도 B급 감성으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참고 삼아, 단순하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B급 감성의 콘텐츠를 만들어 확산해보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흥겨운 리듬의 아리랑과 K-POP 인기가수, 그리고 평창 주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겨운 댄스와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 온갖 B급 감성요소를 담아 놓았다. 하지만 제작자 의도와는 다르게 국내 누리꾼들의 온갖 질타와 비난을 맞으며 사라져야만 했다.
한국관광공사와 아리리요 평창의 기본 재료는 유사하다. 'B급 감성' , '재미/중독성', '한국의 흥을 느낄 수 있는 댄스와 음악' , '한국 주요 관광지'가 기본 구성 재료다. 이 동일한 기본 재료를 가지고, 누가, 어떻게, 무슨 스토리로 엮어 냈느냐의 차이에 따라 호감과 비호감으로 갈렸다. (시대적 트렌드의 흐름은 좀 다른 논외 문제고...)
관광공사 홍보 영상의 고민의 시작은 기존 빅모델을 앞세운 전형적인 영상에서 탈피하면서도 'B+급'의 콘셉트이라고 한다. 어떤 성공사례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고민의 시작이 '아라리요 평창'과는 다른 첫 번째 요소라 생각한다.
두 번째 다른 요소는 스토리의 유무이다. 아무리 흥겨운 리듬의 뮤직비디오라도 3분 내외라는 시간 동안 어떤 맥락으로 내용을 전달하느냐도 중요한 요소이다. 관광공사나 아라리요 평창 모두 대단한 서사 스토리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관광공사 홍보영상의 경우 각 편마다 지역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과 디테일한 연출의 차이를 갖고 있는 반면, '아리리요 평창' 에는 흥겨움과 우스꽝스러움만 강조되어 있을 뿐이다. 혹자는 관광공사 영상에도 어떠한 맥락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빅모델이 부르는 K-POP 스러운 아리랑과 언더그라운드 퓨전 판소리 밴드가 부르는 범 내려온다 는 청중들에게 다른 감성을 전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최근 B급 감성의 공공기관 콘텐츠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가장 인기 있는 공무원 '충주시 홍보맨'이 만드는 충주시 페이스북, 유튜브 콘텐츠 경우도 B급 감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있다. 반면, 이런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나름 트렌디한 B급 감성 콘텐츠를 만들어 보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인 콘텐츠들도 수두룩 하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분명 B급 감성의 콘텐츠도 단순 자극이나 재미적 요소를 넘어, 나름의 맥락과 감성 퀄리티를 갖고 있다는 거다. 솔직히 그게 어떤 거라고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다만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브랜드의 명확한 콘셉트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만을 잊지 않는다면 호감과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