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
일경험 청년 오후조 퇴근을 한 후 사무실에 앉았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갑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도 이 시간 즈음 아무도 없는 자리에 앉아 하루 정리를 하고 퇴근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청년 일경험을 돕는 일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평책빵을 운영하면서 해보고 싶었으나 못해봤던 일을 하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인데, 10여 년간 사무실 없는 삶에서 이렇게 좋은 사무실 내 자리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퇴근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불을 끄고 경비를 걸고 나서는데 그냥 고마워서 눈물이 막 났습니다.저의 예정된 사흘의 시작이었습니다.
토요일,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창진 아뽈레오 신부님 아버님의 조문을 갔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12호실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신부님은 금세 나를 알아보시고 "수나야" 불렀습니다.
마침 연도가 시작되어 함께 연도도 바쳤고, 조문 오시는 신부님들께서 바치는 미사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미사를 2대 받칠 수 있었는데 미사 도중 15년 전 이창진 신부님을 통해 받은 예수님 사랑이 끊임없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94세로 선종하신 이창진 신부님의 아버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아드님을 사제로 봉헌하셔서 교회에 헌신하시게 하셨고, 그로 인해 도움 받은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2008년 5월 미사 복음에서 "나는 너를 친구로 불렀다"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은 제가 반포에 살 때 걸어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당시 자원봉사실 수녀님이 배정한 중환자실에서 봉사할 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보호자도 면회를 마음대로 못하는 곳에서 간호사와 함께 침대 배드를 갈고 소독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망해서 배드가 빠져나가는 것도 보았던 힘든 곳에서 도서휴게실 봉사로 바뀌었을 때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책정리를 하고 소독을 하며 환자들에게 차를 봉사하고 도서를 대출해 주었습니다. 수술 전에 마음이 불안해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냐고 묻는 분들에게 책을 골라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곳이기도 해서 많은 추억을 돌이켰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옛 교수신부님과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제의 삶이 얼마나 큰 희생과 인내의 삶인지 마음이 아플 정도로 전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뭔가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작은 봉사를 하나 약속했습니다. 오래전 봉사했던 장소 탓(덕?)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일요일, 대한극장으로 책 <비극의 탄생>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첫 변론>을 보러 갔습니다.
충무로역에서 내리면 가까운 곳을 명동성당 가는 습관이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갔습니다. 이선희 님이 반겨주셨고 이승우 님이 표를 주기로 해서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데 이선희 님이 정철승변호사님 오셨다고 알려줬습니다. 표를 받으러 갔더니 이승우 님도 정철승 변호사님 저기 오셨다고 알려줬습니다. 아... 사람들은 정철승 변호사님이 한평책빵에 보내준 응원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님을 찾아 반갑게 인사하고 꼭 그래야만 할 것처럼 저도 사진 촬영을 요청하고 찍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몇 번 울분이 토해지려는 것을 잘 참았습니다.
그 엄숙한 얼굴들.
박원순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
단체 연대라는 말에는 가슴속 깊은 곳의 응어리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제 경험을 꺼내서 이들의 패턴을 대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지만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님을 더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삭힙니다.
생전에는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던 사람.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큰 동요 없었으나
평소 좋아했던 이귀보 님의 제안으로 북토크를 하기로 해서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은 후 기사를 찾아 읽었고 의문에 의문을 가졌으며
이 책 저책 찾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이상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면서도 이상하게 사회를 비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까지도 박원순 시장 관련 책을 찾아 읽던 중
<박원순을 기억하다>의 이강백 대표님 글을 읽으며 이미 의문에서 비통으로 바뀌어 있는 제 자신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났고 저는 확실한 제 자신을 알았습니다.
이런 좋은 사람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숙한 얼굴로 잘 들으면 말도 아닌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싫어했던 박원순.
그렇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이제라도 간접적으로 알게 되어 가까워진 박원순.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이 영화관을 오면서 흘린 땀보다는 적지만
2023년 8월 6일 박원순시장을 제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오늘 월요일 오전, 마곡수명산성당으로 이창진신부님 아버님 장례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미사를 드리며 삶과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삶의 의미를 못 찾아 헤매면서 겉만 멀쩡하게 다닐 때 저의 기도는 "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이제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입니다. 남은 인생은 나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꿈꾸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지금까지 잘 버티며 살게 해 준 모든 고마운 분들께 저 이렇게 잘 살다 간다고 기쁘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미사가 끝나고 운구차가 떠날 때까지 양산을 들고 서있었습니다. 고인 덕분에 제가 이창진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사하고 있는데 창문이 열리고 신부님이 "수나야"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앞으로의 15년도 다시 힘내서 살라고 온 가족의 슬픔 위로 저에게 격려를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혁신파크로 돌아오는 길에 시야 넓게 보이는 하늘과 구름이 드높았습니다.
그곳 어디에서 함께 만날 날 저를 알아봐 주세요.
이권재 이냐시오 아버님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아드님이신 이창진 신부님을 사제로 봉헌해 주셔서 제 영혼이 살았습니다.
박원순 시장님, 생전에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접한 서울혁신파크만 보고 시장님을 싫어해서 죄송했습니다. 책과 자연으로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은평구 불광동 성당에 주 1회 다니다가 그만 진관동으로 집을 이사해 버린 일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를 가보라고 한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왔던 이곳에서 시민단체 출신도 사회적 경제인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애써보려다가 너무 힘들어서 당신을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경험도 감사한 마음으로 손병관 기자 북토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살아서의 만남만이 인연이 아닙니다. 책 속 주인공을 만나도 제겐 큰 인연이듯 시장님 사후에 생긴 인연도 저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다른 곳에서 한평책빵을 시작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사회적 우정터 한평책빵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늘과 땅의 영혼의 통공을.
그러니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고개를 우로 돌리면 푸르른 큰 나무와 바람이 불어오는 곳입니다.
이제 불 끄고 문 닫고 퇴근하려고 합니다.
바람결에 보냅니다. 저의 이런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