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처치 응급센터였던 곳

by 윈디

2024년은 내가 가톨릭 교회를 떠난 일이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다.

교회를 떠난 것을 신앙을 버렸다와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라는 견고한 체제를 떠나지 않고 내가 신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바로 여기 이 가슴속에 있는 신을 말이다.


내가 다녔던 성당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2023년 12월 2일 오픈강연을 토요일에 하고 12월 3일 대림 1주 첫 미사에 나간 것으로 기도를 중심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성당을 책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응급센터라고 생각했다.

은둔고립청년 일경험을 지속하고 싶었던 마음도 이 쪽 공간을 얻은 이유였기 때문에 하느님 중심의 삼각구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다. 교회가 교회 밖으로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강론 말씀이 너무 훌륭했다. 매일미사를 나가게 되었다.

말씀의 은사가 특별했고 그렇게 대립절을 보내며 성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항상 그랬듯이 성직자 수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신부님께 개인적인 소개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더 큰 빚을 지게 됐지만 책방은 아무리 잘된다고 해도 임대료 건지고 밥만 먹고살면 다행인 곳이다.

그럼에도 난 선교사라는 내 깊은 정체성을 위해 살고 싶었다. 자력으로 활동하는 문화기반의 가톨릭 교회 선교사. 이를 위해 내 3,40대를 살아왔었다.

숲해설가. 독서지도사. 교리신학원. 걷기와 기도. 이 모든 것은 가톨릭이 전하는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도구였을 뿐이었다. 특히 냉담신자를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새 신자는 깨끗한 도화지에 하느님의 빛깔을 그려갈 수 있지만 어쩌다 발길이 멈춘 신자를 다시 하느님 곁으로 온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오늘 그날의 아픔 후 3개월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 아픔이 살아난다.

상처받은 게 아니라 깨달았다고 나를 추스르던 그 마음을 이제는 나에게 털어놓는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매정하게 찔려서 아무 말도 못 하게 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감히 신부님에게 따지질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나의 상처를 털어놓는다.


예비신자환영식 미사에 송이가 왔다.

송이는 책방 오픈할 때부터 일주일에 3번씩 왔었고 4월 13일까지 근무하고 떠났다.

떠난 지 한 달 정도 지나 그냥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에 온다고 했고 교리공부하는 날과 동일해서 이왕 오는 거 천주교 교리를 받아보라고 했다.

텃밭에 야채가 수확되는 계절이라 책방에서 놀다가 샐러드로 저녁을 대신하고 성당엘 가면 된다고 했다.

송이는 그렇게 해서 성당에 예비자등록을 하게 됐다.


송이는 은둔고립청년 일경험 사업에서 만난 청년이다.

사람에에 대해 이해를 넓혀준 계기였다.

팔팔한 나이에 게임에 빠져있고 우울증 약 없이는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청년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생활 습관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접하면 접할수록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송이는 아주 특별한 기억이 있다.


카페에서 근무조일 때 갑자기 사라졌다고 당시 매니저가 연락을 했다.

같은 조 청년도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근무하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해가 안 됐다.

함께 하기 시작한 지 2주째 일이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리한 다음 날 엄마의 연락으로 꼭 지속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후로 관심을 두고 특별하게 지켜보던 청년이다.


다른 많은 것을 시키지 않았다.

일경험 하는 동안 목소리를 키워서 인사만 잘하게 만들었다.

밝게 인사하고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는 연습.

이거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실제로 너무 잘했고 나는 지속적인 관심을 잊지 않았다.

의무에도 없는 개인면담을 꾸준히 하면서..


그렇게 일경험을 9월에 마치고 나는 책방을 다시 오픈한 게 12월이었다.

그 후 다시 만나게 된 송이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이런 송이가 성당엘 가겠다고 했으니 뛸 듯이 기뻤다.

집이 평창동이라 혹시 가까운 성당엘 가보는 것은 어떤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도 했다.

"아니오 그냥 저는 이곳으로 오는 것이 더 편해요"


두말하지 않았다.

