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를 보면 누구라도 부끄럽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변론종결 후 한 달이 넘도록 탄핵 심판의 선고가 지연되자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관들을 의심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헌재재판관들에
대한 '지라시'에 한숨을 쉬고 역정을 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헌법재판소 마저 상식을 저버리고
민의를 외면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설마. 그럴 리 없을 거야.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명확한 헌법유린의 현장들을 시청했고,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송두리째 뒤흔든 내란의 증거들이 명백히 증명된,
이렇게 간단하고 투명한 사안에 대한 선고의 결론이 달라질 정도로
우리나라가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야.
아직은 우리에게 다시 되돌릴 기회가 남아 있을 거야.'
온라인 포털의 한 줄 기사 제목에, 자극적인 내용으로 어지러운 쇼츠 영상 하나에,
일희일비를 거듭하고 희망과 절망의 감정이 널을 뛰는 시간들이 마침표 없이 휘발됐다.
38일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심지어 내란수괴가 백주 대낮에 풀려나는 참담한 모습까지 목도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파면 인용'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과를 예상함에도
뭔가 꺼림칙한 한 줌 의심이 들었던 이유는 이번 '내란사태'를 통해 너무도 충격적인
소위 '엘리트층'의 민낯을 여실히 목격했기 때문 아닐까.
결국은 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에 불과한 그들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지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은 '파면'되었다.
지금까지도 이 당연한 결론을 도출한 헌재재판관들에게 필자는 감사할 마음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판결이 지연된 이유에 대한 '리얼 스토리'를 그들로부터 듣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만약 8인의 재판관 중 문형배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필자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고, 불면의 밤은 더 길었을 것이다.
문형배재판관이 유독 훌륭해서거나(물론 도덕성면에서 비할 공직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혹은
'좌고우면'하는 일부 재판관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문형배 재판관이 바로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
선생의 가르침을 평생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문형배 재판관이 적어도 '사회에 지대한 해를 끼치는' 행위에
가담할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내게 있었다.
김장하 선생은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지표로 삼는, 나이 많은 어른을 수시로 울컥하게 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있는 '어른 김장하'는 원래 2022년 연말, 경남 MBC에서 제작한
2회분의 인물 다큐멘터리 제작물이 '원본'이다. 지역 방송국 자체제작 프로그램으로선 이례적인 화제를 모으다 이듬해 초에는 전국에 방영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23년 59회 백상예술대상 교양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 이후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 공개까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김장하'선생을 알게 되었고, 본인이 그렇게나
원치 않던 나름의 '유명세'도 겪고 있으신 걸로 알고 있다.
필자는 '어른 김장하'를 처음 본 후 극영화와는 결이 다른 '전율의 감동'을 느꼈다.
1944년생, 팔순을 바라보는 경상도 남성이 어떻게 젊은 시절부터 시종일관 혁신적이고 박애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
아무 조건 없는 수많은 선행에 숙연해지는 것은 물론, 선생이 일평생 지역 사회에서 수행해 온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역할과 기여의 여정은 가히 '성인(聖人)'의 수준이다.
비현실적이고 어찌 인간이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초인간적'인 행위의 궤적이 줄을 이루지만
일체의 가공과 작위가 허용되지 않은 그의 얼굴과 몸짓을 보니 또 이해가 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만다.
이미 '어른 김장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적시한 많은 글들이 있기에 필자에게 특히 감동과 울림을 주었던 장면들만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무주상보시의 실천
선생의 70년 지기, 최관경 부산교대 명예교수는 김장하 선생이야말로 '무주상보시(無主相俌施)',
즉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것'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20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었고, 그 당시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사학 명신 고등학교는 기반을 잡자마자 국가에 헌납했다.
평생 자신의 사업이었던 '남성 한약방'의 운영을 종료할 때도 무려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국립경상대에 기부했다.
선생의 지원은 교육은 물론이고 사회, 문화, 역사, 예술, 여성, 노동, 인권 등 수많은 영역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선행'에도 선생은 자신의 베풂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도움을 받은 사람과 단체는 줄을 섰는데
정작 베푼 사람은 보이지 않는 기현상이 무려 50여 년 동안 이어진다.
기가 막힌 일이다. 경외와 감탄과 존경의 의미로 말이다.
2.'김장하 키즈'에 대한 무한 애정
앞서 언급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김장하 선생은 1,000명이 넘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사회 각계에서 많은 '김장하키즈'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의 선행에 대한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선생도 '김장하키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장학생들과의 에피소드 중에 일본 사이타마대학교의 우종원 경제학부 교수에 대한 일화가 감동적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는 너 같은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
우교수가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던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며 좀처럼 농을 하지 않는 선생이 제자에게 건넨 말은 이렇다. "그래서 내가 점수를 주자면 종원이를 더 줬지."
장학금을 받고도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는 이제 중년이 된 '김장하 키즈'에게는
"난 한 번도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 적이 없어.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것이야."
주책없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돈다. 선생은 도대체 어찌 이렇게 다 큰 어른들을 울리시나.
3. 험담과 위협에 대한 선생만의 대처법
시청하는 내내 시종일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던 영화에서 단 한번 필자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었다. 익명의 상대가 전화로 내뱉는 비난과 저주의 말에 정말 '살의'를 느낄 정도로 화가 났었다.
일생의 선행의 궤적을 왜곡하고 시기하는 세력이 왜 그동안 없었으랴.
말도 안 되는 험담과 협박, 저열한 위협에도 선생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세월이 증명할 것이다.' 이 짧은 언급 말고는.
선생 앞에선 누구나 부끄럽다.
최근 다시 화제가 되는 '어른 김장하'에 대해 간단한 글을 SNS에 올렸더니 다음과 같은
댓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마음과 신념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걸 영화 보고 알게 되었어요.
김장하 선생님 같은 분으로 인해 곳곳에 민들레 꽃이 피고 또 바람에 날아 곳곳에 퍼지고.
존경합니다.'
선생의 삶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지표가 되는 참 어른, '어른이 부재'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 같은 분이 아니겠는가.
이 분을 닮고 싶은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실제로 비슷한 삶을 추구하는 훌륭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감히 이 어른의 삶을.
혹자는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의 동향을 분석하며 특히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었던 문형배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란 점을 언급했다.
선생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는 문형배소장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