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작은 일상에서
내가 처음 겪었던 배제의 경험은 뚜렷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만칼라의 신부님과 수도복의 수녀님을 보면
뛰어가서라도 인사하는 것이 자동이었다.
어디에서나 반가웠고 그 삶 자체에 감사했다.
2016년 책방이 있던 큰 단지에서
한 신부님을 보았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이 곳에는 어떤 일로 오신거냐고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 미사가 있다고 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고 하셨고
나는 그 날 미사를 드렸다.
처음 책방을 준비했다가 철수했던
마룻바닥이 이쁜 2층 그 자리였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 둘러앉아 자기소개도 했다.
이 곳에서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신부님은 그날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이야말로 혁신가였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 한명한명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같은 부지의 테두리에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내가 일하는 삶의 터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매월 1회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연락처를 주고 왔는데 아무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우리책방에 오는 사람과 일행이 되어 음료를 주문할 때 모른척을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모든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단지 안에 함께 있을 뿐 사회적경제단체는 아니었고
그들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성당 밖에서 종교를 체험했던 그 경험은 점점 다른 일들을 겪으며 그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 일은 다가올 일들의 전조였을 뿐이었다.
반대의 경험들은 내 인생의 보물이다.
20대 후반 살사바를 매일 다니곤 했다.
퇴근을 하고 '말만'이라는 바에 8천원을 내고 들어가면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매일 안갈수가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 물었다.
누군가: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나: "아이디가 뭐예요?"
이를 계기로 알게된 사실은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유니텔 동호회 러브살사 회원들이고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한 사람들이 모여
취미동호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정모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혼자 앉아 있는 내게 말을 걸어준
그 한 사람의 배려로 그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유니텔도 가입했다.
그 후로 그들과의 우정이 삶의 중심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 잔치 때는 '수나언니 번개 안쳐요?'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말을 걸어준 한 사람 덕분에 취미의 세계의 빠져들었다.
유니텔에는 자전거 동호회가 있었다.
어린시절 기억은 거의 없지만
아빠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갓바위로 물을 뜨러갔던 기억은 생생하다.
자전거는 나의 향수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언니가 차린 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때 금고에 있는 돈 10만원으로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면서 사가는 나를
걱정스레 보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대청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갔다.
운동장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것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뒤에서 잡아준다고 페달만 막 굴리라고 했다.
어느새 혼자 달리고 있었고
함께 있던 아이들이 기뻐했다.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와서 빵을 나눠줬다.
도움을 요청하면 아이들도 신나서 도와줬다.
나는 나중에 좋은 자전거를 샀고 송파에서 출발해 미시령 고개를 넘기도 했다.
아는 언니가 전화가 왔다.
현대백화점 고객초청 골프대회가 있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 대타를 구한다고 했다.
다니던 스포츠센터에서 7번 채는 잡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칠 줄 안다고 했다. 고객초청 대회라 한 팀에 한 명은
접객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나만 계속 케어했다.
티샷부터 모두 7번!
강촌c.c 였는데 이때 정돈된 경관과 아름다운 수목 사이를 걷는 행복에 빠져
골프를 사랑하게 되었다.또 유니텔 골프 동호회에 들어갔다.
나는 이 곳 사람들이 좋았다. 호칭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좋았다.
사장님,회장님이 아니라 수나님, 광철님, 용완님 경숙님 등등....
이렇게 불러야 하는 것이 룰이었다.
이분들은 왕중왕 챔피언을 하기도 하고 각종 c.c챔피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실한 분들이었으며 새벽6시 출근해서 오전 업무를 보는 회사 대표님은 지금도
인상깊게 내 마음 속에 간직된 분이다.
팀을 짜는 분은 나를 항상 가장 잘 치는 사람들 3명 속에 넣어주었다.
이런 배려 덕분에 열심히 연습을 했고
그 다음 해 2004유니골프 강남분동에서 most improved player 패를 받았다.
레이크사이드 정모에서 longest를 했던 것도 원주파크밸리에서 Eagle을 했던 것도 모두
즐거운 기억이다.
언니가 이태리골프의류 매장을 하면서 모자나 골프백커버 장갑 등의 선물을 많이 줘서
사람들에게 간혹 선물을 할 수 있는 일이 다행이었다.
왕초보였을 때 배려해준 고마운 사람들...
아침에 눈을 뜬 후 가장 먼저 읽은 글은 지인의 페이스북 글이었다.
내 인생에 중요한 시작이었던 이 책 『자기앞의 생 』을 읽고 올린 글이었다.
나는 이 책을 2007년 문정우기자님을 통해 만났고 아주 오래 깊이 좋아했다.
주어진 인생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사랑해야 한다"로 끝나는 이 책의 마지막을 삶에서 잊지 않고 지냈다.
사랑이 아니라 오지랍으로 바뀌는 것이 문제라 요즘은 "자제해야 한다" 로 바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책방을 했던 경험과 책을 좋아하는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노동을 갈망했다. 주2~3회 노동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지난 7월5일 "자매님은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펑펑 울었지만 지금은 내게 이렇게 말해준 그 분이 정말 감사하다.
다시는 그 쪽으로 헛된 노력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덕분에 내가 했던 일을 더 잘해보자고 다짐했다.
살아온 인생을 총합하는 일이기도 했다.
<꿈꿀자유>에 결합됐으며, <강원국의 책쓰기 수업>을 이어가고 있고, <이루리북스>를 터전삼아 시낭독회나 북토크를 하고 있다.
평생 '책'은 나의 희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책' 같으면 좋겠다.
살사.자전거.골프와 달리 '책'은 그만두는 취미가 아니니까 더 좋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출판계 사람 아니라고 배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미와 생업은 다른 것인가?
아니다. 언제나 그 한 사람은 있다고 믿는다.
인생은 기적이니까.
늘 그랬지만
또 다시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을 맛본다.
책과 관계된 모든 분들께 미리 따뜻한 마음을 청한다.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항상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