책방에서 15명 정도 북토크를 해도 공황장애가 오고 미처 행사가 끝나기 전에 엄마가 데려가던 송이였기에 항상 동행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눈에 좀 띄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기에 함께 교리를 받는 사람에게 잘 부탁을 해놓기는 했다.

6월 19일 미사가 끝나고 예비자환영식 있는 날 그냥 가버릴 수가 없었다.

교리 담당 신부님에게 송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보통은 미사가 끝나면 많은 신자들이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다음을 기약하며 그냥 간다. 그러나 그날은 다른 신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계속 기다리다가가 송이를 잘 부탁드린다는 요청의 말을 했다. 성당에서 북토크를 하면서 송이를 말했던 적이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줄 알았다.

은둔고립청년일경험에서도 적응이 어려웠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써주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이런 사람 한 명이 교회를 오는 것이 마음이 건강한 100명이 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가까운 집 근처로 안 가고 왜 이곳으로 오느냐, 자매님이 그쪽으로 가서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 헬스장도 집 근처로 다니지 않느냐, 건강한 자매님이 그쪽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아픈 사람이 이곳으로 오는 것이 맞냐고." 어이가 없었다. 성당이 행정관청인가? 어떤 입장으로 교회일을 하는지 일깨워졌다.

아무 대꾸도 못한 일이 억울했다.


난 29세부터 40세까지 선릉역 피트니스센터를 다녔다.

집은 논현동이고 직장은 선릉역 부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장 근처에서 다녔다.

취미생활로 인해 성당을 안 다니고 주말을 즐기다 다시 성당을 나갈 때도

직장 근처 성당엘 갔다. 일터가 중심이었던 삶이었다.

또 어디든 다니다가 성당이 보이면 모두 내 집처럼 찾아다녔다.

성체조배실에 앉아 예수님과 만나고 들뜬 머리를 정리하기도 하면서

이 세상 모든 교회의 일치에 감사드리곤 했다.

그런데 정상인도 아니고 힘든 사람이 어차피 책방에 꾸준히 오는데,

이왕 오는 거 성당에도 가면 좋겠어서 권유한 게,

그리고 내가 책방을 하는 이유가 이런 일이었는데

내가 이런 소리를 듣다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이런 괴로움에 심하게 아프고 말았다.


나는 내 탓을 잘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결단의 잘못은 교회이고 교회 안의 사람들이다.

문화프로그램으로 성당에 이바지하고 싶었지만 일 된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예비자교리봉사자에게 직접 들었다.

신부님이 책방을 소개해주더라고 오란 말도 안 했는데 먼저 꼭 한 번 가겠다고 말한 교회의 큰 일꾼은 그 후로 오지는 않으면서 나를 볼 때마다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레지오는 레지오대로 가만두지 않는 간섭과 수군거림으로 어느 날부터 성당엘 가는 것이 힘들어졌다.

주일학교 자모회장도 매주 토요일 책방에 오는 우리 조카 첫 영성체를 수녀님이 별도로 해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상한 분위기.

그럼에도 내 마음의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무시하고 마음을 기울이느라 힘들었는데 신부님까지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에 붙잡던 끈을 놓아버렸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글로 털어놓으면서 많이 억울한 감정이 튀어나온다.

다만 깨달은 고마움이 있다.

내가 그동안 어린 시절에 받은 가톨릭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감사했는지

그 사랑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였다는 것을.

나의 신앙체험은 온통 가톨릭 종교의 제도와 신심기도 안에서 있었다는 것.

하지만 야훼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모두 존재하는 분이다.

내가 씌운 우상을 깨트려준 내가 사랑했던 가톨릭 교회를 떠난다.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진정 사랑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오솔길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교회를 떠나 교회 밖의 신을 만나자.

내가 만난 그리스도인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던 일에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고도 이미 50대가 된 나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의 신'을 만나며 살아야겠다.

평생의 사명이 나의 우상이었던 선교사로서의 삶을 끝내고

그때 그때 내 곁의 단 한 사람을 후회 없이 사랑하기로 생각해 준 고마운 이별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8화삶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