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쉬는 날 무얼 할지와 같은 가벼운 선택부터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정답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그렇게 고심 끝에 내린 모든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면 좋겠지만, 때론 아리송한 결과에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에 만족한 순간도 있었지만, 아쉬움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땐, 내 선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스스로 하는 선택보다 어른들의 의한 결정도 많았고, 다른 조건들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중요했기에 모든 결정이 쉬었다. 그러다 스무 살 무렵부터 목표가 생기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모든 선택이 신중해졌다. 대학, 편입, 취업, 이직, 연애, 결혼 등등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점점 늘어 갔고, 나는 재고, 따지고, 되물으며 가장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하려 했다.
'지금 이직하는 게 맞을까?', '기회가 또 오지 않을까?', '1년 놀아도 뒤쳐지진 않겠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데, 그냥 갈까?'...
마흔이 넘으면 선택이 수월해질 줄 알았다. 그동안의 경험치가 있으니까 막연한 상상이 아닌, 현실을 고려한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선택이 어렵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 선택이 가진 무게감을 잘 알기에 더욱 망설인다.
그나마 한 가지 깨달은 건 정답은 없다는 거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분명한 이유가 있기에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지, 옳은 선택이었냐는 결과론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막막해질 때면,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아직 후회하긴 일러'를 주문처럼 되뇌며 현재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거칠고 힘들다. 40대라는 나이에서 오는 적당한 노련미는 되는 이유 보다,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다. 그 노련미를 이겨내기에 내 열정의 불씨는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폭이 왜 좁아지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정답 없는 선택이지만, 정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를 보낸다.
먼 훗날, 오늘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부디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