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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디 Mar 15. 2020

황홀한 고독

외로움도 힘이 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지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성장환경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바닷가 목포에서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새침한 성격으로 다른 이들의 시샘도 받았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힘든 시간들 속에서 구하기는 어려웠지만 책 속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밖으로 뛰어나가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책을 읽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내 친구가 되었다. 그때 만난 소녀를 잠깐 소개하겠다. 집이 없어 폐차 버스에서 할머니와 사는데 빨간 드레스 단벌로  썩은 사과를 먹기도 한다. 작아서 벗기 힘든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하고 빨래 줄에 두 손을 매달고 바람에 흔들리며 몸과 옷을 말렸다. 그러면서도 항상 싱글벙글하는 그 소녀와 친구가 되었다. 아무도 없을 때 구름이 지나가는 걸 쳐다보며 소녀에게 노래를 지어 불러 주었다. 비록 반공 도서를 많이 읽었던 기억이 안타깝지만  활자를 읽는 습관이 몸에 베인 어린 시절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명절이면  다른 계획을  미리 세웠다. 

토지, 한강 , 태백산맥, 박경리 전집, 등은 명절 때 읽었던 책들이고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던 기회도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준비하면서 돈을 모은 결과였다.  인도에서의 죽을 것 같던 고생,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철학자의 길 산책 등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면서도 뭔가 중요한 갈망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점점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어가면서  취미생활에 집중하고 물질적인 만족을 위해서도 노력했지만 늘 허전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죽음의 심연에 빠져들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이 허무했다.  세상과 스스로 격리하며 고심을 하였다. 무슨 일이든 책과 함께 하는 습관은 영성 관련 책과 성장소설을 많이 찾아 읽게  되었다. 홀로 전국 곳곳을 걸으며 요란했던 겉모습을 하나하나 버려갔고  내면의 자아를 바로보기 위해 영성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며 겸손을 닦고자 했으며 지금도 더 가벼워지고 온유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외로움은 책 속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었으며, 침잠의 기회를 주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고독의 참맛을 깨우쳐 주었으며 그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인 유일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상처로만 향했던 시선은 세상과 타인을 향한 열린 눈을 일깨우게 되었다.

  외로움은 황홀한 고독으로 갈 수 있는  포장 안 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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