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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소장 Nov 29. 2023

4. 세종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조선 왕에 관한 27가지 궁금증 4.

- 조선의 왕이 된 세종     


 어린 시절부터 세종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서 건강을 해칠까 걱정한 태종이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릴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세종이었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던 세종은 취미로 시작한 악기도 수준급으로 다루고 한 번 파기 시작하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다고 하니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했던 인물이었죠. 그런 세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책 속의 세상처럼 완벽하지 못했죠.      


 태종은 세종이 왕이 되자마자 정치의 잔인함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도왔죠.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지만, 태조부터 태종까지 정치적인 사건이 워낙 많아 혼란했습니다. 게다가 가뭄이 들어 농사가 잘되지 않고 흉년이 계속되니 백성들은 힘들어할 수밖에 없었고 세종이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았습니다.    

  

 세종은 우선 경연을 통해 신하들과 토론 하며 국가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했습니다. 태조는 물론 태종도 경연을 싫어했지만 (정종은 더 싫어했겠죠?) 세종은 경연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워낙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에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도 좋아하던 세종은 신하들과 의견을 나누며 결정하는 것을 즐길 수 있었죠. 원래 경연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지만 세종은 학자들과 실무진 삼정승까지 모두 모여 아이디어를 내면 바로 실행시킬 수 있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늘 아이디어가 넘치던 세종에게 의견을 적당한 선에서 정리해 주는 황희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죠. 세종실록에 ‘황희 말대로 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고 하네요.     

 -현명한 사람들이 모인 곳, 집현전   

  

 세종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집현전인데요. 집현전은 학자양성과 학문 연구를 위한 기관으로 가장 중요한 업무는 경연과 서연이었다고 합니다. 경연은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왕과 신하가 만나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자리로 국왕이 유교적 교양을 쌓도록 하여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고, 서연은 왕이 될 세자를 교육하는 것으로 조선의 왕이 되려면 평생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집현전에 있는 학사들은 얼마나 똑똑해야 했을까요?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만으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집현전에 들어온 사람들은 과거 합격자 중 평균적으로 5등 안에 들었다고 하니 상위 1% 천재들이 모였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여 열린 마음으로 백성을 위한 정책들을 편다면 얼마나 뛰어난 성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세종 시대 눈부신 발전은 집현전에서 나온 아이디어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겁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궁금한 것 생기면 자료조사를 명령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하죠. 한 번 맘에 들면 끝까지 인재를 활용하는 성격 때문에 집현전 근무 기간은 끝이 없었죠. 세종은 재위 기간 내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래서 너무하다 싶었는지 휴식을 취하며 자유롭게 공부하라고 경치 좋은 곳에서 쉬면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제도도 만들고(사가독서제) 세종이 아끼던 귀한 귤도 나눠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함께했죠.     



-세종의 업적   

  

 세종은 왕이 되자마자 할 일이 많았습니다. 조선 건국부터 시작된 조선의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정도전이 초안을 쓴 조선경국전이라는 법전은 세종대에도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시간이 걸렸고 사회변화로 새로운 내용이 추가 되어야 해서 세조 때 수정작업을 거쳐 성종 때 완성되죠.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그렇게 장기적인 프로젝트 사업이었습니다. 세종대에 완성된 것들만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능력 있는 인재들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내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세종 시대에는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책 연도표를 보면 세종, 문종 시대 과학, 경제(농업), 의학, 역사, 지리, 외교 등 대부분의 일들이 정리되어 조선을 성장시켰습니다. 이때 시작한 일들이 후대에 완성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세종을 대표하는 두 가지 장기 프로젝트를 이야기해 보자면 천문 사업과 한글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천문 사업은 굉장히 위험한 분야였습니다. 당시 명나라를 사대하고 있었던 조선은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천문 분야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일을 추진했습니다. 중국에서 받아오던 달력은 조선에서 그 정확도를 갖출 수 없었죠. 그래서 한양을 기준으로 한 달력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늘을 관측해야 하니 혼천의 간의 같은 천문 관측 기구들이 필요했죠. 중국은 이 기구들이 있었지만, 황제만이 알아야 하는 하늘의 비밀을 조선이 알게 도와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영실이 중국에서 몰래 천문 기기들을 보고 와서 제작에 도움을 주게 되는 거죠. 중국이 문제 삼으면 일을 추진할 수 없기에 세종은 명나라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천문 기기와 수학 등 연구를 통해 정확한 측정을 하고 만들어 낸 것이 <칠정산 내, 외편>이라는 달력이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 책이 나왔을 때 우주센터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프로젝트를 성공한 것과 같은 기쁨을 나누었겠죠. 대단한 기술력을 보여준 책입니다.      


 세종이 주도하여 만들어 낸 시계들도 특별합니다.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이 아니라 조선의 백성들에게 루틴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24절기를 나눈 것도 때를 알려주어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꽃이 피고 하면서 각 시기에 해야 하는 일들을 정해놓아 농업 생산력의 향상을 이루어 내려고 했습니다.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질문합니다. 그건 농사를 잘 짓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비법을 담은 책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배포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죠. 그리고 전국에 있는 농부들을 찾아가 조사하고 기록하고 책으로 만들어 내는데 이 책이 바로 조선의 베스트셀러 <농사직설>입니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며 토지조사를 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다 보니 어느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어느 지역은 땅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와서 풍년이 들 때와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세종은 세금을 정확하게 걷을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경연을 통해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전국에 수령들을 만나 또 소통하고 백성들을 만나 소통하며 만들어 낸 것이 <공법>입니다. 토지의 비옥도와 풍흉을 나누어 세금을 걷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17만 명의 농민을 대상으로 최초의 여론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죠. 참고로 세종의 아들 문종이 아이디어를 낸 측우기는 전국에 설치되어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게 됩니다. 그저 까만 통이 아니라 규격에 맞는 통과 수치를 재는 자가 필요해 도량형의 통일을 이루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세종이 한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토속어는 한자로 표현하기 어려워 음을 빌려 사용해야 하는데, 실용적인 책을 만들려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책을 백성들이 읽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죠. 그래서 우리 말을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밖에도 농사를 지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합니다. 당시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산모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도록 출산 휴가를 주고 남편이 옆에서 산후조리를 도와줄 수 있도록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는 제도, 소아산부인과 의학 서적 제작, 의학 분야에 또 관심을 가지니 중국 서적으로는 중국에서 나는 약초를 구하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초를 연구하게 하는 등 셀 수 없는 업적들을 남기셨죠. 기본 정책이 백성을 위한 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돌아가셨죠. 하지만 세종이 만들어 놓은 이 좋은 시스템들은 안타깝게도 계속 유지되지는 못합니다. 유지가 되었더라면 이후 조선은 더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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