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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Nov 10. 2018

[기고]대한민국의 기획자도 특별하다

DI 매거진 18년 10월호, 연재완료!


http://www.ditoday.com/articles/articles_view.html?idno=22580



실리콘밸리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작은 서비스를 만드는 기획자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내에만 있다고 이야기되는 ‘기획자’라는 직무는 정말 한계가 많은 것일까? 보통의 기획자들의 고민을 다룬 연재 글, 마지막은 대한민국의 기획자라는 직업이 가지는 가치, 직업의 존속 가능성 및 성장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유니콘의 나라들, 중국과 실리콘밸리>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알리바바, 텐센트, 에어비앤비(Airbnb), 우버(Uber) 등등. 이름을 듣기만 해도 기획자의 가슴은 뜨거워진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류인 이 소외된 온라인 갈라파고스에서 전 세계에 유일하게 한글로 ‘기획자’라는 타이틀로 살고 있는 우리에겐 말 그대로 ‘유니콘’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기업처럼 느껴진다.

과거에도 물론 해외의 기업은 국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동경은 마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읽으면서 케이스 스터디를 할 때와 같은 이상적인 동경이었기에 그 기업에 입사하려 한다거나 그 기업과 비교하며 괴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해외의 서비스고 국내에서도 그 브런치에 입사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현재 기획자는 글로벌 온라인 서비스를 보면서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서는 열등감과 질투, 그리고 이를 넘어선 패배감에 이르기까지 아픈 감정을 느낀다.

절대다수의 사용자(User)를 가지고 자유로운 규제 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그들, 그리고 하루에도 몇 개씩 등장한다는 유니콘 스타트업의 신화까지! 에세이 플랫폼인 ‘미디엄(Medium)’을 열어, 수많은 성공 신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기획자들을 볼 때면 마음만 부글댄다. “해외에 유학을 갔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게 아니면 기획자가 아니라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되어서 기술을 가지고 글로벌 서비스로 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후회로 사무친다. 심지어 일을 배우면 배울수록 디자이너나 개발자처럼 해외로 이직할 수 없을 것만 같아 한숨만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에서 ‘기획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오늘은 글로벌 환경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고 있는 이 같은 대한민국 기획자들의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한민국의 기획자는 반도의 돌연변이다?>


기획자로 살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획자 무용론’을 접하게 된다. 한마디로 기획자는 오로지 국내에만 존재하는 돌연변이적인, 과도기의 직무이며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누가 시작한 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말한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정의 내리기조차 힘든 기획자라는 직무에는 개발 기술도 디자인 기술도 없고, 때문에 기획자는 오히려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것에 병목이 되며, 최후에는 IT와 시스템의 로직(Logic)에 관한 부분은 개발자에게로, 그리고 UX와 UI에 대한 부분은 디자이너에게로 그 역할이 옮겨갈 것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를 동경하며 이제 막 기획자의 길로 접어든 주니어 기획자에게 저런 이야기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루라도 빨리 코딩을 해야 하나 싶어서 여기저기 학원 문을 두드리게 된다. 기성 기획자에게도 이런 말은 공포로 다가온다. 뭔가 증명할 자격증도 없는 상태에서, 국내를 벗어나서 듣기만 하면 알아주는 해외 서비스의 꼬리에라도 참여하고 싶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연, 이들의 말은 사실일까? 기획자는 결국 없어질 직무일까? 
어느새 국내에서는 해묵은 것이 된 이 논쟁에 대해 수많은 기획자가 온라인에서 의견을 펼쳐왔다. 일부 기획자는 해외에서 ‘기획’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없다는 점을 들어 기획자 무용론에 동의한다. 흔히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로 이루어지는 협업구조에서 기획자의 역할은 얼마든지 협업자들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나 프로젝트 관리자로 전환하거나, 디자인 툴을 익혀서 디자인이 가능한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반면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기획자들은 모든 업무의 목표는 기획자에게서 시작되며 기획자만이 CEO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 ‘기획자 짱짱맨 이론’을 펼친다. 하지만 양측 모두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한 사회적 타협, 혹은 모멸감에 찬 편협한 주장 일색이다.

기획자들의 근본적인 불안감은 이 같은 논쟁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획자 커뮤니티는 의식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냉소로 일관하며, 멀리 커리어패스를 그리기보다는 해외의 글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하거나, 국내의 메이저급 회사나 연봉 높은 곳으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만을 암묵적으로 강조해왔다.

