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 -네이버 소개-
어느 날 부터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에 양자역학이 보이길래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중요한 거였다니 별 관심없던 양자역학이 우리 생활속 어디에나 있었다는 건 충격이었다.
부족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근 100년의 역사는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세상이다. 전자라는 용어가 들어간 모든 것 (예: 삼성전자, 전자렌지, 전자계산기 등 ) , 노트북이며 스마트폰, 당장에라도 사라지면 혼란을 주는 것들 중 거의 모든 발명품에 전자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전자의 발견과 이용이 양자역학에서 시작된다.
양자역학의 시작에는 모든것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암울한 현실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견고했던 세상의 질서, 지금까지의 규칙들, 법칙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들 속에서 현대미술도 출현하고 양자역학도 탄생했다고.
(오펜하이머의 시작에 피카소의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을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카소의 경우, 전통 서양화가들이 한 찰나에 한 앵글에서 바라본 세상을 묘사한 것과 달리, 여러 순간에 걸쳐 여러 앵글에서 바라본 세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큐비즘 회화를 창시했다고 한다. )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저 피카소의 작품이 궁금해 검색했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식의 향연에 포기하고 말았다. 요즘은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찾아보면 투머치하게 알려주는 시대라는걸 다시한번 깨달으며,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영화인가? 역사영화인가? 이 질문의 답은 중첩된다. 과학영화가 될 수도 있고, 역사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내 생각만 있을 뿐.
내가 이 영화에서 과학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면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의 이론들, 그리고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되는거고, 직업이 정치인이거나 그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청문회를 통한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음모에 관한 부분을 생각하면 되고, 역사가 궁금했다면 제 2차 세계대전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역사는 고전역학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전 역학도 이번에 알았다.)
고전역학은 어떤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당구를 칠때 내가 같은 속도와 각도로 물리적인 힘을 주면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온다. 변수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것도 물리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다는 원리? 1+1 = 2 라는 결과가 나와야하는데 1+1 = 3이 될 수도 4가 될 수도 있다는? 물론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의 이야기는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아주 작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까지 과학이 들어간 영화라고 한다면? 오펜하이머의 고민이 나오는 부분은 인문학의 관점이다. 자신이 주도하는 이 거대 프로젝트의 결과를 예상하는 장면,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오펜하이머가 되어 멈추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열광하는 대중들 앞에서 연설은 자기 스스로도 속이는 연극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대통령을 찾아가 더이상 핵개발은 안된다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이용가치가 끝난 개가 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지난 역사를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 때의 상황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역사 영화가 된다.
오펜하이머 관람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역사에 대한 정리가 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