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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苦海), 당신의 복원력(復原力)은?>

영화 아노라 리뷰

by 윈디박

<인생은 고해(苦海), 당신의 복원력(復原力)은 작동하는가>-영화 '아노라'


올해 어엿한 대학생이 된 외동아들의 지난 폭풍 같은 세월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 시절 가끔 아비로서 위로한답시고 글을 써서 보냈는데 지금 봐도 시답지 않다. 칸느와 오스카를 석권, 세상 핫한 '아노라'를 뒤늦게 보고 갑자기 아들에게 보낸 그 시답지 않은 글들 중 하나가 생각이 났다.



"복원력(復原力). 다시 돌아오는 힘. 상처를 입더라도 유난히 빨리 회복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 **가 '복원력'이 강한 사람이 됐으면 해요 '인생은 고해(苦海)'란 말이 불경에 있어 한편으로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인듯하지만 인생은 그래서 더 값진 거야 아픔을 딛고, 상처를 치유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 인간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이러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다시 돌아와서' 삶을 살아가는 거야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일상을 사는 사람은 그래서 숭고하다고 생각해"



이 걸출한 '소동극'이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늘 높이 치솟았다 '수직낙하'하고 마는 씁쓸한 '아노라'의 '세드엔딩 신데렐라 스토리'인 것일까.

'삶'이란 일견 끝내 공평해서 '고통'의 파도는 '러시아 재벌가'에도 '성(sex) 노동자'에게도 어김없는 '의식'이자 '절차'이다. 인생이란 결국 '상처'와 '치유'의 '유한반복'일터 그래서 잔인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복원력(復原力)'의 이야기로 봤다. 철딱서니란 찾아볼 수 없는 재벌 2세 '반야'를 찾는 '애니(아노라)'를 비롯한 '낮은 자'들의 '로드무비 형식의 좌충우돌 추적기'는 바로 '상처를 치유하는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결국 '애니'가 아닌 '아노라'로서 '눈이 돌아가는 짜릿한 재력의 애인과 그 가족'이 아닌 허술하지만 삶에 진심이고 열성인 '낮은 자'들의 '연대'와 '공감'으로 살아나가야 할 힘을 얻는다.



'인생의 복원력'이 돈이나 권력으로 키워질까? 세속적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아빠의 '자기변명'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희망이라도 품지 않고 어떻게 이 끝도 없는 '고통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어떠신가. "당신의 복원력"은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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