필자 역시 이런 환경 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기획자다. 그리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하루살이 같은 기획자’는 진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기획자를 살펴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해외의 직무를 기준으로 이것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기획자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먼저 바라보고 이것의 가치를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중요한 몇 가지 질문을 떠올려봤다.

-‘기획자’라는 타이틀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기획자’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실제 직무는 무엇인가?
-국내의 기획자에 해당하는 해외의 유사직무는 무엇이며, 동일한 일을 수행하는가? 
-서비스에서 존재감이 있는 ‘기획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기획자라는 타이틀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기획자 무용론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바로 타이틀 그 자체다. 해외에는 없고 국내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직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획’ 혹은 ‘기획자’를 비슷한 영어단어와 비교하면서 그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고민해 보려고 한다. 

‘기획자’라는 단어는 ‘기획(企劃)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기획’은 ‘일을 꾀하여 계획’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이란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기획자란, ‘목표를 위해 없었던 일을 새로이 만들고, 그것을 세부적인 계획까지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획 (企劃)
(명사) 일을 꾀하여 계획함.
유의어: 계획

계획 (計劃/計畫)
(명사)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함. 또는 그 내용.
유의어: 포부, 강령, 구상

기획 (企劃)
(명사) plan, planning, (동사) plan, design



기획이란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마땅한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영한사전에서는 ‘Plan’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쓰이는데, Plan은 ‘계획’에 더 적합한 단어다. 흔히 시간표를 Planner라고 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기획자를 단순히 Planner라고 한다면 ‘일을 꾀하여’라는 의미가 다소 부족하게 전달된다. 일을 꾀하는 것에는 수많은 비즈니스적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법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와 리더십도 필요하다. 

영한사전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단어는 ‘Design’이다. 우리나라에서 Design이란 정말 비주얼적인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만 영어권에서 Design은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정책을 입안하거나 건물을 설계할 때 목표를 위해 고안된 모든 행위를 Design이 포괄한다. 따라서, Design이라는 단어는 ‘일을 꾀하여’라는 부분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시간 순서로 계획한다’는 의도는 다소 희석된다.
그렇다면 ‘Project’라는 단어는 어떤가? 기획자 대부분은 어떠한 목표를 위해 Project를 만들고 시간 순서에 맞추어 Project를 진행한다. 때문에 기획은 곧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라는 풀이가 가장 적합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에 힘을 보태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똑같이 ‘기획자’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사례다. 일본 기업의 ‘기획’ 부서들은 일시적인 프로젝트성의 업무를 운영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기획자’라는 직무 명은 바로 일본과의 오래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건너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IMF 이후 서구의 실력 위주 ‘팀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부서제도’는 일본과 매우 비슷했다. ‘사원-주임-대리-과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급제는 여전히 일본과 유사하다.
 
기획자가 속한 팀은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 전략을 설정하고 신사업을 주도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다 보니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기획자’라는 단어 안에는 ‘진두지휘’와 ‘프로젝트의 제안자이자 진행자’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UX(User eXperience), 즉 고객 경험 관리 사상에 대한 부분이다. 

초창기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 내부에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에이전시와 외주 SI(System Integration)/SM(System Management) 업체를 통해서 구축했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꾀하는 기획자는 기존대로 일시적인 형태로만 참여해도 괜찮았다. 디자인도, 개발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프로젝트 최종 오픈 날짜를 맞추고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는지만 보는 업무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 모바일을 중심으로 점차 온라인 서비스가 핵심 비즈니스로 떠오르면서 그런 일시적인 참여만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비슷한 시기, 서구의 성공한 온라인 서비스들은 공통으로 UX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역할들이 자연스럽게 기획자에게 스며들었다.
최근에는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와 UX에 대한 판단을 중요시하는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Data-driven design) 사상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기획자의 역할은 데이터 분석까지 그 영역을 더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획자’는, 웹을 다루는 관리자였던 ‘웹 마스터’ 혹은 전략과 프로젝트를 다루는 그냥 ‘기획자’에서 ‘웹 기획자’가 되었고, UX까지 관리하는 ‘UX 기획자’가 되었고, 혹은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다. 


<기획자의 실제 직무는 어떤 것인가?>


이제 기획자가 실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살펴보자. 앞에서 용어를 정의하면서 조금씩 힌트가 나왔지만, 기획자는 하나의 서비스가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많은 단계에 걸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직무다. 그리고 ‘다양한 일’의 영역은 점점 확대되어 왔다. ‘다양한 일’을 좀 더 세분화해서 생각해본다면 아래와 같이 구조화를 해볼 수 있다.

