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
내 마음의 불씨를 키워준 작가 북토크
8월 마무리하는 일로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돌아오는 밤의 운전길이 힘들 것 같아 여행답게 걷기로 했다.
대화역까지 가서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날씨는 바람도 불고 이미 가을 기운이 내 팔뚝에 왔으니 문제없었다.
책방에 도착한 뜨거운 책들을 정리하고 아무도 올 것 같지 않는 여전한 책방을 뒤로한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하면 올 사람은 다 오는 책방이다고 눈을 치켜뜬다.
걸어가는 길은 좋았다.
출발 전 40분이 넘도록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것이 문제였다.
심학산 산길로 접어들면서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방전되기 전 지도를 눈여겨보았고 2.8km 남은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러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갔다. 산속에서 사람 한 명을 만났기에 알게 되었다.
걷는 동안 참 좋았다. 여행이 이런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대화역에 내려 걸어오는 길은 평화누리길, 그리고 산은 심학산 둘레길.
문제는 계속 둘레둘레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을 얼른 따라잡았고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다.
나는 반대로 걸었던 것이다. 점점 멀어지기 위해 걷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게 여행이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마음은 잠시 까마득하다.
뒤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가 재빨리 돌아가서 말했다.
아무래도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서 차를 타고 가야겠다고 했고 같이 걸었다.
그런데 본인도 늘 다니던 길로 안 가고 한 번 새로운 길로 가보자고 이쪽으로 왔는데 나가는 길이 안 나와서 계속 걷는 중이라고 한다. 마침 어떤 남자분이 오길래 물었다.
그분 말로는 가던 길로 계속 가면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 있다고 한다.
이미 땀범벅으로 나쁜 세포가 분해되는 기분이었기에 상관없이 기분은 상쾌하고 머리는 맑았다.
계속 중얼거렸다. 이게 여행이지.
혼자 되돌아가는 길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나는 망하는 책방을 하고 살았고 지금 다른 책방에 가는 것이다고 말하면서 책 이야기를 했다. 북토크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상황이 안된다고 했다.
내가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 걸으며 처음 방향을 잘못 잡았던 갈림길까지 나오니 정말 가까웠던 길을 두고 왼쪽으로 걸으며 목적지를 스스로 멀리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재밌었다.
분기점에서 헤어지면 또 가는 길을 못 찾으니 도로를 만나고자 그분이 나가는 방향을 따라나섰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 길. 이 길 따라가다가 택시 오면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 바로 이곳은 차도 안 오고 콜택시를 불러도 안 오는 곳이라고 집이 10분 정도 걸으면 되니 같이 가서 차를 타고 데려다준다고 했다.
아파트 앞에서 차를 기다리며 음료를 두 병 사고 기다렸다. 책방까지 데려다줬다.
북토크 장소는 내게만 너무 추웠다. 이렇게 시원해야 하는데... 가장 뒤에서 사람들에 가려 목소리만 듣다가 책방을 둘러보기도 하고 실내 안에 있는 넓고 쾌적한 화장실을 부러워하면서 북토크 소리에 집중했다. 마이크가 있으니 자리에 없어도 들리는 거다. 나는 마이크 없다.
'책은 그립감이다. 물성까지 책이고 책은 예술이다' 종이책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음성에 동의가 되었고 박수를 크게 쳤다. 나도 그렇다. 책을 만지며 밀려오는 내 마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쓸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인을 받는 시간에 먼저 나왔다. 내 몸의 땀이 말랐고 어떤 냄새를 갖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를 드러내기가 어려웠고 그러려면 가까이 가서 냄새를 옮길 수 있기에 돌아섰다.
유리창으로 보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8월을 하루 남긴 마무리 여행까지. 2024년 8월의 여름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어떻게 살든 내 인생 색칠하는 것 아닌가?
한 권의 책,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살았고 한 사람으로 인해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