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누군가를 결제시키려 애를 쓰는가.
노인과 바다, 그 애잔한 이야기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의 삶은 애처롭다.
84일간 고기를 잡지못했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조수도 다른 배로 가버렸다.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어린 조수인 소년이 자비로 음식을 사다가 줘야할 정도로 가난해졌다. 게다가 과거 힘 꽤나 자랑했던 늙은 어부의 몸은 이제 다치고 상했고,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도 많이 잊고 바다에 나올만큼 바다에 나오는 것은 어쩌면 습관적인 행위로만 보일 정도다.
하지만 노인에게 정말 큰 고기가 나타난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매마른 노인에게서 눈빛이 되살아난다. 3일 밤낮으로 고기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낚시줄을 놓피지 않고 결국 고기를 낚아낸다. 상어에게 이리저리 물어뜯기고 싸워야 했던 것은 이미 고기를 낚는 성취를 이룬 후의 이야기일뿐이다. 물론 어떻게보면 이 이야기는 결국 앙상한 뼈만 가지고 돌아와야했던 노인의 애잔한 실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일단 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노인은 다음의 희망을 찾는다.
어부라는 직업의 긍지
나는 험난하지만 이런 여정이 가능했던 모든 이유를 노인이 고기를 낚는 이유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고기를 낚으려고 한다.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을 무시한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손이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노인은 고기를 낚는다. 그래서 낚여있는 고기를 형제라고 하고 잡은 고기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단지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지키기 위한 직업인으로서의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의 욕심이라고 하면 외롭지 않게 해줄 조수 소년과 함께 바다에서 고기를 낚고, 오랜 바다생활로 흐릿해진 눈이 잘 보이는 정도일 수 있을 것 같다. 큰 고기를 잡고 돈 계산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조차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본다는 느낌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노인은 고단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면 그 누구도 '노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본질은 누군가가 쥐여주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기제를 통해서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노인이 '어부'라는 자신의 본질을 낚시를 통해서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 정신이 노인을 그 혹독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상어를 맨몸으로 이겨내게 한 중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쇼핑몰 기획자,
'왜 나는 누군가의 결제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가'
살다보면 타성에 젖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쇼핑몰에서 기획업무를 하면서 문득 회의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왜 나는 누군가의 결제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가' 이 질문이 나를 괴롭히면 모든 것이 의미없어보일 때가 있다. 만약 이런 것이 개인의 욕심과 닿아있다면 분명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방식으로의 생각은 이런 허무함을 존재의 가치로 바꿔준다. '나는 내 긍지를 지키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며 일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된다.
상어의 공격으로 뼈밖에 남지 않은 커다란 고기의 잔해는 어쩌면 '어부로서의 긍지' 그 자체였고 바다에서 돌아오는 험난한 과정은 그러한 긍지를 지키기위한 투쟁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속이 힘들고 지치기만 하고 무언가 성과가 보이지 않을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이 생기더라도 '자신에 대한 긍지'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현재가 남루하더라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자, 그럼 이제 찾아야겠다.
나를 빛내줄 '나의 고기뼈'는 어디에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