① 전략 설정: 시장 분석, 사업 기획, 서비스 기획, KPI 설정
② 서비스 디자인: UX 분석 및 개선 관리, 서비스 체크
③ 프로젝트 관리: 프로젝트 일정 관리, 디자이너, 개발자 등 실무자와 협업 관리, 목표 관리
④ 운영관리: 프로젝트 종료 후 서비스 운영, 운영 개선 관리

수많은 현업 기획자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1~4의 업무를 요구하는 수준이 회사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업무는 존재하지만 프로젝트 관리만 기획자에게 따로 떼어주는 회사도 있고, 운영관리만 기획자가 하는 경우도 있고, 운영관리만 마케팅팀으로 넘겨주는 경우도 있고, 전략설정은 전략기획자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는 등 그 조합과 구성은 다양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비스 기획’이라는 영역과 ‘UX 분석’이라는 영역만큼은 명확하게 우리와 같은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에게 할당된 역할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서비스 기획이라는 것은 회사에서 채택한 환경에 따라 여러 형태로 산출된다. 와이어프레임만 달랑 들어간 화면설계서만 요구하는 회사도 있고, 모크업(Mock-up)이나 프로토타이핑까지 모두 필요한 경우도 있다. 반면 개발적인 센스를 더 요구하는 회사도 있다. 여기서는 화면설계서의 디스크립션에 포함된 로직과 프로세스를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애자일 방법론에서 사용되는 User Story와 Backlog를 정리하여 UX적인 관리를 개발과 디자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세화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산출물의 종류가 협업자와의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정의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직무의 근본적인 사상이 다른 것은 아니다. 서비스가 순환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충분히 이해해서, 모든 기획 과정이 설정한 목표에 부합케 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서 필자는 해외의 여러 유사직무 중 대한민국의 기획자와 평균적으로 가장 비슷한 직무는 ‘Product manager’라는 결론을 내렸다. Product manager란 UX, Technology, Business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비스의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직무를 의미한다. 국내에는 아직 좀 생소하지만,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들의 타이틀을 이 직무로 바꿔 주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지식적 역량




<해외의 Product manager와의 비교>


최근 재미있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Product manager와 대한민국 기획자의 직무를 직접 비교한 글(germweapon.tistory.com/m/340)이다. 페이스북의 Product manager가 자기 업무에 대해 쓴 책을 토대로 했다.


찬찬히 읽어보면서 비교하다 보면 약간 마음이 놓인다. 명칭은 달라도, 혹은 가치는 다르게 측정돼도 결국 업무에서 겪는 과정과 어려움은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완벽하게 같다고 하기에,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수준 낮은 조직과 업무 분장을 가진 곳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저기는 무려 페이스북 아닌가! 일부만 비슷하다고 해도 우리가 느끼는 안심의 강도는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직업인이 직업적 에세이를 남기는 미디엄에서도 Product manager라는 키워드를 통해 많은 Product manager의 경험담을 찾을 수 있고, 그 글에서는 ‘기획자’라는 타이틀로 고민했을 때는 볼 수 없던 공통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고객들의 UX를 고민하는 동시에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이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판단하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일을 한다. 데이터를 보고 분석을 하며, 하고자 하는 개선 프로젝트의 논리를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유사성은 글로벌 교육 플랫폼인 ‘Udemy(www.Udemy.co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Udemy에는 Product manager들이 올려놓은 직무강의가 있다. 조사과정에서 2~3개의 강의를 직접 구매하여 수강하였는데, 애플과 나사(NASA)에서 근무한 Product manager와 페이스북, 사운드클라우드의 Product manager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기본적인 사상과 업무는 유사했다. 다만 국내보다 좀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조직과 개발 프로세스가 애자일 프로세스에 기초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방법론과 환경의 차이일 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온라인 교육사이트 udemy에는 product management에 대한 교육이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개발자와 디자이너에 비해서 기획자의 해외 진출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그림과 개발언어라는 공통적인 산출물을 가지고 있다. 반면 기획자가 하는 업무는 소통이 많이 필요하고 항상 문화적인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는 일이다. 몇 년 새 국내의 기업들은 국내 기획자들을 중심으로 서비스의 해외 진출을 많이 했는데, 현지 기획자를 채용하지 않는 이상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만큼 기획은 서비스 대상의 문화적 맥락과 작은 UX적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하는 직무다. 즉, 우리가 업무적 유사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립된 것은 직업적 문제라기보다는 의사소통의 문제다. 만약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기획자의 해외 교류나 서비스의 해외 진출도 훨씬 손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즉, 해외의 Product manager나 국내 기획자의 업무 자체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을 가질만한 부분이 있다. 스트레스 넘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도 말이다. 물론, 그만큼 책임지지 않고 그만큼 업계에서 돈을 주지 않을 뿐.




