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없는 인연도 있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by 도그냥


난 2013년에 스마트폰 전화번호를 한번 바꿨다. 대부분 번호를 바꾸면 그렇듯이 그 전의 주인을 찾는 연락이 오고는 한다. 그러다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해 작은 부분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 병원을 다녔었는지 등등. 그래도 보통은 생활권이 굉장히 다르니까 누구인지 전혀 추론은 안되는데 나는 상황이 달랐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성균관대 힙합동아리 꾼입니다~! ...'

주기적으로 오는 정기공연 문자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성균관대는 맞는데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저 동아리는 가입한 적이 없었다. 난 락밴드 동아리였으니까.

계속 오던 문자에 결국 질문을 했다. 난 가입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이 전화번호의 전 주인은 나와 같은 여자에 두 학번 차이밖에 안나는 대학동문이었다. 학교 캠퍼스를 걷다가 적어도 한번은 스쳐지나갔을 인연.


그러다 몇년이 또 지난 어느 날, 장문의 문자가 또 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10학번 ×××입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4년전에 조언해 덕에 로스쿨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처럼 열심히 로스쿨 생활 할께요'


아, 이 친구가 로스쿨에 다니고 있구나.


10학번 그 친구가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난 그 분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어쨌든 나도 같은 대학이라며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내 오지랖도 풍년이지만 모르는 후배님이 어쨌든 잘 됐다니 뭔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모르는 번호에게서 전화가 오고 문자도 왔다.


'변호사 시험 합격을 축하한다'


아, 그 친구가 드디어 변호사가 되었댄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그녀의 소식을 들은 것이 벌써 6년째. 인연이 없지만 어쩐지 나까지 기분이 좋다.


동문이다보니 이름을 검색만해도 페북에는 그녀가 금방 조회된다. 졸업 후에 로스쿨에 다니고 나와 함께 아는 친구까지 있는 사이. 그치만 모르는 사이일 뿐이다.

같은 번호를 이어서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일방적으로 인연이 되었으니 미안하다. 그래도 어쨌든 보낼 수 없는 축하 메시지를 하나 남겨본다.


난 이미 친근하지만 진짜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 ㅋ


변호사 시험 합격을 축하드려요!
이제 사회진출도 하실테니
주변인들에게 연락도 많이 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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