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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소장 Jan 10. 2024

토지를 다시 읽는 이유는

토지가 마지막 생명인 것만 같아서

토지 1부 1권의 시작은 1897년의 한가위 마을 풍경이다.


역사 시간에 배우는 1897년은 강화도 조약(1876년)으로 시작해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운동(1894) 청일전쟁(1894~1895)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 선포(1897) 까지 휘몰아 치는 격동기지만,


토지의 시작은 풍년은 아니어도 평작은 되는 넉넉한 풍경의 평사리 모습이다.


떡을 집어 달아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 분주하게 몸단장을 하고 굿을 보러 나갈 준비를 하는 아낙들, 타작마당에서 노는 남정네들 ( 목청 높어 소리하는 서금돌, 두만아비, 봉기, 영팔, 마을에서 제일 멋진 남자 용이) , 그리고 신난 마을 사람들과 대비되는 적막한 집 싸늘한 표정의 최치수, 최치수에게 식사 하실건지 물으러 온 귀녀는 최치수에게 가기 전 거울을 보고 다시 나와 거울을 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별당아씨, 그리고 더 생각이 많아 보이는 구천이는 산으로 올라간다.


달이 뜨고 달집을 태우고 강가에서 부르는 처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줄어들면 근심을 잊을 수 있었던 하루가 끝나가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미라클 모닝과 미라클 루틴이 없어도 새벽에 일어나야했고 매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힘든 삶이지만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토지 1권 28p>


토지의 배경이 되는 지리산은 가난하고 핍박받던 사람들을 안아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살만한 사람들에 의해 신음하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다.


박경리 작가는 2001년 서문에 이런 표현을 하셨다.


<어디 지리산뿐일까마는 산짐승들이 숨어서 쉬어볼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식물, 떠나버린 생명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생명수는 썩어가고 있다 한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백팔 번뇌, 끝이 없구나>


토지에 빠져 있던 1년의 시간, 하루 2장씩은 읽어야 겠다는 목표로만 달리던 , 루틴을 깨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결국 토지를 완독했다. 그러나 아직 토지를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찾는다는건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진실을 찾아보고 싶다.


어쩌면 사라져가는 인간의  생명, 정신들이 토지에 남아있는것만 같아서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하는건 최적의 효율이겠지만, 그래서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21세기 노트북이 나의 일을 편하게 하고, 청소기와 세탁기는 살림을 쉽게하고, 쿠팡은 필요한 것을 눈앞에 가져다 주지만, 우리는 저 가난하고 핍박받던 사람들보다 행복해졌을까?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진 우리는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보다 덜 서러워졌을까? 덜 아파졌을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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