<서비스에서 존재감 있는 ‘기획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획자는 어떻게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서비스에서 기획자가 존재감이 있다는 말은 그 기획자가 서비스를 대표하게 됐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같은 존재다. 그냥 CEO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동료 개발자, 디자이너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Product manager다.



우리나라에도 Product manager라고 할 만한 사람 중 굉장히 유명한 이가 몇 있다.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대표나 쿠팡의 김범석 대표 등이다.



왜 우리는 이 예시의 사람들의 ‘대표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일까? 실제로 그 서비스는 수백, 수천의 직원들이 합심해서 탄생한 것임에도 말이다. 이는 바로 그들이 스토리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우린 김봉진 대표의 재치 있는 배달의 민족 브랜딩 이야기나 적자 속에서도 자신 있게 포부를 밝히는 김범석 대표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더 이익을 많이 내고 훌륭한 기획자가 있다 해도 외부에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도 인지할 수가 없다. 고객들은 사업의 수익적인 면보다는 서비스의 사상과 가치를 먼저 본다. 다시 말해, 기획자의 대표성은 서비스의 사상과 가치를 외부에 이야기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아마존에서는 서비스를 ‘글’로 먼저 기획한다고 한다. 소위 ‘6 page memo’라고 부른다. 글은 파워포인트 문서나 엑셀보다 훨씬 해석과 논리가 중요하다.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논리적인 여섯 장의 기획문서에는 새로운 서비스의 정확한 청사진이 표현된다. 기획자에게는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되지만 그중에서도 논리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기획자들의 깊은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최초 고민은 이것이었다. 국내에서 이렇게 작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자신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획자로서 계속 롱런할 수 있을까.


기획자로서 롱런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기획을 하나의 흐름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작은 대한민국에서 작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민하고 논리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외부에 드러내고 알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서양이나 중국에 유명한 기획자들이 많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적 성향의 탓도 크다. 사실 개인적인 역량은 우리가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조금씩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미디엄과 유사한 국내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수많은 국내 스타트업 기획자들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의 고민과 그들의 사상을 글로 나타내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글들이 영어나 중국어로도 쓰인다면 어떨까? 저 타국의 저 먼 곳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기획자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일을 좀 더 자신있게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





<마무리>


이번 글에서는 기획자라는 직무가 의미 있고 미래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뤘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기획자라는 직무의 어원과 직무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았고, 해외의 유사 직무인 Product manager와 업무를 비교했다. 또한, 그들은 어떻게 서비스를 대표하게 됐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필자 스스로도 쉽게 꺾이던 직업적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기획자라는 직무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아니라.



이번 회차가 평범한 보통 기획자들을 위한 마지막 연재 글이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글을 통해서 평범한 대한민국의 기획자들이 한 번쯤 해 볼 만한 고민을 나눴다. UX 이론과 실무의 차이에서 오는 의아함, 업무 관계에서 오는 허무함, 개발자 및 디자이너와의 협업에서 오는 답답함, 신기술 앞에서 드는 공포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뚜렷하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에서 오는 불안감을 다루었다. 이 글들을 정리하면서 필자 역시 직업적인 가치관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편향됐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이 같은 긍정적인 시리즈가 현실에 지친 동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실리콘밸리, 혹은 중국보다 부족한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획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다. 항상 욕심 많고 의욕 넘치고 흥이 많고 화도 많아 일 벌이기 좋아하는 그들. 높은 이상을 향해 발버둥 치며 성장을 꿈꾸는 모든 보통의 기획자들. 이미 하나의 서비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깊게, 여러 각도로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미래형 인간일 수도 있다. 당장 스트레스가 넘치는 일이 많다고 해도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낮게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기획자도 위대하다. 





 DI매거진과의 5개월간의 연재가 마무리되었네요:) 

 뭔가 시원섭섭하지만 다시 한번 서비스 기획자의 고민과 업무를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책도 쓰고 싶은데,,  정리한다는게 여전히 너무너무 어렵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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