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22일 차(Leon to San Martín del Camino), 30.4km; Oct. 12, 2017)
10월 12일 목요일. 레온에서의 달콤했던 휴식은 독이 된 걸까.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발바닥 뒤꿈치에서 찌릿한 통증이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이곳 까미노길에서는 흔히 듣는 족저근막염 증상이다. 어제 산 살로몬 신발 덕분에 발가락과 뒤축을 괴롭히던 물집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20일 넘게 누적된 피로는 뼈와 근육 깊은 곳에 '염증'이라는 이름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은 30km가 넘는데... 게다가 대부분 딱딱한 포장도로라는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강행할 것인가. 나는 다시 한번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동키 서비스(Donkey Service)'. 배낭을 다음 목적지로 먼저 보내기로 한 것이다. 짐을 덜어내니 마음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걷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무엇을 메고 있는가가 중요한 건 아니다.
가벼운 몸으로 레온을 빠져나오는 길. 도시의 회색 아스팔트와 공장지대를 지나는 길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 같았다.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라 비르헨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 이곳에는 옛 양치기 앞에 성모님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깃든 현대적인 바실리카 성당이 서 있었다. 성당 정면을 장식한 수비라치(Subirachs)의 거대한 청동 조각상 13개가 순례자들을 압도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을 맡았던 거장의 작품 앞에서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 지루하고 아픈 길을 무사히 건너게 하소서."
성당을 지나자 운명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는 지름길이지만 악명 높은 오른쪽 길(산 마르틴 방향)을 택했다. 곧이어 끝없는 N-120 국도가 펼쳐졌다. 이 길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멘털 싸움의 구간'이라 불린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 트럭들의 소음,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딱딱한 아스팔트와 자갈길. 풍경의 변화도 없이 오직 직선으로 뻗은 길을 걸으며, 나는 수없이 되뇌었다. "나는 왜 걷는가?" 이것은 걷기 여행이 아니라, 소음 속에서의 묵언 수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만난 새로운 파트너, 살로몬 트레킹화의 활약이었다. 예전 신발이었다면 벌써 발바닥에 불이 나고 물집이 터졌을 이 딱딱한 포장도로 위에서도, 녀석은 훌륭한 쿠션감으로 충격을 받아냈다. 족저근막의 통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키 서비스로 몸을 가볍게 하고 전문 트레킹화로 충격을 줄이니, 30km라는 거리도 감당할 만한 도전으로 바뀌었다. "비싼 값 하는구나." 흙먼지 날리는 국도변에서 나는 내 발을 내려다보며 쓴웃음과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이 작은 마을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지친 나에게는 그 어떤 관광지보다 반가운 오아시스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미리 와 있는 배낭을 찾고, 시원한 맥주 한 잔(Caña)을 들이켰다. 오늘 하루,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다. 하지만 족저근막염의 공포를 이겨내고, 동키 서비스라는 유연함을 선택했으며, 지루한 국도를 묵묵히 걸어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었지만(Pain), 괴로움 대신 '도구(신발)'와 '지혜(동키)'를 선택해 이겨낸 승리의 날. 내일은 발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기도하며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