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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현실에도 오직 희망은 사랑’

영화 미키 17에 대하여

by 윈디박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참으로 이상한 영화다.

뻔하면서도 기발하고, 유치할 정도로 우스꽝스럽지만, 먹먹할 정도로 가슴 아픈 슬픔이 있다.


서늘하고 잔혹한 미래 사회의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지지만 영화의 톤은 시종일관 시끄럽게 번잡한

SF 코미디의 얼개를 갖춘 ’ 소동극‘이기에 가슴을 졸이거나 눈살을 찌푸릴 필요가 없다.


1억 18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700억이 넘게 제작비가 투입된 블럭버스터급 SF 영화임에도

화려함이랑 거리가 먼 ’가장 SF 영화 답지 않은 SF영화‘이다. 물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SF 장르의 외피를 둘렀지만 이 영화는 봉준호감독의 말처럼 ’ 발냄새나는 SF 영화‘, 즉 피와 살로 이루어진

’ 사람의 이야기‘이며, ’ 반복되는 죽음의 고통‘도 견뎌낼 수 있는 ’ 사랑의 이야기‘이다.


미키 17이 또한 이상한 영화인 것은 전혀 예기치 않게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소위 보는 이의 ’ 감정선‘을 건드리게 하려면 일종의 드라마적인 ’ 빌드업‘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훅 들어와 마음을 휘젓는 신이 있었다.

나샤의 회상신, 반복되는 미키의 죽음에 대한 나샤의 행동을 보여주는 바로 그 장면,

마치 나의 최애 드라마 ’ 나의 아저씨‘에서 어김없이 나를 즙 짜기 만들었던 아이유의 가슴 저린 대사,

”아저씨가 행복하길 바랐어요 “가 나오는 장면과 동일한 질감으로 덮쳐왔다. 이상한 영화다.


나는 다시 한번 이 곰의 체형을 가진(죄송^^) 여우 아저씨 감독에게 기생충의 지하 비밀방과는 또 다른 결로

한 방을 맞고 말았다. 봉준호의 번득이는 재기는 어디로 갔나 하는 일부의 평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거대 시스템에도 주눅 들지 않고 능청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하고 있는

봉감독의 영화는 이미 하나의 장르임은 틀림없다.


이상하고 기묘하며 냉소적이지만 가끔은 따스한, 그의 땀냄새, 발냄새나는 영화를 나는 팬으로서

언제나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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