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은 눈으로 체크한다
나는 누군가의 책상 옆에서 대화를 하다가 대화가 길어지면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버릇이 있다.
어떤 느낌이냐면 옛날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생 같은 느낌으로 앉아있다. (여기서 무릎은 안꿇는다. 그냥 쭈그리고 앉는다)
보통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이런 자세가 주로 나온다. 대화가 몹시 길어지면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한 10분에서 15분내지 급하게 이야기할 때는 이 자세가 편하다.
말하자면 직업병적 습관인데, 이 자세를 자연스럽게 취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눈을 맞추기 위해서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배너하나 붙이기 위해 개발PM에게 개발 공수와 일정 등을 물어보려고 처음으로 쓴 낱장 기획서를 들고 찾아갔다. 메신저는 보지도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가야했는데 뒤에서 인사와 인기척을 보내도 그의 시선과 몸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설명하고 물어봐야하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등뒤에서 이야기해봐야 각인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난 그의 시선을 나에게 돌려야했다.
그때 패밀리 레스토랑 자세를 처음으로 취했다. 그의 손이 있는 키보드 옆에 내 기획서를 놓고 그가 보는 45도 각도 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선을 빼앗으면 커뮤니케이션은 훨씬 쉬어진다. 개인적인 공간안에 불쑥 사람이 들어오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사람은 거리를 벌리며 나에게 시선을 준다.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면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흘려보내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이 가능하다.
그리고 친밀감은 덤이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이라면 공적인 관계라도 친밀감의 형성은 핵심중에 핵심이다.
4년차까지 내가 일한 환경은 신입에게 여러모로 잔인했다. 사이트는 컸고 맡은 모듈은 많았는데 여전히 난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사수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있는 층에서 살았다.
의자를 들고 다니며 뒤에 병풍치고 앉아서 개발자들의 설명을 들었다. 오류나 기획을 설명해야할 경우에는 내 기분과 감정과 필요성을 눈으로 충분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그 시간만큼 나를 성장시킨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진심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관계 형성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채널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글을 보는 혹자는 갑을관계를 떠올리며 기획자가 을이냐고 저렇게까지 해야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개발자에게만 저런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더라도 그 순간에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시선을 뺏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회의실에 앉아서 대화를 하거나 고정적인 리뷰라면 이런 자세는 필요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모두가 바쁘고 기획자는 요구하는 입장의 경우가 많다. 나는 을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조아린 적이 없다. 그냥 정확하게 대화를 하고 나를 익숙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은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먼저 의자를 가져오는 친절을 보인다. 오고가는 친절 속에 싹트는 건 친밀감이다.
팀원과 작은 농담과 안부인사 그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좋은 관계 형성을 통해 거리감없이 내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튼 그러니까 내가 누구 옆에 쭈구리고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자세가 습관이 되어서 의도하지 않고도 나오는 것뿐이다.
(결론은 변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